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고은과의 대화](50) 고향의 죽음 이후, 내 몸속에서 죽음이 풀처럼 우거지기 시작했다네

라라와복래 2012. 9. 4. 12:16

[고은과의 대화](50) 양 세기의 달빛

고향의 죽음 이후, 내 몸속에서 죽음이 풀처럼 우거지기 시작했다네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선발전이 진행 중입니다. 낡은 사고를 깨우는 새로운 언어도, 거시적 전망을 밝히는 설득력 있는 통찰도 보이지 않습니다. ‘글로벌’이라는 표어는 많지만 국제적 환경 속에서 남북 대치의 특수성을 안고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서는 판박이 같은 진단만 반복되고 있어요. 선생님의 전쟁 체험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재료로 쓰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제 ‘전란 속 개인사’의 외연에 있는 국제사회의 입장, 개괄적인 양상 같은 것들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하는데요.

고은 전쟁은 두 번의 쾌감을 낳았어. 그 쾌감은 적과 아군이 한 번씩 배당받은 쾌감인 셈이었지. 하나는 전쟁 초반의 김일성이고 그 중반의 맥아더였지. 아니 맥아더보다 더 쾌감의 절정에 이르렀던 사람은 이승만이었어. 그가 평양 탈환 직후 평양 역전 광장에서 북한 인민들의 태극기 속에서 열변을 토한 사실은 이에 앞서 김일성의 서울시청 앞에서의 쾌감 못지않은 것이었지.

김형수 밀고 밀리는 점령과 탈환 사이의 상반된 환호가 거울 속의 대칭 같습니다.

고은 하지만 이런 쾌감이 한 번씩 배당된 뒤 이 전쟁이 겨우 6개월이 못 되는 그해 12월에 접어들자 16개 참전국들은 급성 피로증세를 일으켰어. 한마디로 그 임시 동맹국들은 미국 주도의 그 전쟁 의지에 무제한의 신용장을 허용하지 않게 된 것이네. 바로 이 전쟁에서 하루속히 이탈하려고만 했어. 유엔 회원국 아시아·아랍지역 13개 국가들이 한국전쟁 휴전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내어 압도적인 다수로 전체 회의에서 채택되게 되었지.

김형수 전쟁의 주체라 할 미·중·남북만의 입장이 아닌 13개 유엔 회원국들의 입장이 휴전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국제사회의 여론이 전쟁 당사국들의 이해를 제어하는 기제가 되었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인 것 같아요.

고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나면 한국전 총책의 유엔군 최고사령관 리치웨이는 휴전회담을 제안하는 라디오 연설을 하는데 이때 6·25는 실질적으로 끝난 것으로 말하더군. 거기서부터는 전쟁은 작전상태이기보다 하나의 교착상태였다고도 말하더군. 막대한 희생을 낸 중공군도 승리의 목표를 사실상 포기한 미국도 이 전쟁으로 죽기 살기를 담판할 생각이 전혀 없게 되었어.

김형수 ‘이긴 자도 진 자도 없는 전쟁’이라 불리는 6·25가 수많은 주검만 남긴 채 냉전체제의 최전선으로 굳어져버린 셈이군요. 자원전쟁과 제국주의적 각축이 재연될 조짐이 커지는 작금의 환경에서 신냉전 체제가 가시화된다면 우리는 자칫 똑같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일 아닐까요? 정전 무렵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그림 | 임옥상 화백

고은 사실 맥아더의 만주 진입이나 만주에 대한 원폭 구상 따위도 그의 오랜 전쟁 경륜의 말기에 남겨진 크나큰 실수일 수밖에 없었지. 늙은 모험주의였어.

김형수 맥아더의 만주 원폭투하 구상은 국제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었군요.

고은 만주 전투라면 어떻게 군수품 공급이 쉽겠어. 그곳이야말로 중공군 득의(得意)의 작전지구가 아닌가. 묘한 사실은 한국전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미국과 서방 참전국 병력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중공의 주적인 대만 국부군의 심정도 미국이라는 서양세력을 물리치는 중공군의 승전보를 즐겼다는 사실이네. 청말 아편전쟁 이래 중국인의 서양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을 떠올리는 현상이었지. 대만의 장제스(蔣介石) 친위의 국부군 고급장교의 입에서 미국이 중국한테 졌단 말씀이야 하고 쾌재를 부른 사실이 알려졌어.

김형수 이데올로기로 양분된 전선에 동서양이라는 진영 각축의 의미가 더해진 상태였네요.

고은 아무튼 유엔군이라는 이름이건 미군이라는 이름이건 이제 이 전쟁은 묘한 유지작전으로 주춤거리는 시간 벌기에만 급급했어. 이 전쟁의 진짜배기 명령은 ‘계속 싸워라. 그러나 너무 심하게 싸우지는 말라. 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기지도 말라’였어. ‘전쟁은 또 하나의 외교’라는 전쟁론이 있지만 실제로 6·25 1주년 이후로는 전쟁에서 외교의 차원으로 그 작전의 의미가 바뀌고 말았어.

김형수 정치의 마지막 수단이 전쟁이라고 한다면 외교전으로의 전환은 전쟁이 다시 정치의 자리로 돌아온 셈이네요. 산더미 같은 주검과 폐허, 근거지 박탈 그리고 개인의 내면에 새겨진 상처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전쟁이 또 다른 국면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전쟁의 시작과 끝 모두에서 ‘주체’로서의 ‘남북’은 없이 말입니다.

고은 휴전을 앞두고 한 치의 영토라도 회복한 뒤 거기까지 휴전 경계선으로 삼아야 할 전투의 과격성은 또 다른 비극이었지. 그래서 쌍방 대치로 빼앗고 빼앗기는 몇 십 번의 고지 점령 번복이 있게 되었지.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죽음의 계곡’ 따위의 처절한 이름들이 미국 종군기자들의 작명으로 남고 군 당국이 임시로 지은 ‘김일성 고지’ ‘스탈린 고지’ ‘모택동 고지’의 다른 쪽에 쌍방의 청춘 공동묘지가 된 휴전회담 시기의 격전지 ‘백마고지’ ‘켄자스 전선’ 등의 이름들이 있게 되지. 한국 현대시가 자연이나 음풍농월에 지겨운 나머지 그런 이름들로 전쟁의 한 현장을 노래하는 현실 참여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어. 물론 이것은 식민지 시기 일본의 전쟁을 찬미하는 굴종의 친일시와는 다른 직접적인 현장 당위였던 것이지.

김형수 얼마 전의 올림픽 탁구에서 남북 선수들이 맞붙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겨도 져도 안타까운 근친의 고통이 느껴졌어요. 스포츠일 뿐인데…. 휴전을 앞두고 양 진영에서 사라져간 ‘청춘’들의 ‘무덤’을 위로할 정치언어가 있을 수 있을까요?

고은 1952년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당선자로 한국에 왔을 때 그는 미군의 작전보고서 따위를 살펴보지도 않았고 한국 대통령과의 면담도 잠깐으로 끝냈어. 맥아더가 한국전을 전쟁으로 완성하려 했다면 아이젠하워는 그것을 현 상태로 정지시킨 것이지. 하나가 불운에 파묻힐 때 하나는 시의적절한 행운으로 솟아올랐어. 아이젠하워는 수원 비행장에 내려서 한국인의 열렬한 환영인파 속에 있었고 그 뒤로 한 번 더 1960년 4월 혁명 당시 이승만 망명 뒤의 서울시청 광장에서 인파 속에 파묻혔어. 누구는 공들이고도 물 한 그릇 못 얻어먹고 누구는 순 공짜로 진수성찬을 받은 셈이지. 사실은 한때 미 공화당은 아시아 무대를 담당한 맥아더를 대통령으로 추대할 분위기였는데 지구상의 동서체제는 매가 아니라 비둘기를 날리는 시대가 되었어.

김형수 정치와 전쟁의 두 주역인 아이젠하워와 맥아더의 각축, 미국 내 매파와 비둘기파의 대립이 한국 현대사의 운명에 고스란히 연동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고은 비둘기가 평화의 새가 된 것은 우스꽝스러운 노릇이 아닌가 하네. 그 새가 노아의 홍수 전설 속에서 나오는 새라는 것이 평화 정서에 부합되는지는 모르지만 비둘기의 생태는 결코 평화적이지 않네. 많은 동물들이 자신의 서식지를 넘어서는 일을 자제하지. 생존 독트린이라 할까. 개가 가다가 오줌 싸는 것도 자신의 흔적으로 존재감을 표현하는 언어행위로 보네만 그것은 영토에의 기표인 셈이지. 잔짐승만이 아니라 맹수들도 자신의 영토 밖을 함부로 넘보지 않는 장소의 분배 형식을 지키지. 그런데 비둘기란 놈은 다른 비둘기의 경계를 걸핏하면 침범함으로써 비둘기끼리의 피 터지는 싸움을 일삼지. 비둘기는 평화의 새일 수가 없어.

김형수 같은 종끼리 죽음에 이를 만큼 혈투를 벌이는 ‘비둘기’가 유엔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 참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고은 나는 감옥에 있을 때 감방 창살을 통해서 간식 남은 것을 주면서 감옥 옥사 지붕이나 처마 밑에서 숙박하는 비둘기의 일거일동을 관찰한 적이 있어. 평화의 새이기는커녕 참새나 까마귀와 다를 바가 없는 새였어. 그들 몇 백 마리가 서대문구치소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는 영락없이 서울시청 구청사 지붕으로 집단 출근을 해서 낮을 지내지.

김형수 도시의 청소부라 부르는 ‘비만한 비둘기’들의 집단 출근을 감방 창 너머로 확인하신 거군요.

고은 전쟁 소강상태의 후방에서 나는 또다시 불안상태에 잠겼네. 선유도에서 돌아온 뒤 미군 부대에서도 결코 내 가출 증상은 가라앉을 줄 몰랐어. 일단은 비둘기의 고정생활처럼 어쩌다 휴가가 생기면 고향 마을에 가보지만 더 이상 그곳은 나의 장소가 아닌 사실만을 확인했다네. 이광수가 일제 강점하의 조국을 아주 시시하게 멸시하는 투로 ‘조선을 버릴 거나 말 거나’ 하고 교만방자한 소리를 남겼는데 조국이란 한낱 식자(識者) 나부랭이가 버린다고 버려질 나위도 없지 않는가. 아무튼 나는 떠날 이유가 깊어갔어.

김형수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인지 내가 세계라는 심연의 한 조각인지 결국 주체를 인식하는 입장의 차이일 텐데, 마음과 정신이 얼마나 ‘낮은’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겠지요. 지식인들의 숱한 배반은 과장된 자기 존엄성과 관련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고은 내가 고향에 발붙이지 못하는 사실은 춘원의 교만이 아닌 것은 틀림없었지. 나는 고향을 헌신짝으로 내버린 것이 아니라 고향에서의 비인간적인 사태로 하여금 한 고향의 청소년의 정신적 동정(童貞)이 파괴됨으로써 고향에의 천부적인 소여성(所與性)이 없어진 것이네. 불가에서 말하는 능화(能化)도 소화(所化)도 내 몫이 아닌 셈이었어.

김형수 고향 혹은 지상의 거처라는 근거지는 물리적 공간이기만 한 게 아니라 순정한 ‘정신적 동정’으로 채워진 존재의 내면이기도 한 거로군요. 귀향이 불가능한 나그네에겐 모험이라는 원심력도 갖기 어렵다는 말씀이 아프게 와 닿습니다.

고은 가령 엘리엇은 그의 출생지인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와 그가 자란 보스턴이나 하버드를 한동안 혐오한 뒤 요컨대 미국을 떠나 영국으로 귀화함으로써 그의 보수주의를 심화시키지만 나의 고향 상실은 일체의 보수 부정이었어.

김형수 아, 젊은 날의 ‘현실 혐오’와 ‘고향 상실’이 동일 궤적에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고은 분명한 것은 고향이 내 앞에서 사라진 것이지. 그토록 자주 오르내리던 할미산의 산등성이 북쪽의 비탈 깊은 방공호 몇 개가 바로 피학살자가 켜켜이 쌓인 무덤일 때 학살자와 피학살자가 한 마을의 두레였고 이웃이었던 사실이 얼마나 헛되겠는가. 그러므로 하늘 밑 어디가 내 두견새 우는 고향이겠는가. 그곳은 나를 어디론가 쫓아 보내는 곳이었어.

김형수 슬퍼요. 1980년 광주항쟁 때 김남주 시인이 광주교도소 창살을 잡고 불렀다는 ‘찾아갈 곳은 못 되더라 내 고향’이란 유행가가 떠오릅니다.

고은 고향 마을에도 어김없이 황해도 재령 나무란벌에서 온 피란민 10여 가구가 살게 됨으로써 군산시내의 원주민과 피란민의 복합사회와 다를 바 없었어. 자유당의 족청파나 한청 계열의 극우 반공만이 폐허에 임시가옥들이 들어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으므로 차라리 나의 미군기지 영내 생활이 나 자신에게 적응력을 남겨 주었지. 고향조차도 타향이 되는 일이 8·15의 이념 분열이고 6·25의 생존 분열이었다네.

김형수 현실을 현실이 아니라 할 수도 없고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겠어요. 그 힘든, 해방공간과 6·25로 이어진 몇 년간 ‘고향조차 타향’인 존재 상실의 시기를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은 20대에 들어선 내 수준 낮은 의식에서 어디서 얻어들은 ‘본질’이라든가 ‘원점’이라든가 하는 것에는 반드시 나에게 너무 포괄적으로 엄습해 온 ‘죽음’이 들어 있는 것을 체감했다네. 죽음의 현학(衒學)만이 내 진리인 셈이었지. 내가 치러내고 나에게 직면하고 나에게 살갗처럼 눌어붙어 있던 고향의 죽음은 기어코 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생겨난 관념 안에 자리 잡았어. 내 몸속에서 죽음이 풀처럼 우거지기 시작했어. 특히 항구의 제1부두에서 제5부두까지의 그 야간 조명의 진공 같은 야식시간의 적막이야말로 내 죽음의 적재적소였네. 내 죽음에의 생각이 터 잡는 명당이었어. 나에게 죽음은 점이나 어떤 틈이 아니라 내가 실컷 내달려도 될 허망한 공간이었네. 자정에는 부두 하역과 열차 적재의 노무자들이나 근무병들이 다 영내의 식당으로 가는 시각이라 항구는 텅 비게 되지.

김형수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읽은 ‘존재감의 상실’이 생각납니다. 일본에도 한국에도 속할 수 없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그가 견디는 세계는 실감이 사라진 희미한 그림자들뿐이었습니다. 영국의 어느 한 호텔에서 그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을 읽으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우는 자학적 구조는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해요. 6·25의 시체 더미를 내면에 가득 채우고 계셨던 선생님의 ‘25시’가 손에 잡히는 듯합니다.

고은 부두에는 외항선 6000t급, 1만t급이 정박해 있고 대기된 선로의 열차 차량들도 조용했어. 나는 그 시각에 며칠 전부터 굳혀 온 내 결심한 바를 실행한 것이네. 바로 부두와 선체 사이의 비좁은 물속으로 몸을 던져 넣으면 그 부두와 선체 밑의 터빈에 휘말리는 물에 의해서 내 몸은 터빈에 휩쓸려 분쇄될 터이지. 내가 ‘풍덩!’ 하고 몸을 넣고 일부러 그 탁류의 해수를 몇 모금 삼켰는데 의식의 끝에 실신한 나머지 나에게 남은 본능이 그 좁은 물속에서 팔을 저어 허우적였던 것이지. 그런데 그때 석탄 적재의 일본상선 천산환(千山丸)의 이등항해사가 잠을 설친 나머지 본국의 처자 생각을 하며 배의 해치 근처에 나와 인적 끊긴 항구의 야경을 바라보았어. 한 남자가 부두와 선체 사이로 걸어 와서 주저 없이 뛰어드는 것을 보고 부랴부랴 선상의 구급 밧줄을 무턱대고 물속으로 집어넣었어. 그 밧줄이 본능으로 내젓는 내 팔의 겨드랑이에 걸려서 나는 떠오르게 되었네. 물론 나는 실신 상태고 몸속에는 물이 차 있었지.

김형수 헙,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요. 파블로 네루다의 ‘피 흘리는 우주’가 떠오를 뿐입니다.

고은 일본 선원은 밧줄을 고정시켜 놓고 트랙으로 내려와 나를 간신히 건져 올렸어. 흠뻑 젖은 나를 배 위로 업고 올라가 의무실로 가서 물을 토해내게 했어. 해난사고 수습에 익숙한 그 의무실의 응급조치로 나는 30분 이내에 의식을 회복했지. 나는 그 잘 꾸며진 의무실이 내가 죽어서 온 저승으로 알았어. 병실 냄새를 맡으면서 그리고 나를 기쁜 얼굴로 내려다보는 몇 사람의 시선에 의해서 그곳이 저승이 아니라 이승임을 알 수 있었다네. ‘아 살아났네’라는 일본말을 들었어. 혈관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 의무실에서 안정한 뒤 나는 선실로 끌려갔어. 이등항해사 전용실이더군. 그 선원이 이름을 알려주었어. ‘하시다 고오진’(橋田公臣)이었어. 그가 나를 구조한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고 나서 나에게 책 한 권을 주었어. 책 몇 권이 꽂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였어. <성공의 법칙>이었어. 첫 대목이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파랑새 얘기로 시작하더군. 행복의 새는 먼 곳에 있지 않고 돌아온 집의 지붕 위에 있었다는 것이지. 말하자면 그 일본인 항해사는 내 생명의 은인이었지. 그런데 그가 탄 배가 일본으로 돌아가다 태풍을 만나 세도내해 바다에서 침몰했어. 그가 거기서 세상을 떠났어. 나를 살리고 나를 살린 그는 죽었어.

김형수 죽음은 영원성에 대한 금기일까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산 채로 깊은 죽음을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수직의 실루엣이 없는 광활한 바다, 스러졌다 일어서는 파도의 찰나가 어떻게 허무 그 자체인지 알 것 같습니다.

고은 죽음은 나에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어.

김형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지금 고교시절 그토록 매혹당했던 명작 ‘부활’의 탄생지에 당도한 감회가 얼마나 큰지 몰라요. 이 감사의 마음에는, 한국의 지적 풍토 탓인지, 세상의 산란함 탓인지, 그렇게도 가까이 있었던 정신 하나를 그렇게도 멀리 떨어져서 읽었다는 각성도 함께 담겨 있어요. 저는 여기서 한국 문단이 고은 이해의 전반을 재조정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초기를 ‘관념적 허무주의’라 지목했던 것은 얼마나 ‘관념적인 처사’였는지 모르겠어요. 그토록 뼈아프고 그토록 부조리한 세계의 실존을 견디는 형식이 폐허에 대한 지향이고 허무에 대한 집착이며 영점으로의 귀환이었던 것을. 또한 그 무거운 과거에 대한 전면적 항거와 반전의 혁명이 바로 ‘부활’이었음을 여기에 꾹 눌러 표시해두고 싶어요.

고은 예정한 1년간 50회로 ‘양세기의 달빛’은 그 1부를 여기서 마치네. 그 동안 자네는 나에게 무척 계시적이었네. 고귀한 지면을 제공해준 경향신문에 감사하네.

 

  출처 : 경향신문 2012.09.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312022185&code=210100&s_code=af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