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드보르자크 오페라 ‘루살카’(Dvořák, Rusalka)

라라와복래 2018. 6. 18. 06:25

Dvořák, Rusalka

드보르자크 ‘루살카’

Antonín Dvořák

1841-1904

Rusalka: Kristīne Opolais

The Prince: Klaus Florian Vogt

The Foreign Princess: Nadia Krasteva

Vodnik: Günther Groissböck

Ježibaba: Janina Baechle

Chor der Bayerischen Staatsoper

Bayerisches Staatsorchester

Conductor: Tomáš Hanus

Nationaltheater München

2010.10.23


Tomáš Hanus/ Bayerische Staatsoper 2010 - Dvořák, Rusalka


물은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원소입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변화무쌍한 특성 때문에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정형으로 고정될 수 없으며 언제 자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특성을 지닌 탓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이나 강의 신들은 대개 남성이지만 그들은 모두 딸이나 여조카를 물의 정령으로 거느리고 있죠. 문화권에 따라 이들 물의 정령들은 멜루지네(Melusine), 운디네(Undine), 루살카(Rusalka)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니는데, 특히 유럽 낭만주의 시대 작가들은 이들을 소재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물처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는 <운디네>를 쓴 독일의 푸케(Friedrich de la Motte Fouqués, 1777-1843)가 있답니다.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이 푸케의 <운디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물속에 가라앉은 종>,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과 보제나 넴초바의 동화 등을 종합해 야로슬라브 크바필이 대본을 쓴 오페라 <루살카>를 작곡했습니다. 보헤미아의 숲과 물안개라는 신비로운 배경이 덧붙여진 이 작품은 1901년 3월 31일 체코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체코어 판 인어공주 이야기

1막

막이 열리면, 물가에서 요정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물의 정령 보드니크(베이스)를 놀려댑니다. 요정들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보드니크는 물의 요정들과 장난을 하다가 그중 루살카(소프라노)가 우울해 보이자 이유를 묻지요. 루살카는 호숫가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인간세계의 왕자(테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보드니크는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지만, 루살카는 “인간은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응수합니다. 루살카의 간절한 소원을 알고 깊은 시름에 잠긴 보드니크는 루살카를 마녀 예지바바(알토)에게 보냅니다. ▶인간 왕자를 사랑하는 루살카는 달님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노래한다.

루살카는 하늘을 떠도는 달님을 향해, 돌아다니다 혹시 왕자를 보면 자신의 사랑을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하늘의 달님에게 Mesicku na nebi hlubokém’입니다. 마녀 예지바바는 물의 요정이 인간으로 변한 뒤 인간에게 배신당하면, 요정과 인간 둘 다 영원한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지요. 그리고 루살카가 인간이 되면 말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일러줍니다. 그런데도 루살카는 인간이 되기를 원하고, 예지바바는 마법의 약으로 그 소원을 들어줍니다.

사냥꾼들과 함께 사슴을 쫓던 왕자는 사슴이 갑자기 사라지자 이상한 예감이 들어 수행원들을 보내버리고 숲에 홀로 남죠. 그때 마치 흰 사슴이 변신한 듯 루살카가 홀연히 왕자 앞에 나타나고, 왕자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루살카를 궁전으로 데려갑니다.

2막

왕자와 루살카의 결혼식 준비가 한창인 궁전입니다. 성안 사람들은 말도 못하는 이상한 신붓감에게 왕자가 곧 흥미를 잃을 거라고 예측합니다. 실제로 왕자는 루살카가 너무 차가운 여자라고 말하며, 불같은 열정을 표현하는 외국 공주(메조소프라노)에게 새롭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외국 공주는 왕자를 유혹하면서, 루살카가 벙어리라고 조롱합니다. 왕자는 결혼식 무도회에서 입을 의상을 준비하라며 루살카를 들여보내 놓고, 그 사이에 외국 공주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고백합니다.

보드니크는 루살카의 서글픈 운명을 슬퍼하며 루살카를 찾아옵니다. 왕자의 배신을 알게 된 루살카는 궁전 밖으로 뛰쳐나오고, 보드니크에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서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이제 인간도 요정도 아닌 루살카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처지의 절망에 빠집니다. 왕자와 외국 공주는 정원에서 사랑을 속삭입니다, 루살카가 왕자에게 달려가지만 왕자는 그녀를 거부하고 외국 공주는 루살카를 비웃습니다.

3막

루살카는 호수에 가서 마녀 예지바바를 다시 만납니다. 마녀는 단검을 주며, 왕자를 죽이면 다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루살카는 칼을 호수에 던지며, 자신이 불행하더라도 왕자는 행복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루살카의 자매들은 더 이상 루살카를 만날 수 없다며 그녀를 거부합니다.

루살카가 사라진 뒤 왕자는 깊은 병에 걸립니다. 성안 사람들은 모두 왕자가 마법에 걸렸다고 믿지요. 왕자는 숲으로 들어가 사슴을 찾다가 길을 잃고 루살카를 부릅니다. 루살카는 왕자에게 왜 자신을 배신했느냐고 서글프게 묻지요. 왕자는 루살카에게 용서를 빌며 제발 키스해달라고 애원합니다. 루살카는 자신과 키스하면 왕자가 죽게 된다고 대답하지만, 왕자는 죽음의 키스를 간절히 원하죠. 마침내 키스한 다음 왕자는 루살카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루살카는 그의 영혼을 신에게 맡긴 뒤 호수 속으로 내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생태계 보호 메시지를 담은 오페라

18세기에 오스트리아의 지배로 국가 정체성을 잃어버린 체코에서는 공식적으로 독일어를 교육하고 체코어를 홀대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다시 수도원을 중심으로 체코어 교육이 부흥하면서 연극과 오페라 분야에서도 체코어 작품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죠.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로 유명한 드보르자크는 체코어로 쓰인 이 오페라에서 민속음악의 멜로디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루살카가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목관과 현악기로, 물의 정령 보드니크는 금관과 타악기로 각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살렸고, 바그너적인 라이트모티프(유도동기) 기법도 사용했습니다. 색채감이 돋보이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각별히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같은 소재를 다룬 다른 오페라들을 보면, 작가이자 작곡가였던 E.T.A. 호프만이 작곡한 <운디네>, 알베르트 로르칭의 <운디네>, 클로드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알렉산더 다르코미츠스키의 <루살카> 등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운디네라는 이름은 물 또는 파도를 뜻하는 라틴어의 여성명사 운다(unda)에서 온 것으로, 운디네는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있지만 본질은 자연의 정령인 이중적 존재입니다.

푸케의 이야기 속 운디네는 기사 홀트브란트를 사랑하게 되자 그와의 결합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얻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홀트브란트가 운디네와의 약속을 깨고 옛 연인과 결혼하자 운디네는 배신한 연인을 키스로 죽입니다. 중세 스위스 자연과학자 파라켈수스는 운디네처럼 ‘자연에 가까운 여성’과의 결혼이 남성에게 이상적인 일이라고 평가했지만, 운디네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의 강요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이죠. 드보르자크의 여주인공 루살카는 운디네보다 더 여리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됩니다. ◀폴 고갱, <운디네>(물의 정령), 1889년

‘체코어 판 인어공주’로 불리는 이 작품은 오페라의 마이너 언어인 체코어의 풍부한 음악성을 즐길 수 있는 걸작인데요, 특히 2010년 뮌헨 오페라극장 실황을 담은 영상물은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연출로 유명한 마틴 쿠셰이의 명 연출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루살카>는 동화적 한계를 뛰어넘어 마치 베리스모 같은 적나라한 현실을 배경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친딸을 지하에 가두어 놓고 24년간 성폭행해 자식들까지 낳게 한 오스트리아의 실제 사건을 토대로 했는데요, 물의 요정들이 아버지라 부르는 보드니크를 바로 이 아버지로, 또 인간세상으로 나가려는 물의 요정 루살카에게서 언어를 빼앗고 그녀를 보내주는 여자 마법사 예지바바는 폭력적인 남편 앞에 무력한 어머니로 설정했습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이 많긴 하지만, 대본 가사와 음악과 연기가 매 장면마다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천재적인 연출입니다.

한동안 증기기관차에 열광하기도 했지만 평생 자연과 일치된 고요한 삶을 사랑했다는 드보르자크는 이 오페라의 음악에서도 작품에 깃든 상징성보다는 자연을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물에서 태어난 루살카에게 자연은 어린 시절의 행복을 뜻하는 친밀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물의 정령 보드니크는 루살카의 하소연에 따뜻한 베이스 음색으로 응답해 줍니다. 그러나 인간과 애정 어린 관계를 맺으려는 자연의 노력은 인간의 부족한 소통 능력과 이기심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죠. 그 때문에 이 오페라는 현대에 와서 ‘생태계 보호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자연을 거부하고 훼손하면 인간은 죽음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입니다. 여름이 해마다 더워지는 요즘, 새롭게 들여다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Hye-Jung Kang(강혜정) - 'Song to the moon'(달에게 부치는 노래), 2015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루살카-왕자-외국공주-예지바바 순)

1. 르네 플레밍, 벤 헤프너, 에바 우르바노바, 돌로라 자지크 등. 찰스 매커러스 지휘,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98년 녹음(음반]).

2. 밀라다 수브르토바, 이보 지데크, 알레나 미코바, 마리 오브카치코바 등. 제네크 찰라발라 지휘, 프라하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보휴밀 조울 연출, 1975년 영화판(DVD).

3. 르네 플레밍, 세르게이 라린, 에바 우르바노바, 라리사 디아드코바 등, 제임스 콘론 지휘. 파리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로버트 카슨 연출, 2002년 파리 국립오페라 공연 실황(DVD}

4.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크트, 나디아 크라스테바, 야니나 브레힐레 등. 토마스 하누스 지휘,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마틴 쿠셰이 연출, 2010년 뮌헨 국립오페라 공연 실황(한글 자막, DVD).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3.07.26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3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