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빼빼’의 일생 - 최성각 | 작가ㆍ풀꽃평화연구소장

라라와복래 2013. 12. 12. 12:46

‘빼빼’의 일생

최성각 | 작가ㆍ풀꽃평화연구소장

지난밤 자정께에 ‘빼빼’가 세상을 떠났다. 가쁜 숨밖에 안 남았지만 확실하게 ‘있던’ 빼빼가 주검만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이때 갔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디로 갔을까?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을까라는 선가(禪家)의 물음도 어쩌면 어느 선승이 개를 잃고 난 뒤에 던진 질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빼빼의 나이는 열여덟 살. 사람의 나이로 치면, 백세장수에 해당된다는 소리도 얼추 들렸다. 빼빼는 먼저 눈이 멀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씹지 못했다. 그렇게도 잘 먹던 녀석이 먹는 일을 힘겨워했다. 에너지를 취하는 게 수월찮고, 보이던 세상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생물이기를 그치려는 징후에 틀림없었다. 듣기에도 고통스럽고, 바라보기에도 힘겹게 천천히 생명이 식어 갔다. 그런데도 나와 같이 오랜 시간 시민운동을 해 온 빼빼의 주인은 그 결정적 죽음의 징후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바닥에 음식을 개서 먹였고, 눈 먼 빼빼를 규칙적으로 산책시켰다. 개집에는 입던 옷을 부모 봉양하듯 깔아주었고, 햇빛의 이동에 따라 개집 위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바꿔주었다. 빼빼는 한낱 개에 불과한데, 그 지극함이 도를 넘쳤다.

“지나치십니다.” 힐난은 아니었지만 어느 날 지켜보다가 한마디 했더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말했어요. 말 못하는 것들이 더 불쌍하다고요”라고 답했다. 그가 지렁이나 새에게 감탄하는 생명운동을 펼쳤는데, 운동의 연원은 그 어머니의 생명사랑과 닿아 있었다. 사람은 본 대로 흉내 내며 형성된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빼빼는 본래 시내에서 호프집을 하는 홍씨네 개였다. 홍씨는 자주 여인네가 바뀌었고, 사업은 기복이 심했던 모양인지 빼빼는 그 화풀이로 얻어맞을 때마다 아랫집으로 도망쳤다. 자주 굶고 자주 맞기만 하던 빼빼는 어느 날 주인을 갈아치울 결심을 하고, 아랫집으로 도망쳐 온 뒤 본래 제 집으로 가지 않았다.

나는 홍씨에게 “이 개가 이리 도망쳐 와서 가려고 안 한다. 이 개를 여기서 키워도 되겠는가” 하고 허락을 청하자, 날더러 ‘헹님’이라 부르던 홍씨는 선선히 허락했다. 그날 홍씨에게 그 흔쾌함에 대한 답례로 막걸리 대접을 했던 기억이 난다.

빼빼의 새 주인은 빼빼가 자주 굶어 뼈만 앙상하기에 빼빼마른 형상에서 새 이름을 따왔다. 그 후 지난밤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17년간 빼빼는 그야말로 호의호식했다.

빼빼는 사랑 때문에 활기를 찾았고, 그 사랑에 답하기 위해 당시 자주 비우던 집을 수년간 열정적으로 지켰다. 빼빼가 뛸 때 모습을 볼라치면, 발바닥이 지면에 닿지 않는 것 같아서 마치 작은 솜뭉치가 빠른 바람에 휙 날아가는 것 같았다. 가끔씩 내가 나타나면 빼빼는 땅바닥에 등을 깔고 누워 그 완전한 의탁과 믿음을 표현했다. 잘 먹었고, 먹고 돌아서서 이내 또 먹었다. 그러곤 코를 내밀고 동네 처녀 개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는데, 어떤 날은 집을 나가 며칠씩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동네 암캐들과 밀애에 빠진 것이었다. 그즈음 빼빼가 동네에 뿌린 씨는 한두 해 상간으로 태어난 여러 마리의 강아지들로 입증되곤 했다. 빼빼는 바람둥이였던 것이다.

굵은 오디가 함석지붕에 떨어져 금속음을 내면서 구르면 빼빼는 움찔움찔 놀라곤 했다. 그러나 오디보다 치명적인 가래의 낙하는 용케도 피했다.

자연의 순리에 순행했다면, 빼빼는 지난 겨울에 세상을 떠났어야 할 생물이었다. 그러나 주인의 극진한 사랑으로 화사한 봄과 이내 닥친 폭염, 그리고 시원한 가을을 한 번 더 누렸는데, 사랑은 때로 순리를 역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다.

빼빼의 일생을 요약한다면, ‘견생(犬生)’ 초년의 극심한 고생 끝에 가거지(可居地)를 찾았고, 이후 좋은 주인을 만나 넘치는 사랑을 받고, 목줄에 매이지 않은 독립적인 신분으로 원껏 사랑하고 사랑받다가 수를 다한 다복한 생이었다. 빼빼라는 이름의 개의 일생이 지극히 평범하고, 그 세계가 비록 툇골 골짜기에 한정된 아주 작은 삶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름답지 않거나 쓸쓸하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도 결국은 때가 되면 빼빼처럼 늙고 병들어 사라질 것이다.

참으로 묵과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되레 ‘묵과할 수 없다’는 말을 마구 남발하면서 세상을 광기와 당착으로 뒤덮고 있는 바로 이때, 그로 인한 일상적인 분노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장에 해야 할 일, 곧 빼빼를 묻을 양지바른 땅에 부지런히 곡괭이질을 했다. [경향신문 녹색세상 201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