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F단조(Chopin, Piano Concerto No.2 in F minor, Op.21)

라라와복래 2018. 6. 19. 14:12

Chopin, Piano Concerto No.2 in F minor, Op.21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F단조

Frédéric Chopin

1810-1849

Seong-Jin Cho(조성진), piano

Diego Matheuz, conductor

Orchestra della Svizzera italiana

Lugano Arte e Cultura, Lugano, Switzerland

2018.03.15


Seong-Jin Cho - Chopin, Piano Concerto No.2 in F minor, Op.21


스무 살의 쇼팽이 살던 폴란드 바르샤바는 독립을 위한 민중 봉기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혼란스러움을 벗어나고자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가족과 마지막 휴가를 보낸 뒤 1830년 10월 11일 폴란드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열었고, 바로 이 자리에서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를 초연했다. 환송식이 열린 자리에서, 폴란드의 흙이 담긴 은잔이 그에게 수여되었다. 11월 2일, 쇼팽은 “죽기 위해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라는 느낌을 뒤로 한 채 다시는 밟아보지 못할 폴란드의 땅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피아노 협주곡에 담긴 첫사랑에 대한 은밀한 고백

1829년 8월 빈에서 성공적인 연주회를 마치고 바르샤바로 돌아온 쇼팽은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바르샤바 음악원 졸업과 빈에서의 성공은 쇼팽이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의 미래를 계획하고자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에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무렵 열아홉 살의 쇼팽은 처음으로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쇼팽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이 났지만, 처음 느끼는 강렬한 기분과 뜨거운 가슴이 고스란히 음악으로 녹아들어 바르샤바 시대의 절정을 장식하는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친한 친구인 티투스 보이체코프스키에게 1829년 10월 3일에 쓴 편지에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숭배할 수 있는 이상형을 찾았다네. 매일 밤 그녀 꿈을 꿀 정도야. 그러나 그녀를 처음 본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나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있네. 협주곡 f단조의 느린 악장을 작곡하면서 그녀를 떠올리곤 하지.”

그 상대는 폴란드 음악원의 학생이었던 성악가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였다. 그녀는 자신을 짝사랑한 쇼팽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고, 쇼팽이 세상을 뜨고 난 뒤 모리츠 카라소프스키가 쓴 쇼팽 전기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곧 잊어버리게 된 이 풋사랑에 대한 감정이 피아노 협주곡 2번 f단조의 라르게토 악장과 피아노 협주곡 1번 e단조의 로망스 악장에 충분히 표현되어 있음을 쇼팽 생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은 오직 친구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뿐이었다. 그의 소심한 마음 때문인지 이 2번 협주곡은 글라드코프스카에게 헌정되지 않고, 몇 해 뒤 파리 시절 친교를 맺은 미모의 백작부인 델핀 포토카에게 헌정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피아노 협주곡의 새로운 어법이 탄생하다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은 낭만주의 협주곡 양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불균형이 단점으로 오랫동안 지적받아 왔다. 쇼팽 스스로도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솔로 파트만 연주했던 것을 미루어본다면, 그가 오케스트라 부분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파리 시절에도 주위에서 폴란드 고유의 양식을 대변할 만한 오페라를 작곡하라고 부추겼지만, 자신의 미숙한 관현악 기법을 알고 있었던 쇼팽은 솔로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더욱 집착했다. 그러나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많은 작곡가들이 그 관현악 파트를 보강하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개정판으로 쇼팽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 카를 타우지히가 교정한 1번 협주곡과 카를 클린트보르트의 2번 협주곡을 꼽을 수 있다.

쇼팽은 피아니스트로서 단 30여 회의 대중 연주회를 가졌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특히 1번을 자주 연주했다. 1830년 11월 폴란드를 떠난 그는 빈, 브레슬라우, 뮌헨, 파리를 경유하며 개최한 연주회에서 1번 협주곡을 연주했지만 그 이전에 작곡한 2번 협주곡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1832년 2월에 가진 정식 파리 데뷔 연주회에서야 비로소 1번 협주곡은 그가 기대했던 수준의 찬사를 이끌어내게 되었다. 이후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1번 협주곡은 파리에서의 쇼팽의 위상을 확고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2번 협주곡은 1830년 3월 17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이 공연은 쇼팽의 바르샤바 정식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당시 관습에 따라 1악장 연주를 마치고 난 뒤 호른과 현악기를 위한 즉흥곡을 한 곡 연주하고 2, 3악장을 연주했다. 초연 당시의 여러 신문들은 이 협주곡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쇼팽의 뛰어난 연주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특히 당시 비평 중에 오케스트라 투티 부분이 피아노와 잘 어우러지며 협주곡의 정신을 완벽하게 전달했다는 비평이 이채롭다. 현재 작품번호는 1번 e단조가 Op.11로 앞서 있지만, 사실은 2번 f단조 Op.21이 한 해 먼저 작곡되었다. 이렇게 작곡 순서와 출판번호가 뒤바뀐 이유는 쇼팽이 먼저 작곡한 2번에 비해 나중에 쓴 1번을 더 만족스러워했기 때문에 이를 먼저 출판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폴란드 '쇼팽의 집' 정원에 있는 쇼팽 조각상.

1악장: 마에스토소

고전적 협주곡 스타일에 따라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훨씬 간결하고 압축된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

2악장: 라르게토

쇼팽 피아노 협주곡의 백미는 단연 느린 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차 있는 이 라르게토 악장은 첫사랑에 대한 지고지순한 쇼팽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만큼 더욱 애절하다.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쇼팽의 조국인 폴란드를 대표하는 무곡인 마주르카 스타일의 리듬을 가진 세 개의 주제로 엮어진다. 후반부는 호른의 팡파르에 의해 분위기가 고조되며 피아노의 화려함과 더불어 웅장한 피날레로 이어진다.

Krystian Zimerman - Chopin, Piano Concerto No.2 in F minor, Op.21

Krystian Zimerman, soloist & conductor

Polish Festival Orchestra

Auditorium Giovanni Agnelli, Torino

1999.08

추천음반

1. 가장 고전적 명반이자 건강한 생명력이 돋보이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녹음(RCA)은 자의적이거나 도취적인 스타일을 배제하고 폴란드 고유 정서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강조한 연주다.

2. 상송 프랑수아의 연주(EMI)는 즉흥성이 넘치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해석이다.

3.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지휘자 샤를 뒤투아와 함께 한 연주(EMI) 또한 쇼팽의 찬연한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잘 살려낸 명연이다.

4.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두 번째 녹음(DG)은 작품에 대한 가장 완벽하면서도 폴란드적인 해석의 표본으로 쇼팽 해석에 대한 새로운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기악합주>협주곡 201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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