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살롱

인상파 (7) - 카유보트, 부르주아의 당당한 시선

라라와복래 2014. 11. 26. 21:14

인상파

카유보트, 부르주아의 당당한 시선


귀스타브 카유보트, <발코니>, 캔버스에 유채, 69x62cm, 1880, 개인 소장

 


에두아르 마네,, <발코니>, 캔버스에 유채, 170x124cm, 1868/69, 오르세 미술관, 파리

마네도 <발코니>라는 작품을 그렸지만 카유보트도 발코니를 즐겨 화폭에 담았다. 마네가 다분히 스페인 화풍으로 발코니의 정경을 그렸다면, 카유보트는 다소 다르게 근대적인 분위기를 많이 드러내는 프랑스적인 모습을 담았다고 하겠다. 마치 사진처럼 말이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과감한 구도를 채택해서 오른쪽에 인물을 배치하고 왼쪽에 풍경을 그려 놓았다. 발코니의 의미는 무엇일까? 실내에서 외부를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발코니이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은밀한 건물 내부를 조금이나마 훔쳐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네의 <발코니>가 부르주아적 삶에 대한 구경꾼의 궁금증을 유발한다면 카유보트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파리의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당당한 부르주아의 시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다리>처럼 이 그림에서도 아래에 있는 무엇인가를 구경하는 신사를 확인할 수가 있다. 이 남자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지는 않지만 거리의 군중들일 것이다. 햇빛이 반짝이는 가로수 아래로 느릿느릿 거리 풍경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만보자들이 있을 것이 뻔하다. <위에서 내려다본 대로>라는 특이한 구도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거리의 풍경이 거기에 있다. 만보자는 구경꾼이자 동시에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이중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이 그림은 잘 드러낸다. 도시는 이처럼 상호의 경험과 기억을 주고받는 공간인 셈이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유럽의 다리>, 캔버스에 유채, 124.8x180.7cm, 1876, 프티 팔레 미술관, 파리

 


귀스타브 카유보트, <위에서 내려다본 대로>, 캔버스에 유채, 100x81cm, 1880, 개인 소장

비슷한 시기에 그린 <눈 내린 오스망 대로>에서도 이런 구도를 확인할 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서도 카유보트는 근대 도시의 풍경을 특이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독일의 문예학자 벤야민이 개념을 통해 19세기 파리의 풍경을 복원해내는 것처럼, 카유보트는 특유의 시선으로 실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외부의 풍경을 생생하게 잡아내고 있다. 벤야민에게 파리의 풍경은 기억의 심해에 가라앉아 있다가 갑자기 떠오른 고대 도시의 이미지들을 곳곳에 숨기고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낯선 풍경처럼 안개 속에 잠겨 있던 무의식의 공간들이 나타난 것이 근대성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이 출몰하는 것이라는 미학이 여기에 깔려 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눈 내린 오스망 대로>, 캔버스에 유채, 62.8x95cm, 1880, 개인 소장

카유보트가 이 그림을 그렸던 1880년은 파리에 1월 내내 폭설이 쏟아졌다. 무척 이례적인 날씨였다. 2월에 되어서야 겨우 평년 기온을 회복했으니 따뜻한 봄이 무척 그리웠을 것이다. 이렇게 길고 긴 추운 겨울을 지나고 맞이한 생동하는 풍경이 카유보트의 <발코니>에 담겨 있다. 부유했던 카유보트야 별 문제 없었겠지만, 당시 가난한 동네 몽마르트르에 살고 있던 르누아르는 매일 아침 난방을 위해 불을 지펴야 했다. 하지만 없는 처지라 저녁에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건너편에 있는 치즈 가게에서 식사를 해결하면서 몸을 녹였다. ‘크레메리’라는 상호를 달고 있던 이 작은 가게는 간이식당을 겸하고 있었는데, 가게의 여주인이 르누아르를 사윗감으로 점찍고 있었다. 매일 저녁 가게에서 끼니를 떼는 그의 모습에서 이 여주인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여주인의 착각이었고, 르누아르는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해결하면서 저녁이면 카페나 바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미혼자의 삶’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르누아르와 대조적으로 카유보트는 부유하고 젊은 화가였다. 1880년 <발코니>를 그릴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둘에 불과했다. 그의 그림에서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읽을 수 없는 패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카유보트는 화가이자 수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이런 에너지가 그림에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인상파 화가들은 서서히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 중 제일 연장자인 피사로는 이때 50세를 맞이했다. 20여 년 동안 이들은 전통적인 취향에 사로잡혀 있던 관객의 비난과 싸워야 했고, 그림을 구매해줄 화상을 찾지 못해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처지에 비한다면 카유보트의 삶은 편안했다고 할 수 있다. 카유보트의 뒤를 따라서 장 라파엘리나 고갱 같은 신진 세력들이 성장하고 있었고, 이들도 점차 화단에서 이름을 얻어 가기 시작했다. 인상파의 세대교체가 임박했던 것이다.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 자화상, 1892

카유보트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인상주의의 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중요한 실험으로 생각했던 인상파 화가들은 1880년대에 이르러서는 판화 기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판화 기법에 영감을 받아 드가가 조각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드가는 일찍부터 판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메리 커샛도 마찬가지였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판화 기법과 함께 사진술의 영향도 읽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물론 카유보트가 사진술을 직접적으로 활용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는 요즘으로 치자면 ‘줌인’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한 구도로 그림을 그렸다. <눈 내린 지붕>이나 <위에서 내려다본 대로>에서 사진술의 기법을 연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투르빌의 별장>도 마찬가지이다. 모네도 투르빌의 풍경을 즐겨 그렸지만, 카유보트의 그림은 모네와 달리 파격적인 구도를 보이고 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눈 내린 지붕>, 캔버스에 유채, 64x82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귀스타브 카유보트, <투르빌의 별장>, 캔버스에 유채, 65x81cm, 몽고메리 갤러리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했던 시기에 파리는 낡은 중세 도시의 이미지를 탈피해서 우아하고 화려한 근대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이런 변화의 실상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는 기록물이기도 한 것이다. 그가 사진술을 채택한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날씨만 좋으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거리로 야외로 쏟아져 나오는 요즘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보라.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만들어서 되돌아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것이 미학의 역할이다. 19세기 파리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다만 이들은 카메라 대신 그림을 통해 이런 욕구를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이런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인상파적인 대응이었던 셈이다.

이택광 (문화비평가) 부산에서 자랐다.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문화 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영국으로 건너가 워릭 대학교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셰필드 대학교에서 문화이론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영화주간지 <씨네21>에 글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시각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치사회 문제를 해명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영미문화 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문화웹진 채널예스>칼럼>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2011.03.17

http://ch.yes24.com/Article/View/17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