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비틀즈 - 팝의 클래식

라라와복래 2014. 7. 23. 22:03

[팝 음악]

팝의 클래식

비틀즈

The Beatles 

비틀즈 그룹. 좌로부터 조지 해리슨, 존 레논,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The Long and Winding Road

from the album 'Let It Be' (1970)

2012년 영국의 BBC는 다큐멘터리 '비틀즈: 1962 러브 미 두(Beatles: 1962 Love Me Do)'에서 "50년 전 리버풀에서 나타난 4명의 젊은이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앨범을 발매했다."라고 말했다. BBC의 라디오 프로듀서 빅 갤로웨이는 "팝 음악의 역사는 비틀즈의 등장 전과 후로 나뉜다."고도 말했다.

존 레논(John Lennon), 폴 매카트니(Paul McCarteny),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링고 스타 (Ringo Starr)를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어준 밴드 비틀즈.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들은 음악, 미술, 문학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비틀즈의 음악 Norwegian Wood를 소재로 한 소설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라고도 번역되었음)으로 일본 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던 것이나, 태양의 서커스로 유명한 기 랄리베르테가 서커스 쇼 <태양의 서커스 - 러브(Cirque Du Soleil - LOVE)>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모두 비틀즈가 세상에 남긴 또 다른 자취다.

‘Please Please Me’, ‘Rubber Soul’, ‘Let It Be’ 등 13장의 정규 앨범과 Hey Jude, I Want To Hold You Hand 등을 포함한 히트 싱글들은 국경과 세대를 넘나들며, 인류 음악사의 화려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음악의 강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The Beatles - '20 Greatest Hits'

01. 00:00 She Loves You - 02. 02:19 Love Me Do - 03. 04:38 I Want to Hold Your Hand - 04. 07:05 Can't Buy Me Love - 05. 09:17 A Hard Day's Night - 06. 11:50 " Feel Fine - 07. 14:09 Eight Days a Week - 08. 16:55 Ticket to Ride - 09. 20:05 Help! - 10. 22:24 Yesterday - 11. 24:29 We Can Work It Out - 12. 26:45 Paperback Writer - 13. 29:03 Penny Lane - 14. 32:05 All You Need Is Love - 15. 35:55 Hello, Goodbye - 16. 39:23 Hey Jude (Edited) - 17. 44:32 Get Back - 18. 47:45 Come Together - 19. 52:02 Let It Be - 20. 55:53 The Long and Winding Road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만나다

1957년 7월 6일, 맨체스터에서 유유히 흘러나온 머시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항구도시 리버풀. 그곳에 위치한 성 바울 교회 축제행사에서 17살 소년 존 레논이 이끄는 밴드 쿼리맨 스키플 그룹(The Quarryman Skiffle Group, 이하 쿼리맨)이 정원에 설치된 무대에 섰다. 이 밴드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별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그곳을 지나던 15살 소년 폴 매카트니의 발길을 붙잡았다. 얼마 후 폴 매카트니는 쿼리맨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폴 매카트니(좌)와 존 레논(우).

폴과 존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학교 밴드 이름이었던 쿼리맨의 이름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이들은 밴드 이름을 자니 앤 더 문독스(Johnny and the Moondogs), 실버 비틀즈(The Silver Beetles), 롱 존 앤 실버 비틀즈(Long John and the Silver Beetles) 등으로 쓰다가 1960년 8월 초부터 더 비틀즈(The Beatles)로 사용했다. 작가 헌터 데이비스가 쓴 <비틀즈(The Beatles: The Authorised Biography>(1968)를 보면, 비틀즈라는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존 레논이 설명한 대목이 나온다.

1960년 초, 비틀즈 초창기의 멤버는 존 레논(보컬/기타), 폴 매카트니(보컬/기타), 조지 해리슨(기타), 스튜어트 셔트 클리프(베이스), 피트 베스트(드럼), 이렇게 다섯이었다. 미국 발 로큰롤이 영국으로 건너왔던 그때, 멤버들도 빌 헤일리,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와 크리케츠 등 많은 로큰롤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셔트 클리프는, 만약 자신이 좋아하는 미국 로큰롤 밴드 버디 홀리와 크리케츠(Buddy Holly and the Crickets)가 영국 그룹이라면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마침 옆에 있던 존 레논의 머릿속에 '딱정벌레(Beetles: 귀뚜라미를 가리키는 Crickets에 대응하는 의미)'가 떠올랐고, 이것을 '비틀즈(BEATles)'로 표기하기로 했는데, 단지 비트 음악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냥 장난친 것이었다고 했다. 

초창기 비틀즈가 공연했던 리버풀의 캐번 클럽.

함부르크와 리버풀 시절(1960~1962):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의 만남

유럽을 대표하는 항구도시 함부르크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는데, 그곳은 지금도 여행에 지친 사람들을 달래줄 클럽과 유흥가가 리버판(Reepeban) 거리를 따라 늘어서 있다. 상황은 1960년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1960년 8월, 비틀즈는 자신들의 결속과 라이브 경험을 쌓기 위해 함부르크에 머물면서 인드라 클럽(Indra Club)과 카이저켈러(Kaiserkeller) 등에서 4개월여에 걸쳐 100회 이상의 공연을 했다. 당시 폴 매카트니는 18살, 조지 해리슨은 17살이었다. 학생 여권밖에 없었던 조지 해리슨은 미성년자 신분으로 클럽에서 전전긍긍하며 연주했는데, 결국 경찰에게 체포되어 추방당한다. 다른 멤버들도 11월 말에 리버풀로 돌아온다.

비틀즈가 리버풀에서 본격적인 활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1961년이다. 거칠고 에너지가 넘쳐 클럽에서 8시간씩 한 달 내내 공연하는 일도 있었다. 한편, 리버풀과 함부르크를 계속 오가면서 기회를 모색하던 비틀즈는 그들의 매니저가 될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타고난 영업력과 홍보 감각을 갖고 있던 엡스타인은 당시 리버풀에서 가장 큰 레코드 가게 NEMS(North End Music Stores)를 운영하고 있었다. 리버풀 지역의 음악 잡지 머시 비트(Mersey Beat)의 설립자이자 발행자였던 빌 해리와 기자 밥 울러를 포함하여, 프로듀서, 작곡가들과 친분이 있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비틀즈의 만남에 대한 일화는 많은 매체를 통해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었다.

"NEMS를 운영하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가게에 학생들이 매일 찾아와 레코드 가게에 있지도 않은 비틀즈 앨범을 찾았다. 브라이언은 비틀즈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수소문하여 비틀즈가 공연하는 캐번 클럽을 찾았고 계약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엡스타인 자신이 비틀즈 홍보용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엡스타인이 솔직하게 말하길, 자신은 머시 비트란 잡지를 통해 비틀즈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고, 비틀즈도 이미 자신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1) 1961년 11월 9일 오후 12시 30분에 엡스타인은 비서와 함께 캐번 클럽을 방문했고, 이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얼마 후 비틀즈는 엡스타인이 자신들의 매니저가 되는 것에 동의했고, 피트 베스트의 집에서 가수-매니저 계약을 했다. 당시 계약 조건은 1년에 수입이 1,500파운드 이하일 경우 그중 10%를, 이를 초과할 경우 15%를 엡스타인이 가져가는 것이었다.

엡스타인과 계약할 당시, 비틀즈는 리버풀을 대표하는 혈기왕성한 밴드였지만, 팝 음악의 용광로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무언가가 부족했다. 이들은 1962년 4월에 함부르크로 다시 향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스타 클럽(Star Club)에서 공연하는 비틀즈를 보면서, 다소 거친 이미지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생아 밴드의 레코드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는 음반 담당자에게 깔끔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비틀즈에게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정장을 입을 것을 권했다.

비틀즈 멤버에도 변화가 왔다. 베이스를 맡았던 스튜어트는 함부르크에서 만난 여인 아스트리드 키르허와 사랑에 빠져 밴드를 탈퇴한다. 스튜어트는 안타깝게도 1962년 4월 10일 뇌출혈로 생을 마감했다. 한편 음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드럼에 피트 베스트보다 링고 스타가 더 적합할 것 같다고 브라이언 엡스타인에게 조언한 후 피트 베스트도 밴드와 작별했다.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4인으로 밴드를 재정비한 비틀즈는, 마침내 1963년 3월 22일 영국에서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를 냈다. 초창기부터 비틀즈의 가치를 알아보고, 음반 계약과 마케팅, 홍보를 성공적으로 해낸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팬들은 제5의 멤버로 칭한다. 

1966년 런던에 도착한 비틀즈 멤버들과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맨 좌측).

승승장구하는 비틀즈(1963~1967)

비틀즈의 첫 번째 정규 앨범 'Please Please Me'의 프로듀서는 조지 마틴이었다. 이 앨범에는 존 레논이 작곡한 Please Please Me와 존과 폴 공동 작곡의 Love Me Do가 실려 있었는데, 이 두 곡은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 이후 비틀즈는 정규 앨범과 별도로 She Loves You(1963.07), I Want To Hold Your Hand1963.11) 등의 싱글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이 곡들도 모두 차트를 석권하고 100만 장 이상 팔리는 쾌거를 이뤘다.

유럽 지역을 달군 비틀즈의 열기는 어느덧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번지고 있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비틀즈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시키기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1964년 2월 1일, 비틀즈가 프랑스 파리의 올랭피아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 미국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I Want To Hold Your Hand가 빌보드 HOT 100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1964년 2월 7일, 비틀즈는 미국 진출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비틀즈 멤버들은 비행기 속에서 자신들이 과연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이런 맴버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면서 공항에 도착 후 곧바로 기자 간담회가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불안했던 상태와 달리, 같은 시간 뉴욕 방송국 WABC와 WMCA는 앞 다투어 비틀즈의 이동을 생방송으로 전하고 있었다.

"방금 런던 공항에서 보잉 707 팬암기 101호가 막 출발했습니다."

"비틀즈 시간으로 6시 30분입니다. 뉴욕 대서양을 지금 건너고 있어요. 비틀즈 주변의 온도는 36도군요."

오후 1시 35분, 비틀즈가 탄 비행기가 뉴욕 JFK 공항에 도착했다. 200여 명이 넘는 취재진과 1만여 명의 관중들이 공항과 그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함성의 축포가 터져 나왔다. 2월 9일, 비틀즈는 에드 설리번 쇼에서 첫 번째 무대를 가졌다. 이 쇼는 당시 7,300여만 명이 시청하였으며(시청률 60%), 팝 음악의 한 획을 긋는 장면으로 기록된다.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한 비틀즈 멤버들.

1964년 4월 4일.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빌보드 싱글 차트 1~5위를 모두 비틀즈의 곡들이 차치한 것이다. 당시 순위는 이랬다.

1위 Can't Buy Me Love, 앨범. ‘A Hard Day's Night’에 수록

2위 Twist & shout, 앨범 'Please Please Me'에 수록

3위 She Loves You, 싱글 앨범

4위 I want to hold you Hand, 싱글 앨범

5위 Please Please Me, 앨범 'Please Please Me' 수록  

자신들의 차트를 확인하는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코 스타, 존 레논.

비틀즈는 60년대 초반 로큰롤의 인기가 사그라지던 미국 음악시장에 가해진 융단폭격이었다. 젊은이들은 열광했고, 미국 도처에서 비틀즈의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비틀즈가 미국에 정착한 1964년부터 4, 5년에 걸쳐, 미국 팝 음악시장에서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나 더 후(The Who) 등을 포함한 여러 영국 아티스트들의 인기가 급격히 상승했다. 이들은 음악뿐 아니라, 패션, 디자인, 사상 등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비틀즈를 필두로 영국 아트스트들이 미국 팝 음반시장을 점령한 현상을 일컬어 매체들은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 했다.

60년대 초, 중반, 비틀즈의 앨범들은 발매하는 족족 히트를 기록하면서, 전 세계 수많은 비틀 마니아(Beatlemania)를 만들어냈다. 이에 부응하듯 비틀즈 멤버들의 창작욕은 쉼 없이 끓어올랐다. 첫 앨범 'Please Please Me'(1963)를 필두로, 'With the Beatles'(1963), 'A Hard Day's Night'(1964), 'Beatles for Sale'(1964), 'Help!'(1965), 'Rubber Soul'(1965), 'Revolver'(1966),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에 이르기까지 5년 동안 8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고, 수록된 곡들은 차트를 석권했다. 1965년 10월 26일, 엘리자베스 여왕은 비틀즈가 영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외화 보유고를 높이는 데 기여한 점을 높이 사 멤버들에게 대영제국 공로훈장(Member of the Order Of British Empire)을 수여했다. 

영국인들이 가장 명예롭게 생각하는 대영제국 공로훈장(MBE) 메달을 받은 비틀즈 멤버들.

비틀즈의 인기가 끝없이 치솟을 무렵인 1967년 8월 25일, 비보가 들려왔다. 제5의 비틀즈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사망한 것이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었다. 시간이 지나 빌보드는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비틀즈라는 가장 큰 파티를 열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초대하는 것을 잊고 살아간 남자."

The Beatles - 1967-1970 (The Blue Album)

01. 0:00:00 Strawberry Fields Forever - 02. 0:04:07 Penny Lane - 03. 0:07:10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04. 0:09:08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 05. 0:11:56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 06. 0:15:25 A Day In the Life - 07. 0:20:33 All You Need Is Love - 08. 0:24:21 I Am the Walrus - 09. 0:28:57 Hello, Goodbye - 10. 0:32:27 The Fool on the Hill - 11. 0:35:27 Magical Mystery Tour - 12. 0:38:16 Lady Madonna - 13. 0:40:35 Hey Jude - 14. 0:47:46 Revolution - 15. 0:51:14 Back In the U.S.S.R. - 16. 0:53:59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 17. 0:58:45 Ob-La-Di, Ob-La-Da - 18. 1:01:57 Get Back - 19. 1:05:09 Don't Let Me Down - 20. 1:08:45 The Ballad of John and Yoko - 21. 1:11:46 Old Brown Shoe - 22. 1:15:07 Here Comes the Sun - 23. 1:18:15 Come Together - 24. 1:22:34 Something - 25. 1:25:38 Octopus's Garden - 26. 1:28:31 Let It Be - 27. 1:32:23 Across the Universe - 28. 1:36:13 The Long and Winding Road

각자의 길을 가다 (1967~1970)

브라이언 엡스타인 사후 비틀즈 신변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새로운 매니저를 고용하는 과정에서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은 의견 충돌을 보였다. 영화 <Help> 촬영 중에 인도 사상에 매료된 조지 해리슨은 고유의 정신세계를 추구했고, 링고 스타도 자신만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멤버 각자가 추구하는 바가 달랐고 불안정한 상태였음에도, 앨범으로 결합된 비틀즈는 어떤 밴드보다 견고하고, 완벽한 음악을 들려줬다.

화이트 앨범(White Album)으로 잘 알려진 'The Beatles‘는 이런 상태에서 발매되었다. Ob-la-di Ob-la-da’ I will,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등에서 비틀즈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마지막 앨범 'Abbey Road'는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고, 1969년 9월 26일에 발매된 이 앨범은 완벽했다.

1970년 4월 10일, 비틀즈는 폴 매카트니가 솔로 앨범을 발매함과 동시에 탈퇴를 선언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하게 된다.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반전과 평화 운동을 지지하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간다. 존 레논은 영국이 미국의 월남전을 지지하자, 자신이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받았던 대영제국 공로훈장을 미련 없이 반납했다. 링고 스타와 조지 해리슨도 자신의 음악으로 음악 팬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이들이 해체된 지 한 달 후 앨범 'Let It Be'가 나왔다. 'Abbey Road'보다 먼저 만들어졌지만, 출시 과정이 늦어진 이 앨범은 '순리에 맡겨진 채' 팬들과 조우하고, 수록곡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앨범 또한 빌보드 차트 1위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 존 레논은 1980년 12월 8일, 그의 광적인 팬이 쏜 총에 맞아 숨졌고, 조지 해리슨은 2001년 11월 29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틀즈를 보기 위해 모여든 팬들.

팝의 클래식, 비틀즈

비틀즈는 10여 년의 활동 기간 동안 16억여 장의 앨범 판매와 빌보드 차트 최장기간 1위 아티스트라는 팝 음악 역사에 전대미문의 사건들을 남겨 놓았다. 이들이 세상에 남긴 총 13장의 정규 앨범과 'Past Masters Volume 1,2'을 포함한 싱글과 베스트 앨범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전 세계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1960년대에 등장한 밴드의 성격상 비틀즈는 로큰롤을 기반으로 한 그룹이었지만, 록, 컨트리, R&B, 포크, 심지어 블루스와 재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활동 초기 비틀즈가 I Want To Hold Your Hand, She Loves You 등 비트가 살아 있는 단순한 멜로디의 팝 사운드로 대중들을 열광시켰다면, 1965년에 발표한 앨범 'Rubber Soul' 이후 발표한 Norwegian Wood, Because, Let It Be 같은 곡들을 통해서는 삶을 관조하고 철학적인 의미를 담아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들은 상업적인 성공 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과감한 음악 시도를 이어갔고, 현악기와 신서사이저 등 다양한 악기를 음악에 도입함으로써 록 음악이 포용할 수 있는 사운드의 폭을 넓혀주었다. 대표적으로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에서 록 밴드 최초로 컨셉 앨범을 시도한 점이나, 프로듀서 필 스펙터와 함께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기법2)을 Let It B’나 The Long and Winding Road 등의 노래에 적용시킴으로써 혁신적인 소리를 이끌어낸 점을 들 수 있다.

공간을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들을 고전 음악(Classical Music)이라고 한다. 이런 음악들은 이를 듣고 연주하고 창작하는 이들에게 상상력과 통찰력을 자극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팝 음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비틀즈는 ‘팝의 클래식’이다.

비틀즈가 팝 역사에 남긴 기록들

―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그룹 : 약 16억 장 (2013년 12월 RIAA 기준)

―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최다 1위 보유 : 총 21곡 (Let It Be, Yesterday 등 포함)

― 빌보드 최장기간 1위 : 총 113주 (약 2년 2개월)

― 미국 내 최다 다이아몬드 인증 앨범 보유 : 총 6장 (1,000만 장 이상 판매 앨범 수)

― 1964년 싱글 레코드 중 비틀즈 싱글 판매 비율 : 약 60%

― 공연 횟수 : 캐번 클럽 (총 294회), BBC (총 275회) 등

― Yesterday 리메이크 아티스트 : 3,000여 명 이상 (2014년 2월 CBS News 보도 자료)

주석

1) 1961년 7월에 발간된 머시비트 1호에는 존 레논이 쓴 비틀즈에 대한 기사가, 연이어 같은 달에 나온 2호에는 비틀즈의 계약과 함부르크 시절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브라이언은 머시 비트의 발행인 빌 해리를 만나 자신도 그 잡지에 칼럼을 쓰고 싶다고 했다. 브라이언은 바라던 대로 1961년 8월에 발간된 머시 비트 3호부터 정식으로 칼럼을 기고하게 된다. 브라이언은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틀즈뿐 아니라, 리버풀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2) 필 스펙터는 여러 차례 반복 녹음을 통해 밴드가 연주하는 사운드와 보컬, 현악기와 코러스가 한데 어우러진 효과를 유도했는데, 이는 마치 소리가 벽을 쌓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해서 ‘월 오브 사운드’라고 붙여졌다.

*틀린 정보가 좀 있어 수정합니다. 필자는 'Please Please Me'란 앨범을 내면서 데뷔한 것처럼 썼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1962년 10월, 싱글 ‘Love Me Do’로 데뷔했고 두 번째 싱글인 ‘Please Please Me’가 1963년 1월에 나온 후 이 두 싱글 수록곡 4곡에 10곡을 추가로 녹음해서 3월에 발매된 것이 'Please Please Me' 앨범입니다. 그리고 당시 영국 전국 차트인 New Musical Express 차트 기준으로 ‘Please Please Me’는 1위에 오른 것이 맞지만 데뷔곡인 ‘Love Me Do’는 17위까지밖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해체도 폴 매카트니가 솔로 앨범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소송을 통해서였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이미 솔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틀즈와 애플 레코드 회사의 해산과 재산 분배를 요구하는 소송을 폴이 제기해서 1970년 4월 23일에 승소 판결을 받아서 해산이 된 것이죠. 사실 솔로 앨범을 제일 늦게 낸 것은 폴 매카트니입니다. (라라와복래)

 

이진섭 (팝 칼럼니스트) 엠넷(Mnet’, 엘로퀀스(ELOQUENCE),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등 다양한 매체에서 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였으며, 현재, 브랜드 매니저로 활동 중이다. 2013년 독일 이니셔티브 뮤직의 오피셜 포토그래퍼와 바르셀로나 럭셔리 라운지 BOCA GRANDE의 게스트 DJ로 활동하였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음악의 선율'팝 음악 2014.04.29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40&contents_id=54510&leafId=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