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재주꾼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
Julia Fischer,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Julia Fischer, violin
Vasily Petrenko, conductor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Salle Pleyel, Paris
2013.06.14
2013년 6월 14일 파리 살 플레옐 공연입니다. 무대 입장부터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연주를 마치고 앙코르곡으로 힌데미트와 바흐의 곡을 독주한 다음 퇴장까지의 연주 전 과정이 담긴 영상입니다. 공연장 분위기를 그대로 호흡하실 수 있습니다.
활이면 활, 건반이면 건반, 악기 하나로는 부족한 다재다능한 연주자
가곡 반주를 즐겨 맡았던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이나 아내 갈리나 비시넵스카야(소프라노, 1926-2012)의 피아노 반주를 자청했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처럼, 음악계엔 만능 재주꾼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1983~ )처럼 다재다능함을 한 무대에서 드러낸다면 얘기는 또 달라집니다.

2008년 1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던 독일 청소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마티아스 핀처)의 신년음악회에 피셔가 협연자로 초대받았습니다. 당시 1부에서 피셔는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정상적’으로 협연했지요. 하지만 2부 무대로 돌아온 피셔는 활을 잡는 대신 피아노 앞에 앉아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한 무대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선보인 그녀의 재주에 음악계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상황은 영상으로도 출시됐지요. ▶바이올린과 피아노 솜씨를 한 무대에서 뽐낸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
피셔의 도전이 의미 있는 건, 단지 두 악기를 선보였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닙니다. 열 개의 손가락이 건반과 맞닿는 피아노가 기본적으로 화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면, 하나의 활을 잡는 바이올린은 선율을 읊조리는 데 잘 어울리는 악기입니다. 피셔는 “다성(多聲) 음악의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훨씬 까다롭다. 반면 선율의 흐름을 표현하기에는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더 쉽다.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라는 이중성을 통해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지요.
이는 다양한 시야에서 음악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학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피셔는 네 살 적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함께 배웠습니다. 네 살 터울의 오빠가 피아노 연습을 마칠 때까지 꼬박 기다렸다가 건반 앞에 앉았다고 하지요. 피셔는 열두 살 때인 1995년 예후디 메뉴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부터 ‘영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성공 궤적을 그대로 밟았습니다. 같은 해 슈만의 <서주와 알레그로 아파시오나토>를 연주해서 피아니스트로도 데뷔했지만, 콩쿠르 우승 직후 바이올린에 전념하기로 했지요.
피셔는 스무 살 때 로린 마젤의 지휘로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했고, 같은 해 뉴욕 카네기 홀에도 데뷔했습니다. 그 즈음 음반사 펜타톤과 전속 계약을 맺었고, 바흐의 무반주 독주곡과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으로 평단의 상찬을 받았습니다. 여러 음반사의 제의가 쏟아졌지만, 레퍼토리 선택에서 ‘백지 수표’를 위임한 펜타톤이 피셔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그 뒤 2998년 대형 음반사인 데카로 이적한 궤적도 선배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조숙(早熟)이 만성(晩成)을 보장하지 않듯이, 너무 이른 성공에는 우려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질주하다가 스스로 지쳐서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지요. 피셔의 양수겸장은 영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보입니다.
실제 피셔는 비발디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40여 곡에 이르는 협주곡을 레퍼토리로 지니고 있고, 2010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율리아 피셔 4중주단’을 결성해서 실내악곡을 연주했습니다. 피셔는 재주만이 아니라 속뜻까지 깊기에 더욱 영특하게 보이는 연주자입니다.
글 김성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인 사이면 래틀과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의 전기를 번역했다.
출처 : 김성현, <스마트 클래식 100>(아트북스, 2013.05.29 초판 발행)

*아래 두 영상은 위 글에서 언급한 2008년 1월 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페르에서 열린 신년음악회 연주 영상입니다. 위 영상은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의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이고, 아래 영상은 피아니스트 율리아 피셔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연주입니다.
Julia Fischer - Saint-Saëns, Violin Concerto No.3 in B minor, Op.61
Julia Fischer, violin
Matthias Pintscher, conductor
Junge Deutsche Philharmonie
Alte Oper, Frankfurt
2008.01.01
Julia Fischer - Grieg Piano Concerto in A minor, Op.16
Julia Fischer, piano
Matthias Pintscher, conductor
Junge Deutsche Philharmonie
Alte Oper, Frankfurt
2008.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