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황무지 - T. S. 엘리엇(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라라와복래 2010. 4. 2. 16:28

 

 

황무지

The Waste Land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황무지  / T. S. 엘리엇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만 유지했으니......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 ‘4월은 잔인한 달’... 이맘때쯤 되면 으레 한두 번쯤 방송에서 듣는 말입니다. 유명한 <황무지>의 시작 부분이지요. 그러나 이 부분은 자주 인용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흡족지 않은 4월의 경험을 토로하는 차원이 아니라,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망각의 눈’에 싸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은 그래서 잔인합니다.

 

대학시절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는 정말 황무지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함께’의 삶이었고,

마음은 씨앗 하나만 심어도 금세 싹트는 푸른 벌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창한 봄이 되어도 생명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된 마음이 허허롭기 짝이 없습니다.

 

장영희 · 서강대 교수{영문학)

 

음악 : Late Night Seren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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