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그의 생김새나 차림새가 아니라 그가 구사하는 말씨(글씨)에 있다고 하겠다.” ― 천소영, <우리말의 속살> 중에서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
장승욱
참(眞)이란 어떤 것일까. 참꽃과 개꽃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참꽃은 진달래, 개꽃은 철쭉의 다른 이름이다. 진달래와 철쭉은 똑같이 철쭉과에 속하면서 봄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나 우리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꽃들인데, 왜 하나는 참꽃, 하나는 개꽃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그것은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 때문이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는 꽃이기에 참꽃, 철쭉은 먹지 못하는 꽃이기 때문에 개꽃이 된 것이다. 진달래는 칡이나 아카시아, 쑥과 마찬가지로 춘궁기(春窮期)나 흉년에 밥 대신 배를 채울 수 있는 구황 식물(救荒植物)이다.
철쭉 쪽에서 보자면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할지도 모르겠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밥이 곧 하늘인 현실에서 같은 꽃이라고 해도 목구멍에 넣어 허기를 끌 수 있는 진달래가 참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참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참이란 진실(眞實) 또는 진리(眞理)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삶의 진실, 진리는 이렇듯 사람의 목숨· 생명과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사람을 살게 하는 것, 그것이 참이라는 얘기다.
참꽃의 ‘참-’은 거짓이 아니고 진짜라는 뜻과 허름하지 않고 썩 좋다는 뜻을 나타내는 앞가지(접두사)다. 그래서 말 그대로 참기름은 진짜 참기름일 수밖에 없는데, 요즘은 하도 가짜 참기름이 나도는 바람에 순(純) 진짜 참기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장충동에 족발을 먹으러 가서 보면 거기서도 집집마다 순(純) 진짜 오리지널 원조(元祖) 족발집임을 내세우고 있다. 진짜의 수난시대가 아닐 수 없다. 참말도 그렇다. 그냥 ‘참말이냐’하면 될 것을 ‘진짜 참말이냐’고 물어야 하는 세상이다.
출전: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하늘연못)
글을 배달하며
이제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를 아셨지요? 이런 문장 끝에는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을 붙이고 싶지만, 오늘은 한글날이니 글로만 표현해보겠습니다. ‘도사리’는 순 우리말로 “익는 도중에 바람이나 병 때문에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말한다고 합니다. 낙과(落果)라고 하면 얼른 이해할 수 있으시지요. 지은이는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를 “도사리를 줍는 마음으로‘ 썼다고 합니다.
“언어가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기보다는 훨씬 더 많은 언어에 의하여 인간이 만들어진다.”라고 단언한 독일의 철학자도 있습니다. 말의 중요성을 무엇에 비유하겠습니까. 모국어의 가치나 중요성에 대해 한번 돌아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글 장승욱(언론인, 우리말 작가): 1961년 전남 강진 출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지은 책으로 <한겨레 말모이>, <경마장에 없는 말들>, <토박이말 일곱 마당>, <국어사전을 베고 잠들다> 등이 있음.
낭독 이갑선(배우):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 <키친>, <안티고네> 등에 출연
음악: Stock music/Home Town Proud 중에서 / 애니메이션: 박지영 / 프로듀서: 양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