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꼬마시인과 ‘오만원’ - 최준영(작가·거리의 인문학자)

라라와복래 2012. 8. 30. 05:30
 

 

꼬마시인과 ‘오만원’

최준영_작가·거리의 인문학자

내 가난한 청춘의 추억 속에 담긴 이야기다. 고교과정을 야학에서 마친 나는 대학에 입학한 뒤 야학교사로 활동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다녔던 야학에선 활동할 수 없었다. 야학이 재개발 바람에 휩쓸려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돼 버렸기 때문이다. 흩어졌던 야학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은 건 동문회였다. 야학 동문회는 별도의 만남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고아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모임을 이어가기로 했다. 매달 스무 명 남짓의 교사와 학생 출신들이 양평 근처의 고아원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그러기를 10여 년이나 계속했다. 그때 만난 고아원의 꼬마시인과 두물머리에 얽힌 아련한 추억이 있다.

언론에 비친 고아원의 주인공은 늘 방문객들이고, 아이들은 뒷전이다. 아이들이 방문객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꺼리고 경계하기까지 한다. 특히 좀 나이가 든 아이일수록 더 그런 편이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오는 여느 방문객들과 달리 함께 놀아주고 청소며 빨래를 도맡아 했는데도 2년여 동안 우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일을 돕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아이들과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꾀를 내야 했고, 논의 끝에 아이들의 문집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문집을 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고 모집부터가 난항이었다. 마음이 닫혀 있는 아이들이 글을 쓸 리 없었던 것. 문집은 아예 나올 가망조차 없었다, 고아원에 개 한 마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개가 나타난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이들이 돼지저금통을 털어 산 개였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방문자가 있을 때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던 아이들이 밖으로 나와서 개와 함께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개를 앞세운 아이들은 연일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다.

무려 4개월 만에 첫 문집이 나오게 되었다. 거기에 초등학생이 쓴 시 한 편이 실렸다. 제목은 ‘오만원’이었다. 그 시 덕분에 수도 없이 많던 개의 이름이 하나로 정리되었다.

 

  나는 집에 가기가 싫다

  엄마가 없어서다

  집까지 태워다 주는 고아원 봉고차도 싫다

  그 차만 보면 친구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 같다

  이젠 집에 오는 게 즐거워졌다

  오만원이 생겼기 때문이다

  오만원 주고 샀으니까 이름이 오만원이다

  나는 오만원이 좋다

  나를 마중 나오기도 하고 같이 산에도 다닌다

  친구들도 나를 부러워한다

  나는 이제 외롭지 않다

  겁이 나지도 않는다

  나에겐 오만원이 있기 때문이다

  오만원은 엄마나 마찬가지다.(시 ‘오만원’ 전문)

개의 이름은 ‘오만원’이 되었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던 아이들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오만원’으로 개의 이름을 통일시킨 소년에게 우리는 ‘꼬마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복슬복슬한 털을 날리는 오만원과 함께 정신없이 뛰어놀던 꼬마시인을 비롯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러스트 | 김상민 기자

어느 날 고아원에 난리가 났다. 오만원이 사라져버린 거였다. 그날 아이들은 늦은 밤까지 이 산 저 산 헤매면서 목이 터져라 오만원을 부르며 찾아다녔다고 한다. 오만원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동네사람들 말로는 그즈음 개도둑들이 들끓었다고 했다. 오만원이 사라진 뒤 꼬마시인은 말이 없어졌다. 얼마가 지났을까, 꼬마시인도 사라졌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말을 만들었다. 분명히 오만원을 찾으러 갔을 거라고.

사라지기 전 꼬마시인과 함께 두물머리로 소풍을 간 적이 있다. 한동안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던 꼬마시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형, 나도 크면 저 강물들처럼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꼬마시인에겐 엄마가 있었다. 그래서 더 외롭고 더 쓸쓸했을지 모른다. 두물머리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꼬마시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엄마와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두 물이 만나 합수하는 곳이라 해서 두물머리다. 두물머리처럼 꼬마시인도 엄마와 함께 삶의 강을 유유히 흘러가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현실은 만남 대신 이별의 아픔만 더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이름을 지어줘서 그랬을까, 꼬마시인과 오만원은 유난히 가까웠다. 개에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투사했던 꼬마시인은 오만원을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했을 것인가. 오만원의 실종과 부재가 꼬마시인에게는 또 얼마나 큰 상처이고 좌절이었을까.

꼬마시인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엄마는 만났을까. 만남과 소통의 공간, 두물머리를 지날 때마다 고아원에서 사라져버린 꼬마시인과 오만원을 떠올리게 된다. 두물머리가 개발꾼들의 탐욕에 능욕당하고, 농사짓던 농부들마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을 두방망이질 당하는 기분이 되는 이유다. 만남과 소통의 두물머리가 몰수와 저지의 외곬으로 변질되었다니, 마치 내 청춘의 추억마저 훼손당한 느낌이다. [경향신문 2012.08.30 ‘정동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