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맹인 안마사
심재휘
상해의 변두리 시장 뒷골목에
그의 가게가 있다
하나뿐인 안마용 침상에는 가을비가
아픈 소리로 누워 있다
주렴 안쪽의 어둑한 나무 의자에 곧게 앉아
한 가닥 한 가닥
비의 상처들을 헤아리고 있는 맹인 안마사
곧 가을비도 그치는 저녁이 된다
간혹 처음 만나는 뒷골목에도
지독하도록 낯익은 풍경이 있으니
손으로 더듬어도 잘 만져지지 않는 것들아
눈을 감아도 자꾸만 가늘어지는 것들아
숨을 쉬면 결리는 나의 늑골 어디쯤에
그의 가게가 있다
출전 : <중국인 맹인 안마사>(문예중앙)
시인은 언젠가 상해의 변두리 시장 뒷골목을 배회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러다가 맹인 안마사에게 지친 몸을 맡겼던 적이 있었던가요?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는 주렴 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맹인 안마사는 고작 안마용 침상 하나를 놓은 가게 안 나무 의자에 곧게 앉아 바깥을 내다봅니다. 하늘에서 지면으로 늘어뜨린 가을비의 주렴 속에서 회색빛으로 가라앉은 낯선 도시 뒷골목은 처연합니다. 그것이 처연한 것은 그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의 처연함이 겹쳐진 탓이겠지요. 곧 가을비가 그친 저녁이 옵니다. 저녁의 그림자를 밟으며 곧 밤이 오겠지요. 어느새 중국인 맹인 안마사가 늑골 어디쯤에 들어와 앉습니다. 상해의 변두리 뒷골목에서 만난 맹인 안마사 그랬듯이 우리도 세상의 하염없이 쓸쓸한 풍경을 내다보는 날들이 있겠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시 심재휘(1963~ )는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1977년 계간지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등이 있다.
낭송 장성익 배우. 연극 <미친 극>, <밤비 내리는 영동교> 등에 출연.
음악 권재욱 / 애니메이션 강성진 / 프로듀서 김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