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

라라와복래 2014. 8. 14. 15:22

Gregorian chant

그레고리오 성가

Padre Maestro Alfonso del Ferraro

Coro della Cappella Papale di San Francesco d’Assisi

1967

마에스트로인 알폰소 델 페라로 신부가 이끄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교회 합창대의 녹음입니다.

 

<가톨릭 대사전>은 “그레고리오 성가는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 때 형성된 것으로, 그전까지 구전되어 오던 성가를 집대성하여 정착화시켰다는 점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라 불리게 되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레고리오 성가를 그레고리오(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직접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전해 내려오는 속설을 믿어서이다. 음악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그레고리오 성가가 직접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거나 집대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했으나, 적어도 이 성가가 그의 노력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됐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Gregorius Magnus, 역사상 대교황 칭호를 받은 교황은 단 두 분인데 다른 한 교황은 서로마 제국 말기의 레오 1세이다)은 전례 음악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여 ‘가수학교(歌手學校, schola cantorum)’를 설립하고 성가대를 육성하였는데, 그때부터 비로소 전례 성가의 전통이 수립되었고 중세 음악교육의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초대 그리스도교의 전례와 음악은 유대적인 것과 그리스적인 것, 거기에 로마적인 것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출발했고, 5세기에 이르러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세례를 준 주교)가 교회음악에 명확한 형태를 부여하는 4개의 유명한 찬가를 만들면서 점차 그리스도교 고유 형태에 접근하게 되었다. 암브로시우스 찬가는 하나의 범례가 되어서 많은 시인과 작곡가들로 하여금 좋은 찬가들을 쓰도록 이끌었다. 많은 교회들이 암브로시우스 찬가를 공식 음악으로 채택하여 사용하게 되었고 예배 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이 암브로시우스 찬가가 후에 그레고리오 성가에 계승되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재위 590~604). 자신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으로 자처한 그레고리우스 1세는 학문에 열심이었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암브로시우스, 성 히에로니무스와 함께 가톨릭교회의 4대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후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고대 문화와 학문의 전통이 끊기고 음악의 기록에 큰 공백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암흑기를 지나 베네딕투스가 나폴리 근처의 카시노 언덕 위에 수도원을 세우면서 교회음악에 대한 탐구가 새롭게 강화되었다. 특히,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연구는 베네딕트 교단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중세를 거치는 동안 고도의 예술성이 그레고리오 성가에 녹아들어 갔으니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트에서 자국어로 찬송가를 지어 부르게 됨에 따라 사용 빈도가 점차 낮아지게 되었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재인식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중세 선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1928년 교황 비오 11세는 교령을 통하여 그레고리오 성가의 사용을 장려하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그레고리오 성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미사 때 현지어 사용이 허용되면서부터 전례음악으로서 점차 각국 언어로 지은 찬가에 밀려나고 있는 추세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전례에 가장 합당한 음악 형태라는 견해를 취해 여전히 라틴어로 부르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고 있는 베네딕트회 수도사들

그레고리오 성가의 생명력은 음악적 영성(靈性)에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단성음악(單聲音樂)으로는 인류 최고의 형식으로 손꼽힌다. 이 성가의 뛰어난 구성은 종교적 감성을 표현하는 가장 완전한 형식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수천 곡에 이를 정도로 작품 수가 방대하다. 화성도 없고 악기의 반주도 없는 단성음악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많이 지어지고 불렸을까?

그레고리오 성가의 음악적 특징은, 엄숙하고 섬세하고 폭넓고 기품 있는 선율,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내연시키는 종교적 열정, 기하학적인 정교성과 조화, 청정할 만큼의 단순성, 상처 받은 영혼에 다가서는 위로와 안식에 있다. 이 성가는 원래 성인 남성에 의해서만 노래되었기 때문에 형언키 어려운 질량감도 지니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자유로운 환상이나 황홀한 감정은 찾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고도로 발전된 복잡한 음악들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무한한 환상과 열정, 환희를 듣는 사람에게 주고 있으니 그 이중의 모순과 신비는 실로 오묘하다 할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생명력은 뭐니 뭐니 해도 음악적 영성(靈性)에 있다 할 것이다. ◀중세 때 제작된 그레고리오 성가집의 화려한 악보

그레고리오 성가는 엄밀히 말해서 예배의 부속물로서의 기능을 갖는 음악이다. 따라서 이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 자체가 봉사하는 전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가톨릭교회엔 두 가지 중요한 전례가 있는데, 하나는 성무일도(聖務日禱)이고, 또 하나는 미사이다. 성무일도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인 순서에 따라서 드리는 8가지 기도를 말한다. 성무일도에서 부르는 그레고리오 성가엔 교창(交唱 Antiphonale)과 응창(應唱 Responsorium)이 있는데, 교창은 두 개의 합창이 서로 대화를 나누듯 교대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고, 응창은 독창자에 대해서 합창이 응답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특히 응창에서는 독창자의 화려한 콜로라투라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이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미사는 중세에서 근대로 오면서 점차 성무일도보다 중요한 예배 의식으로 자리를 잡았고 현대에 와서 이 예배 형식은 각 교회의 전례를 대표하게 되었다. 미사라는 말의 라틴어 ‘Missa’는 ‘보내다’, ‘떠나보내다’, ‘파견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Mittere’에서 파생되었다. 본래 ‘Missa’라는 용어는 교회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로마 시대 일반사회에서 통용되던 것이다. 즉 ‘Ite, Missa est’라는 관용어는 법정에서 ‘재판이 끝났다’는 것을 선포한다든지 황제나 고관대작들을 알현한 뒤 ‘알현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었다. 이것을 교회가 받아들여 거룩한 집회인 미사성제(聖祭)가 끝났음을 선포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다.

미사의 기도문은 교회 캘린더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변하는 것은 고유문(固有文)이라 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통상문(通常文)이라고 한다. 16세기 이후의 작곡가들은 대체로 통상문에 곡을 붙였으나 그레고리오 성가는 고유문과 통상문에 두루 쓰이고 있다.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