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바다의 미풍 - 스테판 말라르메

라라와복래 2012. 7. 23. 21:43

 

바다의 미풍

_스테판 말라르메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달아나리! 저곳으로 달아나리!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서

새들 도취하여 있음을 내 느끼겠구나!

어느 것도, 눈에 비치는 낡은 정원도,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 붙잡을 수 없으리,

오, 밤이여! 백색이 지키는 빈 종이 위

내 등잔의 황량한 불빛도,

제 아이를 젖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리라! 그대 돛대를 흔드는 기선이여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한 권태 있어, 잔인한 희망에 시달리고도,

손수건들의 마지막 이별을 아직 믿는구나!

그리고, 필경, 돛대들은, 폭풍우를 불러들이니,

바람이 난파에 넘어뜨리는 그런 돛대들인가

종적을 잃고, 돛대도 없이, 돛대도 없이, 풍요로운 섬도 없이......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 저 수부들의 노래를 들어라!

출전_ <시집>(문학과지성사. 번역: 황현산)

[원시를 소개합니다.]

Brise marine

Stéphane Mallarmé

La chair est triste, hélas! et j'ai lu tous les livres.

Fuir! là-bas! fuir! Je sens que des oiseaux sont ivres

D'être parmi l'écume inconnue et les cieux!

Rien, ni les vieux jardins reflétés par les yeux

Ne retiendra ce cœur qui dans la mer se trempe

O nuits! ni la clarté déserte de ma lampe

Sur le vide papier que la blancheur défend

Et ni la jeune femmme allaitant son enfant.

Je partirai! Steamer balançant ta mâture,

Lève l'ancre pour une exotique nature!

Un Ennui, désolé par les cruels espoirs,

Croit encore à l'adieu suprême des mouchoirs!

Et, peut-être, les mâts, invitant les orages

Sont-il de ceux qu‘un vent penche sur les naufrages

Perdus, sans mâts, sans mâts, ni fertiles îlots...

Mais, ô mon cœur, entends le chant des matelots!

 

살갗을 말갛게 씻어주는 바람이 열린 창마다 불어오고 불어온다. 기분 좋은 바람이다만 가뭄이 극심하다니 마냥 반길 수 없는 노릇이다. 비 기운을 한 점 남김없이, 멀리 멀리 쓸어가 버릴 바람 속에서 ‘바다의 미풍’을 읽는다.

말라르메가 23세 된 해 5월에 썼다는 시다.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젊으나 젊은 나이에 미리 모든 생을 포식한 듯한 이 권태! 지긋지긋한 권태를 앓으며,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이라느니, “이국의 자연을 향해 돛을 올려라!”느니, 마음을 부추기지만 “손수건들의 마지막 이별을 아직 믿는구나!”,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넌더리낸다. 여긴들 저긴들…….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저 수부들의 노래를 들어라!” 이 사이키델릭한 비명!

‘바다의 미풍’은 나른하고 우아한 시인으로 알고 있던 말라르메의 신경증적인 청년기 모습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여기까지 썼는데, 명랑이(우리 집 막내 고양이)가 옆 의자에서 징징거린다. “어……” 나는 명랑이를 흘깃 보면서 멍하니 일어나 “어, 그래, 우리 말라르메야” 중얼거리다 킬킬 웃었다. 우리 말라르메~ 명랑이 이름을 말라르메라 지어도 좋았겠다. 의자에서 뛰어내린 말라르메, 아니 명랑이가 간식 캔을 가지러 가는 내 뒤를 좋아라 쫓아온다.

이국에의 향수, 바다, 청춘, 말라르메…….

문학집배원 황인숙

 

스테판 말라르메 1842년 파리 출생. 시집 <에로디아드> <목신의 오후> <시집> <주사위를 한 번 던짐> 등, 미완성 소설 <이지튀르>, 산문시와 평론을 묶은 <디바가시옹> 등이 있음. 1898년 사망.

낭송_ 정인겸 - 배우. 연극 <2009 유리동물원> <맹목> 등에 출연.

캐리커처_ 박종신 / 음악_ 배기수 / 애니메이션_ 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