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Tchaikovsky, Symphony No.4 in F minor, Op.36)
라라와복래2018. 6. 13. 06:09
Tchaikovsky, Symphony No.4 in F minor, Op.36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Yevgeny Mravinsky, conductor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Wembley Town Hall, London
1960.09.14-15
Yevgeny Mravinsky/LPO - Tchaikovsky, Symphony No.4 in F minor, Op.36
연주자들이 음악회에서 연주할 곡을 결정하는 것을 ‘선곡’이라고 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대로 음반을 고르게 되는데, 이것 역시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선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상자가 처해 있는 당시의 상황이나 감정 상태겠지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계절인 것 같습니다. 예컨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은 1악장 도입부에서부터 감미롭고 따사로운 선율을 들려줍니다. 그래서 ‘봄’이라는 별칭이 붙었을 겁니다. 반면에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은 리듬에 활기가 넘치는데다 관악기들이 시원한 팡파르를 들려주지요. 그런 까닭에 여름에 들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이제 가을도 막바지입니다. 설악산 단풍은 거의 떨어졌고 내장산 나뭇잎들이 절정의 붉은색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역시 러시아 음악이 제격입니다. 지난 회에서 들었던 라흐마니노프는 물론이거니와, 오늘 소개할 표트르 일리히 차이콥스키도 겨울에 듣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악을 많이 남겼습니다.
‘스폰서십’을 맺은 여인과의 운명적 만남으로 탄생하다!
‘교향곡 4번’은 차이콥스키가 37세였던 1877년에 작곡해 이듬해 초연한 곡입니다. 차이콥스키는 모두 6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도 후반부에 놓이는 4번부터 6번까지가 오늘날 자주 연주됩니다. 특히 맨 앞에 놓이는 4번은 이전까지 차이콥스키가 보여줬던 교향곡 작법(作法)의 미숙함을 단번에 씻어내면서, 러시아 풍 교향곡의 전형을 선보이고 있는 걸작입니다. 게다가 본인이 곡에 대해 매우 세세한 해설을 남겨 놓고 있어서, 별도로 곡의 제목을 붙이지 않았음에도 표제음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표제음악이란 작곡가가 곡의 제목을 별도로 붙이고 해설까지 달아 출판하는 경우를 일컫습니다. 예컨대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이라든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같은 곡이 대표적입니다.
어떻게 해서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곡에 대해 그토록 자세한 설명을 남겼던 걸까요? 그것은 바로 한 여인과 주고받은 편지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교향곡 4번의 작곡에 착수하기 직전이었던 1876년,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일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여인을 알게 됩니다. 익히 알려져 있는 얘기입니다만, 그 여인은 러시아 철도 부호의 미망인이었던 폰 메크 부인이었습니다. 모스크바 음악원 설립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그녀와 차이콥스키의 관계를 주선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물론 카페에서 소개팅을 시켜준 건 아니었구요,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 말하자면 일종의 ‘스폰서십’을 주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교향곡 4번의 첫 번째 악보를 선사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와 그녀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14년간 그들이 주고받은 1200여 통의 편지들은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로만 보기에는 애매한 내용들이 적잖게 섞여 있습니다. 남녀 사이에 오간 서신이다 보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은 14년간, 어느 사교 파티에서 딱 한 번 스치듯이 얼굴을 본 것 외에는 서로 만난 적이 없으니, 상대에 대해 얼마나 커다란 환상을 품었겠습니까? 교향곡 4번은 바로 그 든든한 후원자이자 연모의 대상을 염두에 두고 쓴 첫 번째 곡입니다. 차이콥스키는 곡에 대해 세세한 해설을 써서 폰 메크 부인에게 첫 번째 악보를 선사했지요.
그렇지만 곡의 정서는 매우 암울합니다. 러시아적 애상감은 물론이거니와 때때로 폭발하는 광기마저 느껴집니다. 물론 차이콥스키의 어두운 천성이 음악에 작용했을 겁니다. 우랄 산맥 서쪽의 잿빛 광산촌 보트킨스크에서 태어난 차이콥스키는 태생적으로 어두운 정서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곡을 듣기 위해서는 차이콥스키의 당시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과 ‘스폰서십’을 맺은 이듬해에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이었던, 그러니까 자신의 제자였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결혼하지요. 그 결혼은 밀류코바 측의 열렬한 구애 탓에 이뤄졌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차이콥스키는 매우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성품을 지닌데다가, 마음속으로는 이미 폰 메크 부인에게 사모의 정을 느끼고 있었을 테니까요. 아울러 그는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이래저래 결혼을 흔쾌히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그렇게 복잡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차이콥스키와 밀류코바의 신혼 사진, 1877년.
결국 그 결혼은 두 달도 안 돼 파경을 맞는데, 차이콥스키는 결혼이 깨지기 직전에 모스크바 강에 뛰어들어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한데 이 ‘자살 시도’라는 것도 영 석연치가 않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슈만이 라인 강에 몸을 던졌던 것과는 달리,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지점에 이르자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얼어 죽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물론 10월 초였기 때문에 강물은 제법 차가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 동사(凍死) 기도라는 것도 본인의 말일 뿐, 실제로 그가 자살을 결행했던 것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차이콥스키는 구조됐고 동생에 의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아마 그는 강물 속에서 덜덜 떨면서 마음속으로 폰 메크 부인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교향곡 4번은 그렇게 복잡한 상황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밀류코바를 피해 이탈리아로 도망친 차이콥스키가 산레모 바닷가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한 교향곡이지요. 앞서 작곡한 1~3번과 확연히 구별되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1악장은 호른과 파곳이 격렬한 팡파레를 연주하면서 시작하는데, 차이콥스키는 그것을 “이 교향곡 전체의 핵심이며 정수”라면서 “운명”이라는 말로 폰 메크 부인에게 설명했습니다.
2악장에서는 오보에가 비애감 가득한 선율을 노래하다가 현악기들이 화답합니다. 듣는 이를 단박에 매혹시킬 만큼 아름다운 악장이지요.
3악장에서는 현악기들의 피치카토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4악장은 변화가 상당히 심한 악장인데, 서주에서 관현악 총주가 격렬한 기세로 터져 나오다가, 이어서 목관악기들이 러시아 민요 ‘들에 선 자작나무’를 모티브로 삼은 소박한 선율을 두 번째 주제로 연주합니다. 직후에 다시 첫 번째 주제로 돌아왔다가 차이콥스키 스스로 “민중의 축제일에 대한 묘사”라고 설명한 어지러운 춤곡이 세 번째 주제로 펼쳐집니다.
Tchaikovsky, Symphony No.4 in F minor, Op.36
Mariss Jansons, conductor
Oslo Philharmonic Orchestra
Oslo Concert Hall
1984.11.02
추천음반
1.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60, DG. 옛 소련의 거장 므라빈스키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이끌고 1960년 유럽 투어에 나섰고, 당시 녹음한 교향곡 4번부터 6번까지는 음반사의 금자탑으로 남았다. 그중에서도 4번은 런던 웸블리 타운홀에서 9월 14~15일에 이뤄진 녹음이다.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필청반이다. 이 녹음에서 들을 수 있는 짱짱한 금관의 울림은 러시아 오케스트라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의 옛 소비에트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단언컨대, 오늘날의 러시아 오케스트라에서는 들을 수 없는 금관이다. 현악기들의 일사분란함도 마찬가지다.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과 지휘자 므라빈스키의 카리스마가 만들어낸 최고의 연주다. 포효하는 역동감과 세밀한 디테일이 공존하는 명반. 특히 2악장 서주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오보에의 비브라토가 그야말로 절창이다.
2.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1, EMI.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리는 음반이지만, 생전에 차이콥스키 후기 교향곡을 6차례나 녹음했던 카라얀을 빼놓고 지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섭섭하다. 앞서 언급한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연주가 어딘가 거친 맛이 있는 반면, 카라얀의 연주는 보다 깔끔하게 정돈된 소리를 들려준다. 정확하게 계산된 음량 조절, 악기 간의 균형 감각이 이 음반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카라얀은 1970년대에도 이 곡을 두 번 녹음했다. 1971년에는 EMI에서, 1976년에는 DG에서 녹음했다. 어떤 이들은 전자에, 또 다른 이들은 후자에 더 높은 점수를 매긴다. 하지만 해석상으로나 음질상으로 별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EMI 음반을 추천하는 까닭은 DG 음반보다 가격이 저렴해서다.
3. 마리스 얀손스,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84, CHANDOS. 교향곡 4번을 녹음한 수작을 선별하는 일은 의외로 부담스럽다. 그동안 이 곡을 녹음한 명망 높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워낙 많은 탓이다.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와 소련국립오케스트라의 1990년 도쿄 실황, 레너드 번스타인과 뉴욕 필하모닉의 녹음도 놓치기 아깝다. 특히 번스타인은 2악장의 애상감을 누구보다도 뚜렷이 부각시키면서 가요적 서정성을 극대화시킨다. 하지만 이제 생존해 있는 현역 지휘자 중에서 한 명을 거론할 차례다. 그렇다면 1순위는 마리스 얀손스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에서 므라빈스키의 부지휘자로 활약했던 그가 스승의 아성에 마침내 도전장을 내밀었다. 놀라운 것은 얀손스가 지휘했던 오슬로 필하모닉이 소위 ‘세계적 오케스트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찬란한 교향곡 4번을 내놓을 수 있는 지휘자는 오로지 얀손스뿐이다. 밀어붙이는 힘은 비록 스승에 미치지 못하지만, 음악의 구조와 디테일을 모두 장악한 지휘자의 힘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글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경향신문사에서 문화부장을 두 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 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서에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돌베개, 2013), <더 클래식 1: 바흐에서 베토벤까지>(돌베개, 2014), <더 클래식 2: 슈베르트에서 브람스까지>(돌베개, 2015), <더 클래식 3: 말러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돌베개 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