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글루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Gluck, Orpheo ed Euridice)

라라와복래 2014. 9. 20. 06:48

Gluck, Orpheo ed Euridice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

Orphée: Magdalena Kožená

Eurydice: Madeline Bender

Amour: Patricia Petibon

Monteverdi Choir

Orchestre Révolutionnaire et Romantique

Concuctor: Sir John Eliot Gardiner

Théâtre du Châtelet, Paris

1999

 

John Eliot Gardiner/Théâtre du Châtelet 1999 - Gluck, Orphée et Eurydice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의 시인이자 음악가(제목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이탈리어로 읽은 것)이다. 무사이(뮤즈)의 하나인 칼리오페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오르페우스 자신은 태양신이자 음악의 신 아폴론을 아버지로 믿고 있다. 그가 수금을 타며 노래하면 맹수와 바위들까지 그 노래에 감동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님프 에우리디케와 결혼했지만 그녀가 이내 뱀에 물려 죽자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되찾으려고 하계로 내려가 명부의 신과 정령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명부를 빠져나오면서, 지상의 빛을 볼 때까지 아내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령을 어겨 결국 영원히 에우리디케를 잃고 만다. 저승으로 건너가는 스틱스 강가에서 일주일을 울며 지샌 오르페우스는 이후 은거하며 다시는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는 아폴론 신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올림포스의 신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내려가는 오르페우스

원래 이 이야기는 열정이 인간을 얼마나 조심성 없게 만드는가에 대한 경고의 뜻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움과 근심을 이기지 못해 아내를 돌아보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후대 사람들은 이 오르페우스에게서 최초의 음악가를 보았고, 감성의 승리를 읽었으며, 죽음의 극복을 배웠고, 그의 이야기에서 ‘시인의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주제를 뽑아내 시로 소설로 연극으로 오페라로 변형시켰다.

많은 작가와 작곡가의 영감의 원천이 된 그리스 신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격렬한 슬픔 속에서 신들에게 그 여인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힘을 찾았던 이 부드럽고도 단호한 영웅은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단테, 보카치오를 비롯해 모든 시대의 대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의 붓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20세기 작가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오르페우스는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작곡가들 역시 여러 시대에 걸쳐 이 소재에 에너지를 쏟았다. 악보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로 불리는 야코포 페리(Jacopo Peri, 1561-1633)의 <에우리디체>는 오페라라는 예술 장르의 탄생기인 1600년의 작품이고, 오페라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오르페오>는 1607년의 작품이다. 그리고 오르페우스 소재 가운데 음악적인 면에서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가 바로 1762년에 빈에서 이탈리아어로 초연된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이다. 그 뒤로 하이든의 오페라 <애지자(愛智者)의 영혼 혹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1791년에 작곡되었고, 자크 오펜바흐는 이 소재를 패러디한 코믹 오페라 <지옥에 간 오르페>로 극장을 파산에서 구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오르페오가 지옥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곳에 사는 정령들에게 노래로 애원하는 부분이다. “복수의 여신들이여, 어둠의 정령들이여,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이 세상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탄원이 바로 이 오페라 안에 있다. 지옥의 정령들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거절해보지만, 간장을 녹이는 오르페오의 노래에 결국은 손을 들고 말 뿐만 아니라, 이 승리자에게 탄탄대로를 터주라고 입을 모아 합창까지 한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다시 만난 아내를 데리고 나오는 일이 녹록치 않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자, 지옥까지 쫓아온 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의 사랑이 식었다고 화를 내며 “그냥 지옥에서 살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다. 아무리 구슬려도 아내를 설득할 수 없게 되자 오르페오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돌아보고, 그 순간 에우리디체는 다시 어둠의 세계로 사라져간다. 하지만 글루크의 이 작품은 원래 대관식 축하공연의 일부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해피엔딩으로 개작되었다. 애절하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영이별을 하게 되면 축제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사랑의 신이 에우리디체를 살려내 둘을 다시 맺어주는 것으로 오페라는 마무리된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하계에 갇히게 된다.

이 작품은 1762년 빈 부르크테아터에서의 초연은 이탈리아어로 이루어졌다. 이때 글루크는 알토 카스트라토 가수에게 오르페오 역을 맡겼는데, 12년 뒤인 1774년 파리 초연 때는 테너가 오르페오 역을 부르도록 편곡 작업을 했다. 당시 프랑스에는 카스트라토의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프랑스 테너는 고음에서 팔세토(가성)를 썼기 때문에 일반 테너보다 고음역이 더 확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테너가 파리 판본으로 오르페오 역을 부르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 이유로 파리 판본의 경우 요즘은 대부분 메조소프라노나 알토 또는 카운터테너 가수가 오르페오 역을 맡는다.

Jochen Kowalski(countertenor) sings "Che farò senza Euridice"(에우리디체 없이 어떻게 살까?)

에우리디체 없이 어떻게 살까?

되찾은 에우리디체가 다시 하계로 사라진 뒤의 오르페오의 탄식

에우리디체 없이 어떻게 살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무엇을 할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어디로 갈까?

에우리디체, 에우리디체, 오 신이시여!

대답해주세요! 대답해주세요!

나는 그대의 충실한 사랑!

그대의 충실한 사랑!

충실한 사랑!

에우리디체, 에우리디체!

아! 이제 내게는

구원도 희망도 없소

하늘도 땅도 누구 하나 없소!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어떻게 살까?

사랑하는 그대 없이

사랑하는 그대 없이 *안동림 선생의 번역을 조금 고쳤습니다.

성악적 기교에 치우친 바로크 스타일을 개혁한 근현대 오페라의 선구자

글루크는 보헤미아 지방에서 산림감독관의 아들로 태어나 프라하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귀족을 위한 연주나 교회 오르간 연주로 생계를 이어갔다. 오페라 공연들을 보면서 이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1735년에 빈으로 갔다가 다시 밀라노로 올겨 그곳에서 오페라 작곡을 공부했다. 1745년 이후 글루크는 유럽의 여러 음악도시를 옮겨 다니며 활동했고, 런던에서 헨델과 함께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1752년에 빈에 정착한 글루크는 로브코비치 공의 궁정 오페라 작곡가로 일했다.

글루크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성악가의 음악적 기교에만 치중하다가 생명력을 잃었다고 여기고 오페라 개혁에 착수했다. 프랑스의 전통과 이탈리아 전통의 장점을 조화시키려 했던 글루크는 1770년대에 이탈리아 전통의 수호자를 자처한 작곡가 니콜라 피치니와 부퐁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경쟁과 논쟁을 계속했지만, 음악적인 결과물들을 통해 승리는 글루크에게 돌아갔다. 말년에 빈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여생을 보낸 글루크는 1787년에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글루크의 오페라 개혁 이후, 즉 고전시대 이후의 오페라들은 모두 글루크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독일 음악극의 형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베토벤의 <피델리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는 내용면에서 모두 오르페오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자신을 억제하며 감정을 숨겨야 하는 주인공들을 내세웠다.

<오페라, 행복한 중독>(이용숙 지음, 예담)의 글을 바탕으로 하여 정리하였습니다.

추천음반 *박종호 저 <오페라 에센스 55>에서 전재했습니다.

1. 가디너 판 : 데릭 리 레이긴(오르페오), 실비아 맥네어(에우리디체), 신디아 시덴(아모레)/ 지휘 존 엘리엇 가디너,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몬테베르디 합창단, 1991, 데카, CD

이 오페라의 많은 녹음들이 있었지만 이 음반이 나오면서 평정되었다. 오르페 역을 부를 카운터테너가 귀하여 알토, 메조소프라노 심지어 바리톤까지 동원되었지만, 레이긴의 등장으로 제대로 된 카운터테너의 음반이 깃발을 꽂았다. 가디너의 해석과 원전연주의 수준도 최고이며, 다른 배역들도 뛰어난 노래를 펼친다. 녹음 역시 과거의 세트를 재현하여 당시의 음향을 살리는 등, 이 오페라 녹음 중 최고의 음반이다.

2. 코번트 가든 판 : 요헨 코발스키(오르페오), 길리언 웹스터(에우리디체), 제레미 버드(아모레)/ 지휘 하르트무트 헨헨,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연출 하리 쿠퍼, 1991, 아르트하우스, DVD

적지 않은 영상물 가운데 좋은 카운터테너가 오르페 역을 맡아 제대로 소화했느냐 하는 측면에서는 이 영상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코발스키는 노래는 물론이고 외모나 연기까지 관객을 비극의 주인공에게 끌어당긴다.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쿠퍼의 연출이다. 교통사고 장면이나 전기 기타와 청바지 등도 눈을 끌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지옥을 정신병원으로 묘사한 점과 아모르를 어린 소년으로 만든 것이다.

3. 가르니에 판 : 마리아 리카르디 베젤링(오르페오), 마리 아그네스 지요(에우리디체), 임선혜(아모레)/ 지휘 토마스 헹겔브로크, 발타지르 노이만 앙상블과 합창단/ 연출과 안무 피나 바우슈, DVD

현대무용의 거장인 피나 바우슈가 연출을 해서 남긴 단 하나의 오페라 실황이다. 소위 더블 이미지를 사용하여 한 배역에 가수와 무용수 두 명이 함께 나와 연기한다. 즉 가수는 노래를, 무용수는 무용을 맡는다. 바우슈의 미학이 그대로 드러난 아름답고 슬픈 무대는 글루크의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베젤링의 노래도 좋고 임선헤도 아주 뛰어나다. 음악, 미술, 무용을 완벽하게 결합한 댄스 시어터의 대표적인 명작이다.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