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ktoria Mullova - Bach, Violin Concerto No.1 in A minor, BWV 1041
Viktoria Mullova, violin
Ottavio Dantone, conductor
Accademia Bizantina
George Enescu Festival 2013
Sala Palatului, Bucharest, Romania
2013.09.27
1983년 핀란드에서 공연 중이던 소련의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와 그녀의 연인인 피아니스트 박탕 조르다니아가 서방으로 함께 망명했습니다. 뮬로바는 과음으로 아프다는 핑계를 대서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던 소련 기관 KGB를 따돌리는 데 성공했지요. 이들은 스웨덴 국경을 넘은 뒤 가명으로 이틀간 호텔에 투숙하며 신분을 숨겼고, 소련 정부의 소유였던 악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호텔 침대 위에 그대로 두고 떠났다고 합니다.
뮬로바는 1980년 핀란드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와 1982년 소련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해서 일약 주복을 받았던 연주자입니다. 당시 연인 조르다니아 역시 1971년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했고, 훗날 KBS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습니다. 이들의 망명 소식은 당시 세계 음악계에서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지요.
냉전 시기 ‘철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소련에서 오히려 클래식 음악의 전통적인 결이 더 온전하게 보존됐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입니다. 철저하게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었기에 음악에서도 보수적이고 낭만적인 전통을 고수한 것이지요. 특히 피아노와 바이올린 같은 기악 분야에서는 서방세계에 위협적일 정도로 정확한 기교와 엄격한 해석을 자랑했습니다. ▶빅토리아 뮬로바(1959~ )
인간적인 옛 바이올린으로 바로크 음악에 다가가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명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을 사사한 뮬로바 역시 소련의 음악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지요. 망명 직후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어릴 적에는 언제나 연습, 연습, 연습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얼음 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세계 유수의 콩쿠르를 제패한 원동력은 역시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항공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전직 교사였던 어머니도 딸이 네 살 때부터 레슨을 받을 때마다 곁에서 일일이 지켜보면서 메모를 했고, 집에서 지도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지 꼼꼼히 확인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는 한국 음악 가정의 열성과도 닮아 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얼음도 조금씩 녹는 법입니다. 5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얼음 공주’ 뮬로바의 바이올린에서도 어느새 따스함이 묻어나옵니다. 강렬하고 차가운 현대의 바이올린 대신, 나긋나긋하면서도 인간적인 옛 바이올린으로 바로크 음악에 다가가는 것이지요. 정상에 오른 독주자가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낯선 세계로 향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도 “언제나 100퍼센트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연습해 왔다. 그렇기에 새로운 시도는 미지의 분야로 나아가는 것과 다름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비웃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라고 고백했지요.
2009년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음반에서도 뮬로바는 양의 창자로 만든 거트 현과 바로크 활을 택했습니다. 15년 전에 현대식 바이올린으로 녹음했던 같은 작품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접근한 것입니다. 그녀는 “예전의 내 바흐 음반을 들을 때마다 내게 얼마나 큰 변화가 생겼는지 깨닫고 놀란다.”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테크닉 대신 음악성을 얻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겠지요.
흔히 나이와 함께 늘어나는 것이 고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뮬로바는 유연함과 개방성으로 음악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빅토리아 뮬로바는 놀라운 바이올리니스트일 뿐 아니라 당신의 음악의 눈을 뜨게 하는 탁월한 커뮤니케이터이다." ―The Daily Telegraph
글 김성현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사이면 래틀과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의 전기를 번역했다.
출처 : 김성현, <스마트 클래식 100>(아트북스, 2013.05.29 초판 발행)
Viktoria Mullova - Shostakovich, Violin Concerto No.1 in A minor, O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