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문학광장 ‘문장’(http://munjang.or.kr)의 문장 배달
빠뜨린 물건을 챙겨 부랴부랴 나온 길, 횡단보도 건너편에 헤어진 지 이십 년도 더 된 어릴 적 친구가 서 있는 거예요. 보고 싶었지만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었죠. 그 친구 말이 이 동네는 처음이라고, 버스의 안내 방송을 잘못 알아듣고 두 정거장 먼저 내리고 말았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처럼 기막힌 우연이 없어요. 친구가 내릴 정거장에 제대로 내렸다면, 만약 빠뜨린 물건을 가지러 집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영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많네요. 그날 버스가 이 분만 늦었다면, 폭우에 비행기가 연착되지 않았다면,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았다면 전 그들과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 밤 노루는 어디에서 온 걸까요. 하필이면 왜 그 시간 그 차 앞을 지나가려 한 걸까요. 혹시 그 노루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나게 하려 그 시간 그곳에 나타난 건 아니었을까요. 돌아보세요, 어쩌면 우리의 인연에 이렇듯 한 생명이 온전히 바쳐졌을 수도 있다는 걸요.
_ 문학집배원 하성란(소설가) 2011.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