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안부' - 장석남

라라와복래 2012. 3. 8. 09:08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라>(문학동네 2012.02.25)에서

 

시인의 말

마침 몸살이 와서 발은 만져보니 차디찬데 이마는 뜨겁다. 그 사이 몸뚱어리 전체는 속닥거린다. 지치긴 했어도 아픈 지경까진 오래간만이어서 찡그린 채 껌뻑거리며 누워 있으려니 회고의 길목이다. 아픔은 회고주의자로 몰게 마련이고 병은 때아닌 종교를 붙들게도 하는 게 이치라면 이치겠다.


뭐니 뭐니 해도 내 생에서 시경(詩境)으로 출타한 것이 인생의 큰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뭉뚱그려 제쳐놓는다. 하, 그게 스물다섯 해가 되었다니! 뭐 밥그릇 수를 밝혀서 미담 제조를 하려는 맘은 추호도 없으나 그간 건너온 징검돌들의 면모가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간신히 바닥에 발붙인 돌멕들이 지금껏 내 걸음걸이의 무게는 겨우 견뎠으나 다시금 되돌아가자면 그만 부스러지고 말 것만 같다. 천상 저편으로나 하나씩 더 놓으며 가야 하리. 만해가 한겨울 널따란 냇물을 맨발로 건너며 중간에서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다던 고초 이야기도 생각난다.

 

다 몸뚱어리가 쑥떡거리는 내용들이다.

 

나는 아직 어느 경계 안으로도 들어서지 못했다.

하긴, 출타는 들어서는 게 아니니까.

다행이다. 아프다.


이렇게, 선(線) 하나를

긋고,

나는…… 나를…… 느끼고 싶다.


인제 만해마을 서창(西窓) 아래 엎드려,

장석남 識


 

시인 장석남은 1965년 인천에서 났다.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몇 권, 산문집 두어 권 냈다. 최근 문학동네에서 일곱 번째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라>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