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베르크 오페라 ‘보체크‘(Alban Berg, Wozzeck)

라라와복래 2014. 7. 27. 08:35

Berg, Wozzeck

베르크 ‘보체크‘

Alban Berg

1885-1935

Wozzeck: Toni Blankenheim

Marie: Sena Jurinac

Captain: Gerhard Unger

Doctor: Hans Sotin

Drum Major: Richard Cassilly

Chorus of the Hamburg State Opera

Hamburg Philharmonic State Orchestra

Conductor: Bruno Maderna

Hamburg State Opera

1970


Hamburg State Opera 1970 - Alban Berg, Wozzeck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는 “베르크의 <보체크(Wozzeck)> 이후로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오페라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표현주의의 폭발” “무조음악을 사용한 최초의 극장용(한 작품으로 저녁 공연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의미) 오페라” “진정하고 유일한 사회주의 오페라” 등, 다채로운 찬사와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찬사를 많이 받은 작품이라 해도 ‘표현주의’나 ‘무조음악’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거 어려운 거 아냐?’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죠.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작곡가 알반 베르크는 그의 스승 쇤베르크와 비교하면, 훨씬 청중이 이해하기 쉬운 오페라를 만들었답니다. 음악학교에서 정식으로 작곡을 공부한 일이 없었던 베르크는 16세부터 즉흥적으로 작곡을 하다가 쇤베르크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지요. 무조음악의 창시자인 스승의 제자답게 베르크는 <보체크>를 작곡하면서 전통적 조성을 떠올릴 수 있는 선율과 화음을 의도적으로 피했습니다.

‘무조음악’이란 조가 없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조성음악의 기반을 이루는 으뜸화성의 원칙을 포기하면서 조성감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원리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작곡가들이 무조음악을 시도했던 배경에는 세기 전환기에 예술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표현주의 운동이 있었습니다. 감정의 분출과 폭발로 인간의 내면을 노출하고 익숙한 형식과 형태를 왜곡하는 방법을 취했던 것이 표현주의 예술이었지요.

도덕과 교양의 억압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

1914년에 베르크는 빈에서 게오르크 뷔히너의 연극 <보체크> 공연을 보았습니다.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라는 청년이 애인을 살해하고 사형을 당한 실화를 소재로 한 사회비판적 작품이었지요. 뷔히너 작품의 원래 제목은 ‘보이체크’였지만, 당시 뷔히너의 유고를 정리해 출판한 카를 에밀 프란초스가 제목을 잘못 읽어 오랜 동안 ‘보체크’로 전해졌다는군요.

몸이 몹시 허약했던 작곡가 베르크는 1차 세계대전 때 전선에서 싸우지 못하고 후방 병영에서 복무했는데, 이때 군에서 엄청난 멸시와 괴롭힘을 당하면서 주인공 보체크에 자신을 대입하게 되었고, 이 작품을 반드시 오페라로 작곡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더구나 제대 후에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압도적인 비극의 충격으로 더욱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고 합니다.

스승 쇤베르크는 이 작품을 오페라로 작곡하겠다는 베르크의 계획에 ‘불가능한 일’이라며 반대했지만, 1925년 베를린에서 이 오페라가 초연되자 “이거야말로 오페라다! 진정한 음악극이란 이런 것이다!”라며 경탄했다고 합니다. 베르크의 <보체크>는 1925년부터 1936년까지 29개 도시에서 166회 공연되는 기록을 세웠으나 나치의 문화정책으로 인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퇴폐예술(die entartete Kunst)’로 간주되어 이듬해부터 공연이 금지되었지요.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 세계에서 다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천천히 하게, 보체크, 천천히!(Langsam, Wozzeck, langsam!)” <보체크>의 첫 장면은 이런 대사로 시작됩니다. 가난하고 외모도 보잘것없는 병사 보체크는 애인 마리와 동거하며 아이까지 낳았지만, 돈이 없어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군대 상관인 대위와 주위 사람들에게 부도덕하다는 비난과 모욕을 당하며 살아가죠. 상관이 사적인 일까지 시키며 종처럼 부리기 때문에 할 일이 산더미 같은 보체크는 늘 마음이 바쁘고 불안합니다. 쥐꼬리만 한 군대 봉급으로 마리와 아이도 부양해야 하는 그는 그 와중에도 부업이 될 일거리를 찾으려 애쓰죠. 그에게서 아주 특이한 심리적 장애를 발견한 의사는 학회에 제출할 논문 자료로 쓰기 위해 보체크에게 완두콩만을 먹게 하고 그의 신체적인 반응을 관찰합니다. 보체크는 푼돈을 더 벌기 위해 실험용 모르모트로 전락한 셈이죠.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까지 겹친 보체크는 갈수록 세상 전체에 두려움을 느끼며 정서불안 상태를 나타냅니다. 한편, 비좁고 답답한 집안에서 어린 아이와 씨름하며 지루해하던 마리는 어느 날 보체크가 속한 부대의 군악대장을 사귀게 되고, 결국 그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보체크는 마리를 되찾기 위해 군악대장과 몸싸움까지 벌이지만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술집에서 군악대장과 열정적으로 춤추고 있는 마리를 본 보체크는 순간 이성을 잃고, 마리를 물가로 데려가 칼로 찔러 죽이죠. 마을로 돌아왔다가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자 살해 장소로 되돌아가 물속에 던진 칼을 미친 듯이 찾던 보체크는 물에 빠져 죽고 맙니다. 뷔히너의 원작에서는 죽지 않고 무대 위에 망연히 서 있는 것으로 끝났지만 베르크는 결말을 바꿨습니다. ▶마리의 불륜 사실을 알고 그녀를 살해하는 보체크

보체크에 비하면 그의 상관인 대위는 안정된 삶의 토대를 갖추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인물이죠. 보체크가 왜 이처럼 늘 불안한 태도로 서두르며 살아가는가를 대위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체크에게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일을 하라고 항상 충고하죠. 그러면서,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르지 않은 채 여자와 함께 살며 아이까지 낳은 보체크의 삶을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하고 은근히 비난합니다. 여기서 ‘여유와 서두름’이라는 대비되는 개념은 ‘도덕과 부도덕’, ‘부르주아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비로 이어집니다. ‘우선 입에 밥이 들어가야 도덕이고 나발이고 있는 법’이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의 작품 <서푼짜리 오페라>의 주제는 <보체크>에서 보다 진지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다뤄집니다.

대위는 대단히 폭력적인 상관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상심리와 부르주아적 도덕관으로 보체크를 교묘하게 억압합니다. 베르크는 이 두 사람 사이의 억압적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1막 1장에서 엄격한 규칙성을 지닌 모음곡 형식(프렐류드-알망드-쿠랑트-사라반드-지그)을 사용했습니다. 상관에게 “예, 대위님”이라는 억양 없는(하나의 음정으로 이루어진) 대답만을 들려주던 보체크가 최초의 저항을 나타내는 대목 “우리 가난한 사람들은(Wir arme Leut’)”은 이 오페라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라이트모티프(유도동기)입니다. 이 동기를 강조함으로써 작곡가 베르크는 이 오페라 초연 거의 1백 년 전에 작품을 썼던 뷔히너의 창작 의도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범죄의 가장 큰 원인은 빈곤에 있다”는 뷔히너의 주장은 16세기에 <유토피아>를 저술한 영국의 토마스 모어나 베르톨트 브레히트와도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술집에서 군악대장과 놀아나는 마리

불편한 왈츠, 카페음악과 무조음악의 교차

베르크는 2막의 다섯 장면을 ‘5악장의 교향곡’으로 설정하고, 마리가 군악대장에게 선물로 받은 귀고리를 들여다보며 좋아하는 1장 장면을 소나타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군악대장과 마리가 술집에서 왈츠를 추는 장면에는 “계속해, 계속해!(Immer zu, immer zu!)"라고 외치는 마리의 음악적 모티프가 등장합니다. 즐거운 왈츠가 등장하는 이 대목에서 베르크는 여러 조성을 동시에 사용해 불협화음을 만들고, 마치 악단이 술에 취해 연주하는 듯 음악을 자꾸 끊어 의도적으로 청중이 음악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죠.

바이올린, 클라리넷, 기타, 튜바, 아코디언이 함께 카바레 음악 또는 카페음악을 연주하는 이 2막 4장에서 베르크는 아코디언의 활용 가능성을 진지하게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의 막사, 취침시간’을 배경으로 한 5장의 앞부분에 베르크는 자신이 1차 세계대전 때 군에 복무하면서 겪었던 막사의 체험을 음악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코를 골거나 잠결에 신음하는 소리가 영혼의 심연에서 울리는 원시음악처럼 독특하게 들렸다는군요.

파국으로 치닫는 3막은 다섯 곡의 인벤션으로 이루어집니다. 마리가 보체크를 배신한 데 대한 죄책감으로 성경을 읽는 1장에서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변주와 푸가로, 보체크가 마리를 살해하는 2장에서는 마리가 죽을 때 올리는 비명의 ‘나(b)' 음으로, 보체크가 술집으로 되돌아오는 3장에서는 폴카 리듬으로, 칼을 찾으러 살해 현장으로 돌아간 보체크가 물에 빠져 죽는 4장에서는 ’죽음의 소리‘라는 테마로 인벤션이 이어집니다.

보체크가 죽은 직후 5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삽입된 간주곡은 쇤베르크 가곡에서 인용한 장송곡으로, 베르크는 여기서 자신이 창조한 주인공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3막 5장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목마 타는 흉내를 내며 혼자 무대에 남겨지는 보체크의 아이는 가난도, 남들의 멸시와 불평등한 신분도 모두 그대로 대물림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베르크는 주인공 보체크의 착란 상태와 강박관념 등을 표현하는 데 무조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때로는 현악기로 통속적이고 애잔한 분위기를 살리는 조성음악을 쓰다가도 보체크의 불안한 상태를 표현할 때는 언제나 무조적인 음악으로 돌아갔지요. 뷔히너는 냉철한 이성으로 혁명 혹은 개혁을 주도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마리처럼 종교적 구원을 갈망하거나 보체크처럼 착란과 혼돈 상태에 빠져드는 현상을 냉정하게 경계했지만, 작곡가 베르크는 이 남녀 주인공의 어긋나는 사랑에 좀 더 따뜻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Berg, Wozzeck

Wozzeck: Franz Grundheber

Marie: Hildegard Behrens

Captain: Heinz Zednik

Doctor: Aage Haugland

Drum Major: Walter Raffeiner

Wiener Sängerknaben

Wiener Staatsopernchor

Wiener Philharmoniker

Conductor: Claudio Abbado

Staatsoper, Wien

1987.06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보체크-마리 순)

1. 발터 베리, 이자벨 슈트라우스 등, 피에르 불레즈 지휘, 파리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연주, 1970년 녹음, CBS Records (음반)

2. 프란츠 그룬트헤버, 힐데가르트 베렌스 등,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1988년 녹음, DG (음반)

3. 데일 듀싱, 크리스티네 치진스키 등, 실뱅 캉브를랭 지휘, 프랑크푸르트 뮤지엄 오케스트라 및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합창단, 페터 무스바흐 연출, 1996년 TV 방영용, 스펙트럼 (DVD, 한글 자막).

4. 프란츠 그룬트헤버, 발트라우트 마이어 등,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및 베를린 국립오페라 합창단, 파트리스 셰로 연출, 1994년 실황, 워너뮤직 (DVD)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음악>극음악/오페라 20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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