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나 자신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몇몇 사람은 사후에야 태어나는 법이다. 언젠가는 내가 이해하는 삶과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기관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니체가 쓴 <이 사람을 보라>의 한 대목인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에 나오는 말들이다. 좋은 책을 권유하고 집필을 멈추지 않은 니체를 만난다.
쇼펜하우어의 책에서 자아를 만나고, 사회학자 랑게의 책에 빠져 랑게주의자가 되다
젊은 날의 니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중의 하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었다. 그는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한 학기를 보내면서 신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어머니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는 본 대학에서 만난 저명한 문헌학자인 리츨(F. W. Ritschl)을 따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학교를 옮긴다. 1865년 8월 17일에 본을 떠난 니체는 라이프치히에 도착해서 여전히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리츨 교수를 따라 문헌학자의 꿈을 키우게도 되었지만, 20대의 니체가 진정한 스승을 발견한 것은 어느 헌책방에서였다. ▶열일곱 살 무렵의 니체, 1861
“나는 그때 근본적인 원칙도 희망도 단 하나의 즐거운 기억도 없이 고통스러운 경험이나 실망스러운 일만을 겪으면서 절망하여 갈팡질팡하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상상해보라. 어느 날 나는 그의 책을 발견했다. 헌책방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 책을 집어 몇 쪽을 넘겨 보았다. 도대체 어떤 악령이 내게 ‘이 책을 집으로 가지고 가라’고 속삭였는지 모르겠다. 이런 행동은 평소 책을 살 때 망설이던 버릇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집에 있던 나는 새로 획득한 보물을 가지고 소파에 몸을 묻은 채 그 정력적이고 우울한 천재가 뿜어내는 마력에 나를 맡겨 보았다. … 여기에서 나는 세계와 인생, 그리고 나 자신의 본성이 소름 끼치도록 웅장하게 비치고 있는 하나의 거울을 보았다. … 여기에서 나는 병과 건강, 유배와 피난처, 지옥과 천국을 보았다.” ―니체, <라이프치히에서 보낸 2년에 대한 회고>
그리고 얼마 뒤에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랑게의 저서를 읽고 영향을 받게 된다. 1866년의 여름 기간 동안 니체는 랑게의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를 탐독한 후 일 년 반 뒤인 1868년 2월 16일에 게르스도르프에게 편지를 보내 랑게의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니체의 권유에 의해 게르스도르프는 이미 쇼펜하우어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니체는 이번에는 랑게주의자가 되기를 권유한다. 니체 자신이 랑게주의자가 돼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 책은 제목이 약속하는 것보다 더 많은 내용을 무한히 담고 있으며, 반복해서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진정한 저장고라네.” 그리고 니체는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유물론 운동, 다윈 이론을 포함한 자연과학 … 윤리적 유물론, 맨체스터 학설”에 대해 언급한다. 니체는 랑게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887년에 개정판이 나왔을 때는 한 권을 다시 통독할 정도였다. 이처럼 매번 새로운 ‘주의자’가 되기를 권유하는 것은 니체 철학의 핵심인 ‘생성’(혹은 되기)의 실천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작곡가 바그너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되다
젊은 날의 니체에게 또 다른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바그너였다. 1868년의 10월 28일,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을 들은 후 니체는 바그너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된다. 여성편력이 화려했던 바그너는 당시 라이프치히에서 은신 중이었다. 긴밀하게 주선된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은 식사와 대화를 나누며 교감하게 된다. 이후 니체의 행보는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1869년 4월. 스물네 살의 니체는 바젤 대학의 고전어와 고전문학의 촉탁교수로 위촉된다. 리츨의 강력한 천거 덕분이기도 했고, 미망인이었던 어머니의 생활을 돕기 위해서라도 니체가 이 자리를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교수 시절에 동료들과 함께. 왼쪽부터 에르윈 로데, 카를 폰 게르스도르프, 니체, 1871.10
니체가 선생으로서 보인 재능에 대해 몇 가지 일화가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방패 이야기다. 니체는 여름방학 동안 호머의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방패에 대한 묘사를 읽어 오라는 숙제를 냈다. 방학이 끝난 첫 수업 시간에 니체는 한 학생에게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대한 묘사를 읽었는지 물었다. 그 학생은 읽지 않았으면서도 읽었다고 대답했다. “좋아. 그러면 우리에게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대해 한번 묘사해주게나.” 곧바로 침묵이 이어졌고, 니체는 10분 동안 열심히 경청하는 모습으로 교실을 왔다 갔다 했다. 잠시 후 니체는 말했다. “아주 잘했네. OO군이 우리에게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설명해주었으니, 이제 계속 수업을 하도록 하지.”
바젤에서의 생활은 니체에게 다양한 교류의 장이었다. 바그너와 깊은 유대를 나누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 신학자인 프란츠 오버베크, 종교사학자이자 법사학자인 바흐호펜, 동물학 교수인 뤼티마이어 등의 학자와 교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니체는 문헌학 교수의 자리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쓴 <비극의 탄생>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자 이러한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훗날의 니체는 “스물네 살에 대학 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글을 남길 정도였다.
심리적인 것도 있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교직 생활을 하기 힘들어진 니체는 1879년에 적은 연금을 받기로 하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십 년간의 교직 생활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긴 투병 생활과 함께 니체의 다양한 저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도덕에 객관적인 기초가 있다는 생각을 비판한 <아침놀>(1880), 처음으로 신의 죽음을 선언한 <즐거운 학문>(1882), 위버멘쉬(국내에서는 흔히 ‘초인’이라고 번역되어 왔다.)라는 개념을 도입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5), 니체의 철학적 윤곽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선악을 넘어서>(1886)가 이 시기의 주요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책으로 출간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기에 쓴 수많은 메모들 역시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 니체가 죽은 후에 나온 <힘에의 의지>는 니체의 유고 관리를 맡은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자의적으로 유고를 편집하여 만든 책이다. 유고의 자의적인 추출과 고의적인 삭제를 통해 완성된 책은 한때 나치의 사상에 맞춰진 것처럼 해석되면서 니체를 둘러싼 정치적 스캔들을 제공했다. 엘리자베트가 전쟁을 찬양하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독일군에게 보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녀는 니체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는데, 훗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된 거짓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신은 죽었다'
니체의 할아버지는 가톨릭교의 주교에 해당하는 루터 교회의 감독관이었으며,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는 작은 마을의 목사였다. 어머니 프란치스카 윌러는 루터 교회 목사의 딸이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이 일종의 반항처럼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또 다른 전기적 해설은 니체가 가풍에 충실한 아이였으며, 아버지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한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은 어린 니체에게 충격을 주었고, 니체의 여정이 유사 아버지를 찾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가령, 니체와 바그너의 기묘한 관계를 상징적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은 죽었다.”라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공격이나 논박이 아니라 서구의 지성사를 꿰뚫는 선언인 동시에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즐거운 학문>에서 신의 죽음을 설명하는 한 대목을 음미해보자. “사람들은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그의 그림자를 동굴에서 보여주었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이 지금 상태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신의 그림자가 떠도는 동굴들은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자 역시 정복해야만 한다.” 니체의 이 말은 그가 특정한 종교를 공격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왼쪽부터 루 살로메, 파울 레, 니체, 1882
니체의 개인사적 스캔들로 가장 유명한 것은 바젤 대학의 동료였던 철학자 파울 레와 그가 소개한 루 살로메와의 삼각관계이다. 파울 레는 살로메에게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하고, 플라토닉한 삼각관계를 형성하자는 살로메의 요청에 따라 니체를 끌어들이게 된다. 그런데, 니체가 살로메에게 청혼을 하면서 이들의 삼각관계는 종결이 된다. 이들의 사연은 호사가들의 재밋거리로 자주 거론되면서 여러 작품과 상상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스탠포드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인 어빈 얄롬이 쓴 소설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는 살로메가 니체를 위해 프로이트의 스승인 브로이어 박사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실제로 만난 적이 없지만, 이 소설은 허구를 통해 니체를 정신 분석해보는 흥미로운 상상의 소설이다).
기존 가치와 관습을 뒤바꾸려고 했던 '망치로 철학하기'
20세기의 뛰어난 철학자인 들뢰즈는 니체에 관한 저작 <니체와 철학>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니체의 가장 일반적인 기획은 철학에 의미와 가치의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분명, 현대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니체가 원했던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20세기 니체의 영향력은 철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이들에 의해 전유되었다. 개인적으로 니체를 다룬 흥미로운 책들로는, 영국의 소설가로 잘 알려진 아이리스 머독이 쓴 <니체>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조르주 바타유가 쓴 <니체에 관하여>, 피에르 클로소프스키가 쓴 <니체와 악순환> 등을 들 수 있다. 이 저자들은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라 소설을 비롯해서 다양하게 글을 썼던 인물들이다. ▶에드바르드 뭉크,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상화>, 1906
영감에 의한 글쓰기를 본보인 니체의 책은 수많은 저자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것은 관습을 뒤흔들고, 새로운 가치를 도입하는 니체의 호소력에서 비롯된다. 니체의 저작 <우상의 황혼>의 부제가 ‘망치로 철학하기’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니체는 기존 가치를 전도하여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사용한 ‘영원회귀’, ‘위버멘쉬’, ‘힘에의 의지’와 같은 사유의 언어는 손쉽게 잡히는 개념은 아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론인 고고학과 계보학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에 의해 이어지기는 했지만 니체는 체계적인 글을 쓰는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아포리즘’과 같은 경구 스타일의 문장을 쓰거나 파편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작가이자 시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스타일 때문에 니체는 종종 오해를 받아 왔지만, 그 덕분에 지금도 새로운 이해를 기다리는 인물이 되었다. 니체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책은 일종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사람을 보라>였다. 그는 이 책을 완성한 후 두 달 만에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생이 좀 더 가벼워지기를 갈망하면서, 책의 마지막을 이렇게 써 내려갔다. “나를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니체전집 세트
프리드리히 니체 저
정동호 역
책세상
2005.10.31
한국에서 니체는 축복받은 철학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집이 세 차례나 기획되어 간행되었는데, 현재 책세상에서 출간된 니체 전집이 여러 면에서 우리 시대의 정본이라고 할 수 있다. 책세상 출판사의 판본에는 니체의 다양한 유고들이 시기별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생전에 출간된 책을 읽어본 후 유고를 따라가는 것도 하나의 독서 방법이 될 것이다.

니체 그의 삶과 철학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저
김기복, 이원진 역
이제이북스
2004.11.17
레지날드 J. 홀링데일의 <니체, 그의 삶과 철학>은 니체의 여러 전기 중 충실도와 꼼꼼함에서 돋보이는 책이다. 책 속에 소개된 니체의 글은 책세상 전집을 기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전집과 비교하며 읽기에 유용하다.

니체
뤼디거 자프란스키 저
오윤희 역
문예출판사
2003.11.10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니체-그의 생애와 사상의 전기>는 2000년도에 완성된 최근 전기라는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1960년대에 집필된 홀링데일의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 현대 철학자들과의 지성사적인 관계 등이 후반부에 등장하는 것이 장점이며, 상대적으로 쉽게 서술된 전기라는 점에서도 매력이 크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저
그린비
2003.03.25
고병권의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다양한 연구자 중 한 명인 고병권의 글쓰기 스타일과 니체의 사유가 잘 결합된 좋은 개론서이다. 일부에서는 저자의 튀는 스타일을 문제 삼지만 니체보다 훨씬 더 얌전해 보이는 고병권의 글쓰기는 읽는 재미가 있다. 전반적으로 현대철학(특히 들뢰즈)의 니체 해석과 맞물려 있다.
글쓴이 이상용은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다. 여러 신문과 매체에 영화와 문화에 관한 글을 써 왔으며, 지은 책으로는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이 있다. 이외에도 여러 권의 공저가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인물>철학자> 서양철학자 200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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