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파트리크 모디아노
프랑스의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Patrick Modiano, 69)가 201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공식 발표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월 9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모디아노를 선정하고 “붙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기억의 예술로 환기시키고 (나치의 파리) 점령기의 생활세계를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모디아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매우 기쁘지만 좀 의아하다”며 “과거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을 생각해봤을 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왜 나를 뽑았는지 빨리 그 이유를 듣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1945년 프랑스의 불로뉴-비양쿠르에서 이탈리아계 유대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살에 글쓰기를 시작해 1968년 소설 <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 상, 페네옹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1972년 발표한 세 번째 작품 <외곽도로>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거머쥐었고, 연이어 1975년에는 <슬픈 빌라>로 리브레리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78년 발표한 여섯 번째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1984년과 2000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해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 문학 대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유럽 문학을 위한 오스트리아 국가상을 수상했다.
모디아노는 데뷔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아 왔으며, 그의 작품 중 <슬픈 빌라>, <청춘시절>, <8월의 일요일들>, <잃어버린 대학>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른 주요 작품으로는 <도라 브루더>(1997), <신원 미상 여자>(1999), <작은 보석>(2001), <한밤의 사고>(2003), <혈통>(2005) 등이 있다.
주요 작품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슬픈 빌라 그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도라 브루더

한밤의 사고 혈통 신원 미상 여자 작은 보석
작품 세계
모디아노의 작품세계에 대해 한국외대 불문학과 김용석 교수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 바 있다.

20세기 후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자기 자신의 과거, 보다 정확하게는 그가 태어난 1945년을 전후한 과거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으며, 특히 프랑스의 점령기는 그의 작품에서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박해의 대상이었던 유대인 신분의 아버지가 검거를 피하기 위해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하면서 도피 생활을 해야 했으며, 프랑스 국적을 갖지 못했던 어머니 역시 비슷한 상태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들 부부는 모디아노를 낳았을 때 가족수첩에조차 자신들의 본명을 기입하지 못하고 가명을 적어 넣어야만 했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모디아노에게 있어서 과거는 반드시 그가 되찾아야만 하는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모디아노가 이처럼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과거란 어떤 방식을 통해 되찾아질 수 있는가? 그것은 기억을 통해서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기억은 그의 정체성 확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갖지 못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이 기억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모두 되살릴 수 없다는 데 있다. 게다가 모디아노가 되살리길 원하는 과거는 그 자신의 출생 시기를 전후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 현실 가능성은 더욱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되살리기 어려운 상황이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으로 대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십여 년 전 갑자기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 기 롤랑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 작품의 첫 문장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다. 실제로 기 롤랑은 47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론 이렇게 되찾은 과거, 되살린 기억을 통해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확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상태보다는 더 나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이야기를 통한 자기 정체성의 확립 가능성인 것이다.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프랑스 문단과 독자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 온 파트리크 모디아노를 대표하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Rue des boutiques obscures)>. 저자 특유의 신비하고 몽상적 언어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기억의 어두운 거리를 헤매는 퇴역 탐정 기 롤랑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여행을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기 롤랑이 자신의 바스러진 과거를 추적해 가는 모험을 따라가면서,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 주제 의식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프랑스의 비극적 현대사를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인간의 진정한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붕괴시켜 나가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만나게 된다.
등장인물
기 롤랑 십여 년 전 갑자기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간다. 팔 년 동안 위트의 흥신소에서 일했다.
위트 기 롤랑이 일하던 흥신소를 운영하다 은퇴하여 니스로 떠나면서 흥신소 사무실을 기 롤랑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해준다.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이 넘고, 키는 1미터 95센티미터쯤 되는 거구의 탐정.
폴 소나쉬체 카페를 운영하며 기 롤랑이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찾아간 인물.
장 외르퇴르 식당을 경영하며 소나쉬체의 친구이자 역시 기 롤랑의 기억 찾기에 단서를 제공하는 인물.
스티오파 드 자고리에프 : 기 롤랑에게 과거 찾기의 실마리가 되는 사진 두 장을 준 인물.
월도 블런트 피아니스트. 게이 오를로프가 미국에 있을 때 여섯 달 동안 결혼생활을 했던 인물로 지금은 서른 살 젊은 여자와 살고 있다.
게이 오를로프 러시아 출신 망명자의 신분으로 미국에 거주하다가 1936년에 프랑스에 도착함.
클로드 하워드 드 뤼즈 프레디 하워드 드 뤼즈와 육촌지간.
로베르 하워드 드 뤼즈 씨의 정원을 돌보고 운전사로 일했으며, 기 롤랑에게 사진이 들어 있는 비스킷 통을 건네주는 인물.
드니즈 기 롤랑과 연인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 서류상에는 기 롤랑의 가명으로 보이는 지미 페드로 스테른과 결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엘렌 드니즈의 친구.
작품 줄거리
기 롤랑은 지난 8년 동안 함께 일하던 흥신소의 사장 위트가 은퇴하여 니스로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나서, 자신은 과거를 추적하는 일이 남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위트는 기 롤랑이 하려는 과거 추적이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위트는 기 롤랑이 갑자기 기억상실증에 걸렸을 때 신분증과 여권을 만들어준 탐정이다. 이후 기 롤랑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을 되찾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우선 기 롤랑은 폴 소나쉬체와 그의 친구 장 외르트르를 만나서 스티오파 드 자고리에프에 관한 단서를 제공받는다. 또한 스티오파는 기 롤랑에게 사진을 두 장 줌으로써 그의 과거 찾기에 실마리를 던져준다. 이후 기 롤랑은 윌도 블런트, 클로드, 로베르, 엘렌 등의 인물들을 찾아다니며 희미한 과거 속에서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탐문한다.
그 과정에서 받은 사진들을 토대로 기 롤랑은 자신이 차례로 프레디 하워드 드 뤼즈, 남미 사람 페드로, 페드로 맥케부아, 지미 페드로 스테른 등의 이름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생각하며, 그와 드니즈 그리고 프레디와 게이 오를로프, 네 사람이 므제브로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기 롤랑은 망수르라는 사진작가를 통해 드니즈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과거의 단서들을 추적하면서 자신일지도 모를 이름들을 듣게 될 때마다 마치 정말 자신이 그 인물이었다고 확신하며 조금씩 과거의 파편들의 모자이크를 맞춰 나간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지미 혹은 페드로, 스테른 혹은 맥케부아 중 어느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던 중에 경마기수인 앙드레 빌드메르를 만나서 페드로 맥케부아라고 불렸던 기 롤랑의 과거가 일정 부분 밝혀지게 된다. 기 롤랑은 드니즈, 게이 오를로프, 프레디와 함께 므제브로 갔으며, 그곳에서 기 롤랑과 드니즈 둘이 스위스 국경을 넘으려다 이들을 도와주겠다는 두 명의 인물들에게 속아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 롤랑은 니스로 내려간 위트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위트는 한 편지에서 기 롤랑에게 이렇게 적고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이후 기 롤랑은 기억 찾기의 마지막 시도를 해보기로 작정하는데,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로마에 있는 나의 옛 주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에 가볼 필요가 있었다”라고 기 롤랑이 생각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끝을 맺는다.
작품 속의 명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위대한 소설들, 고전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은 독자들의 기억에 뚜렷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소 짧은 문장으로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마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시작하는 “나는 오랫동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처럼.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문을 열고 있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은 문학으로, 아니 이 세상 그 누구라도 간직하고 있을 지나온 자신의 과거를 탐색하고 이야기하고 서술함으로써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신이 지금은 누구인지를 알아 갈 수 있는 가능성의 첫 단추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 그것이 시작점임을 시사하는 문장이다.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