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새 - 천상병

라라와복래 2014. 4. 29. 12:02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출전: <주막에서>(민음사)

 

죽어 새가 된다면 나쁘지 않으리라.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겠다고 마음먹은 사람 있다면 그 마음 복된 마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또 그러한 삶의 후생이 혹 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청명한 봄날 산 아래 보리밥집에서 밥을 먹고 나섰을 때 뜰 앞의 나뭇가지에서 홀로 울던 새의 울음소리를 귀 기울여 들은 적 있다. 생태적 해석은 모르겠으나 외로운 이의 외로움, 즐거운 이의 즐거움에 대하여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새는 날아갔다.

그렇게 훌쩍 날아가는 것이 한 생이겠지. 좋고 나쁜 일이 인생이지. 이 봄에 처연히 우는 새를 만난다면 나는 천상병 선생님 아니십니까 하고 인사하겠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천상병  1949년 마산중학 5년 재학 중 당시 담임교사이던 김춘수 시인의 주선으로 시 ‘강물’이 《문예》지에 추천되었다. 1952년 시 ‘갈매기’를 《문예》지에 게재한 후 추천이 완료되어 등단하였다. 1964년 김현옥 부산시장의 공보비서로 약 2년간 재직하다가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 약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무혐의로 풀려난 적이 있다. 1971년 고문의 후유증과 음주 생활에서 오는 영양실조로 거리에서 쓰러져 행려병자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그 사이 유고시집 <새>가 발간되었으며, 이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에 유고시집이 발간된 특이한 시인이 되었다. 시집 <주막에서>,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등이 있다.

낭송  전영관  시인.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 산문집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가 있다.

음악  권재욱 / 애니메이션  박지영 / 프로듀서  김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