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을 바라보며
_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얻는다.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http://munjang.or.kr)의 문장 배달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를 만난 적 있나요. 세상의 모든 자기계발서들이 세뇌하듯 한 목소리로 ‘긍정의 힘’을 말하는 시절입니다만, ‘습관적 긍정’은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요. 거짓 긍정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되지 못하고 진짜 긍정은 오히려, 벌거벗은 가장 낮은 마음의 참회로부터 비롯하는 것일 테니까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벗어버린 겨울나무들. 그 정결한 무욕함으로부터 더불어 아름다워지는 생명의 세상이 출현하지요. 모든 치장을 다 버린 겨울 숲 앞에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가진 것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는 인간이 눈 내리는 겨울 숲 앞에서 ‘한 벌의 죄’를 껴입고 무릎 꿇습니다. 바닥에서 넘어진 자 바닥을 짚고 일어서라. 당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우리의 바닥은 진심을 다한 참회로부터…….
_ 문학집배원 김선우(시인) 201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