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 이시영 시집

라라와복래 2012. 2. 20. 07:13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시영 시집

2012. 02. 06

창비시선 341

 

지난 2월 11일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추대를 수락, 앞으로 2년 동안 공지영 부이사장 등과 함께 한국작가회의를 이끌게 된 이시영 시인이 5년 만에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제목의 시집을 냈네요. 한국 현대사와 문학사를 오롯이 관통해온 중견시인답게 뜨겁고도 부드러운 관조의 숨결을 편편히 담고 있습니다. “싸락눈 내리는 저녁, 길을 걷는데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니 부르는 사람은 없고 그때 막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있지. 누군가 내 생을 다 살아버렸다는 느낌! 그런데 그 누군가는 누구이며, 과연 나에게 생 같은 것이 있기는 있었을까?”(‘싸락눈 내리는 저녁’ 중) 70~80년대를 리얼리즘 진영에서 치열하게 보낸 시인은 이순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 이런 시는 제발 그만 쓰고 싶다”면서도 끊임없이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증언합니다. 시 제목에 '경찰'이란 단어가 들어간 건 처음^^ 다음 글들은 <창비> 홈페이지의 시집 소개에서 가져왔습니다.

 

현실 속으로 파고드는 한없이 따스한 시선

끊임없는 시적 갱신을 통해 치열한 시정신과 문학적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시영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가 출간되었다.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신작 시집에서 시인은 간명한 언어에 담긴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밀도 높은 단형 서정시, 삶의 애잔한 풍경 속에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진 산문시, 책의 한 대목이나 신문기사를 옮겨 적거나 재구성한 인용시 등 다양한 형식을 선보이며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 보인다.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현실과 밀착된 “서정시 본연의 깊은 내면성과 높은 심미적 완성도”(염무웅, 추천사)를 갖춘 시편들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


이전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창비 2007)에서 ‘인용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였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그와 맥을 같이하는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구호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사실’을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시인의 말’)고자 한다. 맑은 서정의 시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참여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시인의 관심은 무척이나 너르게 표출된다. 가깝게는, 철거민 다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현장에서 “두 대의 경찰 살수차를 온몸으로 막아낸” ‘유모차맘’(‘직진’), 구제역 파동으로 1백여 마리의 소를 살처분해야 했던 한 축산농가의 비극(‘고급 사료’) 등 지금-이곳의 참담한 현실을 꿰뚫어보고, 나아가 “하루 16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인도의 어린이노동자들(‘어린이노동’),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과 “인간 사냥”이 자행되던 2011년의 리비아 사태(‘2011년 2월 24일, 리비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망원경과 도시락 등을 준비해” 가자지구의 “전쟁 현장을 구경하러” 와서는 ‘브라보!’를 외치는 이스라엘인들의 비정함(‘아, 이런 시는 제발 그만 쓰고 싶다’) 등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야만과 불의,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의 뒷모습을 상기시킨다.


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 2009년 1월 20일 오전 5시 30분,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 7시 26분, 특공대원들이 망루 1단에 진입하자 농성자들이 위층으로 올라가 격렬히 저항했고 이때 내부에서 벌건 불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으며 큰 폭발음과 함께 망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물대포로 인해 옥상 바닥엔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물이 흥건했고 그 위를 가벼운 시너가 떠다니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농성자 3, 4명이 연기를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매트리스도 없는 차가운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부분


<은빛 호각>(창비 2003) 이후 ‘인물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었던 시인은 아릿한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을 다시금 불러낸다. 아침에 나갈 때마다 아내(박용길 장로)에게 “소년처럼 한쪽 눈을 찡긋했다”는 문익환 목사(‘조사받다가 남산 수사관들에게서 우연히 들은 말’), 수업 대신에 학교 앞 선술집에서 오장환과 이용악 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눈자위가 “촉촉이 젖어” 들던 서정주 시인(‘시론’), 1973년 지하신문 결심공판에서 “한마디로 좆돼부렀습니다!”라는 최후진술로 법정을 잠시 웃음바다로 만든 김남주 시인(‘최후진술’),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을 때 손님에게 예의를 지키라며 소주를 달라고 했던 김지하 시인(‘소주 한잔’) 등의 일화는 은근한 미소를 자아내며 이 시집을 읽는 재미와 즐거움을 더해준다. 시인의 따뜻한 시선 속에 은은한 사람 냄새와 해학이 깃든 이러한 인물시편들은 한 개인의 자전을 넘어 지난 시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기도 하다.


이오덕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 당신 묻힐 자리 곁에 권정생 선생 자리를 하나 잡아놓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권선생이 어떻게 되시면 자기 옆으로 모시라고. 그런데 그 말을 전해들은 권선생님은 버럭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자기 애인이가? 왜 해필 그 옆으로 오라고 그라노?” (…) 동네 외로운 할머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줌 깨끗한 뼛가루로 변한 권정생 선생님은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흔적 없이 저세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평생의 친구였던 미물 벌레들이 달려나와 그를 가장 반갑게 맞았습니다. - ‘권정생 선생님’ 부분


시인의 기억 한 켠에는 또 가족과 이웃들의 애틋한 사연과 고향 마을의 아늑한 풍경이 어룽진다.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던 어머니(‘어머니 생각’), “진짜 소처럼 웃”던 아버지(‘소처럼 웃다’), “청춘에 남편 잃고 세살배기 외아들을 키우며” 집안을 크게 일궜다는 할머니의 무덤과 “띠처럼 흘러가”던 섬진강(‘산64번지의 4’), 시인이 태어나던 해에 마을로 시집온 “궝몰댁 아짐”과 “소처럼 겁이 많고 눈이 크던 그의 선한 남편”(‘육십년’), 섬진강에서 멱을 감다가 급류에 휩쓸린 시인을 구해준 “무쇠 팔뚝의 육촌형”(‘이순의 아침’), 그리고 “흥대댁 논실댁 곡성댁 새터댁 냇가물댁” 등 이름만으로도 정겨운 고향 아주머니들을 회상하며 오십 년 저편의 추억 속으로 잠겨드는 시인의 마음은 한없이 따스하기만 하다.


평생을 저 앞들에 엎드려 일하시다

죽어 북망이라 찾아든 곳이 겨우 동네 뒷산 야트막한 가래뜸

흥대댁 논실댁 곡성댁 새터댁 냇가물댁 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누워 때론 더운 김도 내뿜으며

저세상을 새로 살고 계시구나 - ‘저세상’ 전문


약관의 나이에 등단하여 어느덧 이순을 넘긴 시인은 ―2009년 등단 40주년 기념 시선집 <긴 노래, 짧은 시>(창비) 출간― 불현듯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고” “내 삶이 내 삶으로 도저히 용납되지 않”(‘저녁의 몽상’)는 회의를 느낀다. 지난날 “조금 더 겸허했더라면” 하는 “뼈아픈 후회”(‘생(生)’)를 되새기면서 시인은 이제 “인생이 무엇인지를, 다른 삶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행복도시’)한다. 성찰과 고뇌의 시간 속에서 “전신에 서늘한 정신이 들 때까지”(‘소나기’) 마음을 가다듬고 삶과 죽음의 의미 등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곰곰이 짚어가는 시인의 모습은 “도토리 한 알을 안고 산길을 오르는/ 저 날다람쥐의 진지한 손짓 발짓!”(‘석양에’)만큼이나 숙연하다.


누군가 내 생을 다 살아버렸다는 느낌! 그런데 그 누군가는 누구이며, 과연 나에게 생 같은 것이 있기는 있었을까? 잘 구르지 않는 수레에 시커먼 연탄 같은 것을 싣고 가파른 언덕길을 죽어라 밀고 왔다는 느낌뿐. 그런데 코밑에 연탄가루 잔뜩 묻은 그것을 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 시간은 때로 뱀처럼 미끄럽게 손아귀를 빠져 달아났고 운명은 늘 제 얼굴을 가린 채 차갑게 나를 스치고 갔을 뿐 한번도 제 모습을 똑바로 보여준 적이 없지.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듯 이렇게 싸락눈 내리는, 그친 길 위에 문득 나를 멈춰세워 날카로운 질문만 던질 뿐. 과연 내가 살기는 살았을까? 아니, 생을 제대로 살고 있기는 있을까? - ‘싸락눈 내리는 저녁’ 부분

 

시인의 말

원고를 넘기고 나서 미진한 것 같아 교정을 세 번 보았다. 어떤 것들은 들어내고, 어떤 것은 들어냈다가 다시 넣었다. 저번 시집에 비해 ‘인용시’들이 많이 줄었으나 아직도 적잖은 분량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류의 작품들이 시가 아니라고 타매하기도 하지만, 나는 시가 아니라도 좋으니 이런 작업을 통해서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난 시대의 ‘참여시인’이란 명칭이 좋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작품들이 미미하지만 ‘시적인 것’의 발현으로서도 이 오랜 고독의 시간을 잘 견뎌냈으면 한다.

 

추천사 _염무웅(문학평론가)

이시영의 시는 언제나 시 자체에 대한 방법론적 성찰을 동반한다. 그가 사물의 묘사에서 되도록 ‘감정의 유로’를 억제하고 ‘정서의 침윤’을 배제하는 것은 단순히 감상주의의 거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참모습을 실상에 가장 가깝게 드러내려는 그의 시학적 의도를 반영한다. 그 결과 그의 시는 때로는 ‘석양에’ ‘아침이 오다’ ‘이 밤에’에서처럼 아주 짧고 비유적인 선시(禪詩)의 형태를 취하고, 때로는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 없는 세상’ ‘어린이노동’에서처럼 신문기사나 독서노트의 사무적인 문체로 표현된다. 이 독특한 스타일은 이제 우리 시단에서 이시영의 이름으로만 통용되는 등록상표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내게 진정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아침의 몽상’ ‘마음의 길’ ‘저녁의 몽상’ ‘싸락눈 내리는 저녁’ ‘행복도시’ 같은 작품들에 그려진 짙은 우울과 한없는 적막감, 벗어날 길 없는 생활의 무게, 그리고 주체적 삶에 대한 갈망과 절망이다. 그것은 한평생 시의 외길만을 걸어온 한 진지한 인간이 역사의 정당성에 대해 던지는, 생애를 건 질문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서정시 본연의 깊은 내면성과 높은 심미적 완성도를 통해 발화됨으로써 드물게 탁월한 시적 성취에 이르고 있다.

 

이시영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수학했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월간문학> 신인작품모집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이슬 맺힌 노래> <무늬> <사이> <조용한 푸른 하늘> <은빛 호각> <바다 호수> <아르갈의 향기>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가 있고, 시선집으로 <긴 노래, 짧은 시>가 있다. 정지용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지훈상, 백석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