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
라라와복래2014. 3. 12. 12:58
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Clara Haskil, piano
Igor Markevitch, conductor
Orchestre des Concerts Lamoureux
La Maison de la Chimie, Paris
1960.11
Clara Haskil - 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
이번에는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에 대해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피아니스트를 무척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애호하는 서너 명의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짙은 그늘을 드리운 피아노 음색은 물론이거니와, 조금의 과장도 없이 음악 자체를 조근조근 풀어 가는 차분한 연주도 들으면 들을수록 매혹적입니다. 포르투갈 태생의 그는 ‘세계적 피아니스트’라는 호칭에도 아랑곳없이 ‘파두’(fado, 포르투갈의 민중음악) 가수의 반주자로 무대에 설 만큼 ‘열린 음악가’일 뿐 아니라, 자신의 연주회를 찾아온 청중에게 자연과 인간은 하나임을 강조하는 유인물을 나눠주는 생태주의자이기도 하지요.
그 피레스를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바로 모차르트입니다. 일곱 살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6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모차르트는 그의 연주 활동에서 언제나 중심이었습니다. 이른바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여성 피아니스트들, 예컨대 클라라 하스킬과 릴리 크라우스, 알리시아 데 라로차, 잉그리드 헤블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계보에서 가장 마지막쯤에 자리하는 연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또 한 명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인 우치다 미츠코(1948~ )를 그 계보에서 빼놓을 순 없겠지요. 피레스와 우치다는 그야말로 쌍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둘의 스타일은 매우 다릅니다. 피레스가 신중하고 내향적이라면, 우치다는 열락(悅樂)의 감정을 겉으로 확연히 드러내는 외향적인 연주를 들려줍니다.
창작력이 가장 고조된 시기에 탄생된 명작!
35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던 모차르트가 마지막 10년을 보낸 곳은 오스트리아의 빈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모차르트의 작품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마 거의 대부분이라 해도 좋을 만큼 수많은 걸작들이 바로 이 시기에 쓰입니다. 특히 협주곡과 오페라는 말년의 모차르트를 대표하는 장르였지요.
당시의 모차르트는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한 직후였습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던 1781년에 빈으로 이주했고 그 이듬해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프리랜서 음악가’로서의 모차르트의 삶이 시작됐다고 얘기합니다. 교회와 귀족의 간섭에서 벗어나, 작곡이나 연주에 대한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본주의형 음악가’의 출현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지요. 결국 당시의 모차르트는 음악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커다란 지각 변동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어릴 때부터 혹사당해 온 이 천재에게 엄청난 중노동을 다시금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빈으로 이주해 한 집안의 가장이 된 모차르트는 이전보다 한층 더 작곡과 연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지요.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바로 피아노였습니다. 모차르트는 날마다 피아노를 교습하면서 레슨비를 받았고 협주곡을 써서 작곡료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회를 수시로 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해 돈을 벌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당구를 치면서 해소하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한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 과로와 중노동의 결과물들이 하나같이 걸작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창작력이 가장 고조된 시기에 이르러 있었고, 말년의 걸작들은 바로 그 지점, 한 천재적 예술가의 빛나는 에너지가 마지막 불꽃처럼 산화하던 시기에 세상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피아노 협주곡은 20번(K.466)부터 27번(K.595)까지는 바로 ‘빈에서 보낸 10년’을 대표하는 걸작들입니다. 특히 맨 앞에 놓이는 20번은 단조의 조성을 지닌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으로서 어둡고 비극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1악장: 알레그로
1악장의 첫 주제를 현악기들이 제시하는데, 뭔가 불길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화음들이 먹구름처럼 몰려옵니다. 이 인상적인 주제부는 1악장에서 여러 번 반복됩니다. 피아노는 처음에는 아주 여리게, 마치 슬픔을 애써 억누르는 듯한 표정으로 등장했다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부터 점점 빠르고 화려한 기교를 펼쳐내기 시작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매우 눈부신 카덴차(하단 주 참고)가 펼쳐지지요.
2악장: 로망스
2악장은 아름다운 로망스 악장입니다. 피아노 독주가 부드럽고 따사로운 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합니다.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피아노를 감싸 안습니다. 그렇게 독주와 관현악이 서로 떨어졌다가 끌어안는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1악장에서 독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에 긴장감이 넘쳤다면, 2악장에서는 서로를 위무하는 듯한 분위기가 물씬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서로를 애무하기만 한다면 음악이 별로 재미가 없겠지요. 아마 그래선지 중반부에서 살짝 다툼이 등장했다가 다시 처음의 따뜻한 분위기로 돌아옵니다. 그 느낌을 잘 맛보면서 2악장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 아사이
3악장에서는 다시 템포가 빨라집니다. 빠르게 상승하는 악구들이 빈번히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슬픔을 살짝 머금은 피아노 솔로, 오케스트라가 그 뒤를 잔잔하게 받치는 동안 피아노는 점점 경쾌하고 빨라집니다.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좀 더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피아노와 긴장감 넘치는 협연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빠르게 펼쳐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장면. 피아노가 화려한 카덴차를 한 차례 펼쳐낸 후, 오케스트라와 함께 어울려 당당한 분위기로 곡을 끝맺습니다.
1. 모차르트의 곡 뒤에 붙는 K번호는 오스트리아의 자연과학자이자 음악 문헌학자인 루트비히 폰 쾨헬(Ludwig von Kochel, 1800-1877)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는 1862년에 모차르트의 작품 전체를 연대순으로 정리해 번호를 붙여 발표했습니다. ‘쾨헬 번호’라고 읽습니다. ‘K’만 쓰기도 하고 ‘KV’(Kochel-Verzeichnis)로 쓰기도 합니다.
2. 카덴차(cadenza)는 악곡이나 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독주자가 무반주로 펼쳐내는 화려하고 기교적인 연주를 뜻합니다.
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
Valentina Lisitsa, piano
Michael Erren, conductor
Freiburger Mozart-Orchester
2012.05.20
추천음반
1. 클리포드 커즌(Clifford Curzon), 벤자민 브리튼,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1970, Decca. 피아니스트 커즌과 지휘자 브리튼이라는 조합은 한국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출렁거리는 느낌으로 충만한, 주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연주와는 거리가 먼 탓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자면, 그 점이야말로 이 음반의 미덕이다. 음악의 구조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객관적 균형감이라는 측면에서, 이 음반은 모차르트 협주곡 20번을 들으려는 이들에게 ‘충실한 가이드’로서 매우 적절하다. 아울러 20세기 영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두 명의 거장, 예민하고 무뚝뚝한 금욕주의자 커즌과 반전주의적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브리튼의 우정 어린 녹음이라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정확한 발음과 악센트를 중시하는 영국식 영어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마치 교과서와도 같은 연주다.
2. 프리드리히 굴다(Friedrich Gulda), 클라우디오 아바도, 빈 필하모닉, 1974, DG.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온 명연이다. 피아니스트 굴다는 ‘모차르트적 아름다움’을 극단까지 끌어올린다. 물론 감정이 과잉된 연주는 아니다. 모차르트 특유의 절제된 슬픔을 청아한 음색으로 노래하고 있다. 햇살이 밝게 빛나는 데도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슬픔을, 이만큼 애틋한 서정으로 펼쳐내는 연주도 찾아보기 힘들다. 고전은 물론이거니와 현대의 재즈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굴다는, 페달 사용을 극히 자제한 채 명료하면서도 감각적인 음색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에 아바도는 ‘주인공’ 굴다를 돋보이게 하려는 태도가 여실하다. 오케스트라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반주의 역할에 충실하다.
3. 마리아 주앙 피레스(Maria João Pires), 클라우디오 아바도,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2011, DG.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피레스의 가장 최근 음반이다.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볼로냐의 만초니 극장에서 이뤄진 녹음이다. 피레스는 젊은 시절에 프랑스의 에라토 레이블에서 모차르트의 협주곡과 소나타를 녹음했고, 중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지휘자 아바도와 모차르트의 협주곡으로 동행하기 시작했다. 이번 음반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일흔을 바라보는 피레스의 ‘원숙한 모차르트’는 이제 어떤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유난히 작은 그의 손이 건반 위를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것처럼 선명하다. 온화하면서도 싱그러운 연주다.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도 빼어나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가 주고받는 신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년(2013) 3월의 내한을 앞두고 베스트셀러를 예감케 하는 음반이다.
[p.s]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과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지휘하는 콩세르 라무뢰 오케스트라 연주(1960년/Philips)는 ‘역사적 명반’으로 꼽히는 음반입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 수입 재고가 충분히 확보돼 있지 않은 까닭에 추천음반 목록에서 제외했습니다.
글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문화웹진 채널예스에 음악 칼럼 ‘내 인생의 클래식 101’, 서울시향의 기관지 SPO에 ‘20세기 음악 산책’ 등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에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돌베개, 2013), <더 클래식: 바흐에서 베토벤까지>(돌베개, 201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