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담쟁이 - 도종환

라라와복래 2010. 5. 11. 09:52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다음은 경향신문 5월 4일자 ‘김석종이 만난 사람 -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도종환 시인’을 전재한 것입니다.]

 

“작가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어 힘들고 속상합니다”

 

도종환 시인(56)은 요즘 몹시 바쁘고, 시끄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국 충북 보은 첩첩산중의 ‘구구산방(龜龜山房)’을 찾아가는 일은 포기했다. 1일 오후 충북 청주 국립청주박물관 전시관 ‘청명관’에 딸린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춘래불사춘의 날씨 끝에 모처럼 맑고 화창한 봄날이었다. 이름대로 ‘청명’한 찻집의 창밖으로 저녁 햇살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충북 보은 구구산방과 청주를 오가며 글을 쓰고, 사회활동을 하는 도종환 시인은 자신의 시 ‘부드러운 직선’처럼 섬세한 감성과 굽힐 줄 모르는 지사적 의지를 함께 지녔다. 청주|정지윤 기자

 

- 구구산방에서 산길을 걷고, 꽃을 보고, 차를 얻어마시고 싶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맑은 봄날을 오랜만에 만납니다. 구구산방은 지금이 제일 예쁠 때입니다. 산방에 가려면 쌍암재라는 고개를 넘는데 연두색 이파리들이 돋아나서 산색이 아주 곱지요. 매화나 산벚꽃은 지고, 복숭아 앵두나무 자두나무가 꽃을 피웠어요. 자두꽃 향기는 깊고 은은해서 제가 제일 좋아합니다.”


시인의 표정은 여전히 온화하고 말씨는 부드럽다. 서정시인다운 섬세한 풍경 묘사 사이로 박물관 창밖의 은은한 초록이 겹쳐든다. 금세 마음이 ‘청명’하고 ‘청안(淸安)’해진다. ‘청안하시냐’는 말은 도씨가 엽서나 e메일을 보낼 때 자주 쓰는 안부 인사다. 청화 스님이 생전에 좋아했던 말씀을 인사말로 가져다 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의 도씨를 만나면 본론은 ‘세상과의 싸움’ 쪽이기 쉽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민예총 부회장으로,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장으로 정부와 문화예술계 싸움의 ‘총대’를 멨다. 최근에는 충북도 교육감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도씨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그 슬픔과 아픔을 녹여낸 <접시꽃 당신>은 1980년대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였다.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런 선입견 때문에 문학적 평가와 열성적인 사회활동은 조금 가려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초창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해 좌천, 해직, 투옥됐다. 10년 만에 복직해 시골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자율신경실조증’이란 병에 걸려 다시 학교를 떠났다.


세속에서 망가진 몸을 이끌고 구구산방에 틀어박혔다. 꼬박 5년을 거북 모양의 황토집에서 거북이처럼 느리게 느리게 지내면서 순정한 글을 썼다. 나무, 풀, 들짐승이 그의 친구였다. 몸과 마음은 균형을 되찾았고 병은 깨끗이 나았다. 그는 산방생활을 통해 “빠른 삶은 병든 삶, 느린 삶은 건강한 삶, 조용한 삶은 거룩한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참여정부가 끝나던 2008년부터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았지만 산방생활의 리듬을 깨지는 않았다.


그를 저잣거리로 불러내는 사건이 터진 것은 꼭 1년 전이다. 시인은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노제를 진행했다. 서정적인 시와 산문으로만 시인을 만났던 사람들에게 그 모습은 몹시도 낯설었다.


- 이제 2주일 후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가 됩니다. 봉하마을 추모식에 참석합니까.


“3월에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백매화 홍매화가 핀 사저에서 권양숙 여사가 쑥국을 끓여주셨습니다. 쑥향이 참 좋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 계셨으면 직접 심은 매화도 보고, 향긋한 쑥국도 드셨을 텐데…. 혼자 남아 빈집을 지키는 권 여사가 안쓰러웠습니다. 추모식에서 추도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 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지난 1년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지요.


“전교조 같은 조직에서 일해 본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후배들이 기어코 사무총장을 맡겼어요. 그런데 하필 이 기간에 문화예술계에서 계속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한국문화예술위원장,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부당하게 자리를 내놓게 됐는데, 그분들이 모두 작가회의와 민예총 소속입니다. 예술가들을 좌우로 나눠서 한쪽을 배제하겠다는 식으로 서툴고 어설프게 일을 하다보니 무리가 따른 겁니다. 용산참사현장도 문학과 예술로 지원했습니다. 지난 2월 2년 임기를 마치고 소설가 김남일씨에게 사무총장직을 넘겼어요.”


-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작가회의에 대한 문예진흥기금 지원 조건으로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면서 작가들이 군사독재 시절처럼 다시 ‘거리의 투쟁’에 나섰는데,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소속돼 있는 대표적인 문인단체인 작가회의를 불법폭력단체로 몰아가려는 시도입니다. 자존심과 긍지로 사는 예술인들을 길들이겠다는 반문화적인 발상에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작가회의 계간지 ‘내일을 여는 작가’ 봄호를 정간하고 거기 실릴 작품들을 거리에서 낭독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어요. 첫 행사로 남한강 여주 강천보 공사현장을 찾았습니다.”


- 4대강 공사현장에 가서 보니 어땠습니까.


“강이 깁스를 한 것처럼, 부동자세로 벌을 서는 것처럼 보여서 당황했어요. 이건 거의 재앙 수준입니다. 작가들에게 강, 산, 자연은 문학의 원천입니다. 감수성의 통로인 자연이 파헤쳐지면 문학 상상력은 빈곤해지고 예술적 영감은 바닥날 것입니다.”


- 문학과 예술이 현실을 바꾸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습니까.


“시와 산문, 그림과 노래로 여러 사람들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현장을 보고 기록하는 것도 작가의 임무입니다. 작가회의 회원들이 4대강을 망치는 사람들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4대강 100인보’라는 시로 쓰기로 했습니다. 시대가 불행하므로 오히려 저항정신과 문학적 긴장이 살아있는 ‘큰 시’가 나올 겁니다.”


- 개인적으로는 산방에서 되찾은 평화가 깨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문학 자체로 할 수 있는 참여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솔직히 힘들고 속상합니다.”


- 충북지역 시민ㆍ사회단체 등에서 도교육감에 출마하라고 ‘삼고초려’까지 했다는데….


“솔직히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문단 어른들과 상의했는데 문학으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지역의 후배들이 문학보다도 교육문제가 더 절박하다는 것을 작가들에게 알리겠다며 서울 작가회의 사무실에 몰려와 농성을 벌였습니다. 단식을 한 친구들까지 있었어요. 선거가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네팔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 요구 사건이 터져 급하게 돌아와야 했어요.”


- 네팔에서는 어떻게 지냈나요.


“안나푸르나 지역에 숙소를 얻어 두문불출했습니다. 앞에 히말라야 연봉인 마차푸차레봉이 우뚝 솟아 있었어요. 인간이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신성한 곳이라고 합니다. 네팔 정부에서 산악인들에게 등반 허가를 내주지 않아요. 명상을 하니까 몸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기운이 느껴졌어요. 우리 삶 속에서도 마차푸차레 같은 신성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 무슨 뜻입니까.

 

“자신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할 마음의 산이지요. 영성이나 정신적인 힘, 상생해야 할 자연,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어른들도 우리에게 마차푸차레 같은 존재입니다.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장일순 선생 같은 분 말입니다. 그런 어른들의 가르침과 자연을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본받을 때 좋은 기운이 넘쳐날 것입니다.”


- 교사 경험과 전교조 활동 등으로 한국의 교육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요.


“몇 년 전 핀란드 교육 시스템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핀란드의 교육은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이루어집니다. 뛰어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는 아이를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입니다. ‘배려’를 통해 상향평준화를 이룹니다. 우리나라는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뒤처진 아이를 탈락시키는 교육입니다. 어려서부터 토의를 통해 합의를 이루고 공동체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 청소년문학상 심사위원으로 만났을 때 백일장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 대학특례입학이나 장학금 혜택이 주어지니까 너무 기교에만 치우친 글을 씁니다. 다양한 상상력, 창의력을 길러주는 글쓰기 대회가 되지 못하고 있어요. 글 쓰는 일이 내 삶을 새롭고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백일장이 되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고, 체험을 하고, 관찰을 해야 오랫동안 좋은 글을 쓸 수가 있어요. 작가회의에서 연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백일장을 시도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 문학수업은 어떻게 했나요.


“중학교 때 집안이 파산해서 친척집에 얹혀살았습니다. 부모님께 편지를 많이 썼습니다. 국어선생님이 편지를 쓸 때 먼저 계절 인사를 쓰는 것이 순서라고 하셨어요. 계절 인사 몇 줄을 쓰기 위해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지요. 풍경과 날씨, 별과 바람, 내 마음을 표현하는 노력을 한 것이 시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80년 5월 군인으로 광주에 투입됐지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그때 기억이 나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는데요. 이 감독이 이번에는 <시>라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제 주연배우인 윤정희씨와 함께 KBS <낭독의 발견>을 녹화했어요. 주인공 미자는 예쁘게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지요. 그래서 시를 공부하게 되지만 세상은 그가 생각하는 시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생활의 고통과 시련을 감내하면서 끝내 한 편의 시를 써낸다고 하더군요. 삶 속의 시, 시 속의 삶을 잘 포착한 것 같아요. 문학이 상처로부터 나오고 그 상처를 치유해줍니다. 어려서 부모님께 편지를 쓸 때 내가 울지 않고 쓴 글은 다른 사람을 울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내가 쓴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구와 같은 맥락일 겁니다.”


- 지난해 정지용문학상을 받고 올해는 윤동주상을 수상했는데요. 특히 정지용의 고향인 충북 옥천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죠.


“옥천에서 처음 교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교조 활동으로 좌천된 곳도 지금은 폐교된 옥천의 시골학교였지요. 옥천에서 아내를 잃었고, <접시꽃 당신>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썼어요. 정지용은 경향신문과 매우 깊은 인연이 있잖아요. 경향신문 주간이던 정지용이 이미 옥사한 윤동주의 시를 지면에 발표해 빛을 보게 됐지요. 다음달에는 제가 서울역에서 출발해 당일로 옥천을 다녀오는 문학테마열차를 진행합니다.”


-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시는 무엇입니까.


“아직은 그런 작품이 없습니다. 평생에 걸쳐 좋은 시 한 편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요즘 들어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지난해 인터넷 매체에 일주일에 두세 편씩 ‘산방엽서’를 연재하면서 좀 후회했어요. 샘물도 충분히 고인 다음에 맑은 물을 긷듯이, 시심도 고이기 전에 마구 퍼내면 고갈됩니다. 만해, 윤동주, 이육사 시인은 평생에 걸쳐 시집 한 권밖에 없지만 불멸의 작품들을 남겼죠,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요.


“지금도 글은 꼭 구구산방에 가서 씁니다. 이제는 다시 구구산방의 숲에 파묻혀 자연의 숨소리와 마음의 울림을 듣고 싶어요. 그러려면 시대가 좀 더 평화로워져야겠지요. 지금은 떠날 때가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도종환은

도종환 시인은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청주에서 살고 있다.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거쳐 충남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마을에서’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86년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 ‘어떤 마을’ ‘흔들리며 피는 꽃’ 등 여러 편의 시와 산문이 실려 있다. 시집으로는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그 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등과 동화 <바다유리> <나무야 안녕>을 펴냈다. 신동엽창작상, 2006 올해의 예술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등을 받았다.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도종환의 시편들은 애송시편이 되어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시 ‘담쟁이’는 2009년 ‘직장인 100만명이 뽑은 내 인생의 시 한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