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문학선’ 펴내는 우리 시대의 비판적 지식인 도정일

라라와복래 2014. 3. 10. 15:27

‘문학선’ 펴내는 우리 시대의 비판적 지식인 도정일

1994년 도정일 교수(73ㆍ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의 첫 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가 출간됐을 때 이 서정적인 제목의 평론집은 비평과 독자의 호평을 두루 받았다. 당시 이 책이 누렸던 호평은 아마도 지난해 출간된 황현산 교수의 산문집 <밤은 선생이다>에 쏟아진 문인들과 문학 독자들의 호평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집이 500부를 인쇄하기 힘들었던 당시 상황에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출간한 지 6개월도 안 돼 4쇄 5000부를 찍었다.

도 교수는 1990년대 내내 문학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좁은 의미의 문학비평과 영화비평을 포함한 문화비평을 꾸준히 써냈고, 2000년대 이후 문학비평은 줄이면서도 언론매체 기고는 계속해 왔다. 그러나 공저를 제외하고 지난 20년간 그가 낸 단독 저서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1994)와 <시장 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2008)이 전부다. 그만큼 책으로 묶이지 않은 글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도정일 글쓰기의 큰 줄기를 확인할 기회가 열린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도정일 교수의 글들을 모아 총 7권으로 구성된 ‘도정일 문학선’을 펴낼 예정이다. 1차분으로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가 나왔다. 도 교수가 1993년부터 2013년까지 각종 언론매체에 쓴 글들을 갈무리했다.

산문집 두 권을 출간한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가 지난 5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 학장실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바람 후 문학이 경박해지고 위축

지난 5일 오후 경희대에서 만난 도 교수는 그동안 책을 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내가 쓴 글이 과연 책으로 낼 가치가 있는가, 괜한 종이 낭비가 아닌가라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고질적인 게으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 교수를 대신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글들을 모아준 것은 출판사 담당 편집자다. “출판사에서 애써줘서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평론과 논문 성격의 글을 뺀 산문 중 여기 두 권에 들어간 건 제가 쓴 분량의 절반밖에 안 됩니다.”

웬만하면 책을 출간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꺾인 것은 지난해 건강이 악화되면서다. “지난해 몇 차례 병을 앓으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자들에게 뭔가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긴 시간을 바쳐서 어떤 일을 했으니 정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책임감도 느꼈죠.”

도 교수는 “막상 글을 모아 책으로 내놓고 보니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너무나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에 놀랐다.”고 말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행했습니다. 특히 문화의 측면에서 권위주의ㆍ서열주의ㆍ연고주의 같은,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청산해야 할 문화적 장애들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죠.”

도 교수는 비평가로서의 등단이 대단히 늦다. 50세가 되던 1991년 계간지 문예중앙에 평론을 실으면서 비로소 문학비평을 시작했다. 이때 그는 비평에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다. “문학평론이 문학 전공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대중적인 감각을 갖춘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체부터 뜯어고쳤어요. 평론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무겁고 학술적인 문체를 걷어치우고 아주 경쾌하고 산뜻한 스타일, 사유도 투입되지만 감각도 살아 있는 문체를 시도했습니다.” 논리적 명료함과 문체의 산뜻함은 문학평론ㆍ문화평론만이 아니라 이번 책에 묶인 산문들까지 그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문학비평은 줄이고 독서운동과 시사ㆍ문화비평에 주력했다. 그는 “창작자에게 미안하긴 한데, 우리 문학이 생산되는 방식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이 작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문학이 가벼워지고 품위가 없어졌다. 그것에 대한 실망이 작용했다. 한편으로는 세계적으로 문학이 위축기를 맞기도 했고. 그러나 문학이 죽은 것은 아니다. 문학의 중요성과 진지한 사회적 실천성이 망각됐을 뿐이다. 문학은 반드시 부활한다. 문학의 죽음은 함부로 얘기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2001년 시작해 13년째 이어오고 있는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에서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도 교수는 “전국에 공공도서관이 480개밖에 없고 제대로 된 책도 없던 시절과 비교해 지금은 도서관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심화·확장됐다. 지금은 지자체가 앞장서서 도서관을 짓고 있다.”고 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 학장으로서 2011년 이후 주력하고 있는 대학에서의 인문학 교육도 성공적이다. “교양교육의 성과를 단기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지만, 3년을 해보고 나니 학생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지금 경희대에는 4~5명 단위의 소규모 독서 클럽에 가입한 학생들이 1000명에 이릅니다.”

2000년대 지금의 ‘행복 인문학’은 사람을 불행으로 밀어 넣어

도 교수는 최근의 인문학 열풍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2000년대 들어 시장 유일주의와 시장 전체주의가 퍼뜨리고 있는 행복 지상주의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사람들 사이에 공포와 선망의 분위기가 퍼졌다.”며 “그것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공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삶 자체를 의미 있게 하는 인문학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대중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 교수가 말하는 인문학의 대중화는 최근 유포되고 있는 ‘행복의 인문학’ 같은 담론들과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인문학은 행복을 주기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인문학적 사유는 오히려 ‘내 삶이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어떤 근거에서 내 삶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것이죠. 지금은 행복이 이데올로기가 돼 사람들을 불행 속으로 밀어 넣고 있어요.”

문학은 그러한 인문학적 사유의 핵심이다. 도 교수는 “인간과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지상의 별이다. 이 별들을 다 연결해야 한다. 지상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세 가지 일은, 의미가 없는 곳에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을 만드는 것, 정의가 없는 곳에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이 문학이고, 인문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학선’ 1차분으로 나온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388쪽 | 1만4800원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352쪽 | 1만4800원

도정일 교수의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는 그가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신문, 시사주간지, 영화주간지 등 언론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시사와 문화, 정치와 독서에 대한 글들이 주종을 이룬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문집의 표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친구여, 당신은 안다. 세상이 쓰잘데없다고 여길지 몰라도 우리네 삶에 지극히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안다.”

저자가 따로 한 장을 마련해 그 목록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지는 않다. 읽어보면 감지할 수 있다.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우주에 대한 신비감 없이 아이들이 잘 자랄 방법은 없다.”며 어린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이나 “계산의 천재만을 키우려 드는 사회는 인간을 반토막내고 보물을 내던져 역설적으로 계산에 실패하는 사회”라며 경제학적 합리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을 보면, 저자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저자는 물질적 부를 주지는 못하지만 우리 삶에 의미를 공급해주는 일련의 활동들이 지닌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에는 그러한 활동의 중심에 책읽기와 글쓰기가 놓여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글들이 묶여 있다.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라는 책의 표제는 괴테의 어머니가 남긴 회고록에서 따온 것이다. 괴테의 어머니는 밤마다 어린 괴테에게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아들의 창조성을 길러주었다. “밤이면 우리는 별들 사이에 길을 놓았고 위대한 정신들을 만나곤 했다.”

저자는 2001년부터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시작해 13년째 이어 오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이 운동의 맥락과 성과를 직간접적으로 소개하며 왜 도서관을 짓고 책 읽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열정적으로 말한다. “우리가 영혼의 춤을 가장 잘 출 수 있는 것은 타인의 마음, 타인의 정신, 타인의 영혼을 만날 때이다. 이 만남의 소중한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 ‘책읽기’다.”

두 책은 모두 7권으로 계획돼 있는 ‘도정일 문학선’의 일부다. 앞으로 문학 에세이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 인문 에세이 <마음을 잃고도 찾지 않으니>, <고향을 돌아보라, 천사여>, 신화 읽기 <절름발이 대장장이의 귀환>이 출간될 예정이다. 또한 오래 절판됐던 저자의 첫 비평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도 재출간된다. [정원식 기자 l 경향신문 2014.03.08]

'문학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 천상병  (0) 2014.04.29
차라리 한 그루 푸른 대로 - 신석정  (0) 2014.04.02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0) 2014.03.05
양파 공동체 - 손미  (0) 2014.02.16
삼양동길 - 김성대  (0) 2014.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