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다비드 동맹 무곡집’(Schumann, Davidsbündlertänze, Op.6)
라라와복래2015. 9. 13. 13:20
Schumann, Davidsbündlertänze, Op.6
슈만 ‘다비드 동맹 무곡집’
Robert Schumann
1810-1856
Adam Laloum, piano
Verbier Festival 2010
Salle des Combins, Verbier
2010.07.17
Adam Laloum - Schumann, Davidsbündlertänze, Op.6
슈만의 피아노 음악은 작곡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성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초기에 작곡한 많은 피아노 작품들은 그가 열렬히 사랑했던 클라라 비크와 관련된 것이 많다. 실제로 그녀가 제시한, 혹은 그녀로 인해 영감을 받은 주제를 사용함과 동시에 그녀와 관련된 감정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느낌, 갈망, 분노, 희망, 동경, 미래, 꿈, 더 나아가 사랑에 관련된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작품에 녹여냈다. <클라라 비크 주제에 의한 즉흥곡>(Op.5)은 제목부터 그녀가 등장하고, <카니발>(Op.9), <크라이슬레리아>(Op.16), <환상곡 C장조>(Op.17), <노벨레테>(Op.21)는 그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1936년부터 1838년 사이에 작곡한 피아노 작품들에는 클라라가 제시한 주제를 사용한 작품들이 많다. 1839년 9월 슈만은 자신의 이전 스승인 하인리히 도른(Heinrich Dorn)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은 바 있다. “분명히 제 음악에는 클라라가 희생하며 얻어낸 투쟁의 흔적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실제로 제가 협주곡과 소나타, 다비드 동맹 무곡, 크라이슬레리아나, 노벨레테를 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주곤 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작품들 가운데 협주곡은 원래 오케스트라 없는 협주곡으로 구상되었다가 1839년 이후 피아노 소나타 3번으로 개명한 작품을 가리킨다. 그리고 슈만의 피아노 작품들 대다수는 클라라에게 헌정되기도 했다.
당시 슈만의 피아노 작품들의 특징은 자의식적인 의지와 시각적인 환상의 결합을 독자적인 프로그래밍을 갖춘 음악으로 만든 것으로서, 청자들은 음악만을 통해서는 그 내용을 쉽게 가늠할 수 없고 정신분석학적이고 전기적이며 문학적인 분석을 통해서 그의 작품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1837년 로베르트 슈만이 작곡한 1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연작집인 <다비드 동맹 무곡>(Op.6) 또한 이러한 작품으로, 비슷한 시기의 피아노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내용과 구성을 담고 있는 특별한 작품이다. 작품번호로는 6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카니발>(1835)과 <교향적 연습곡>(1834), 피아노 소나타 3번(1836) 이후에 작곡한 것이며, 피아노 어법이 원숙하게 개화한 <크라이슬레리아나>와 <어린이 정경>에 이르는 과도기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피아노 음악사에서 슈만의 가치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격 소품(character piece)’의 전형을 창조해냈다는 업적 때문이다. 여러 독일의 시인들뿐만 아니라 E.T.A. 호프만(1776-1822)의 예술은 슈만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 그로테스크한 환상과 풍부한 광기, 신랄한 풍자가 슈만의 음악으로 고스란히 발화된 것이다. 특히 슈만은 작품의 주체가 눈으로 본 것만 묘사하거나 나열하지 않고 그 대상이 느끼는 감정과 의지,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대구, 그리고 스토리보드의 점진적인 지향점 등을 형이상학적이고도 문학적인 관점에서 음악적으로 형상화했는데 그 시발점이 바로 <다비드 동맹 무곡>이라고 할 수 있다.▶E.T.A 호프만
1833년 가을 슈만은 심한 우울증과 자신을 지극히 돌보아주던 형수의 죽음으로 인해 처음으로 발작을 일으킨다. 이 증세를 간신히 회복한 그는 1834년 라이프치히에서 <음악신보>를 창간하여 친구들을 모았다. 이 저널은 당시의 음악가들에 대한 맹공격을 주목적을 하고 있었는데, 크라머, 체르니, 탈베르크, 루크가버, 마이어베어와 같은 이른바 속물적 예술가들(전적으로 슈만의 관점에 의한)을 대항하기 위한 다비드 동맹을 결성했다. 현실적인 연맹인지 아니면 슈만의 관념 속에서만 등장하는 상상인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파리에서 베를리오즈와 리스트가 공동 작업으로 <가제트 뮈지칼레>를 창간하여 천재는 오로지 그들만이 천재를 판단할 권리를 요구하며 관료나 공무원, 성직자들이 취미로 아마추어적인 음악평론을 하는 것을 비판했던 것을 슈만이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슈만은 질풍노도라는 공격의 기치를 높이 들고 다비드 동맹의 이름을 통해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든 등이 구현한 진실한 음악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을 <음악신보>를 통해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슈만은 자신의 펜네임으로 전혀 다른 성격의 남녀 캐릭터를 등장시켜 글을 썼는데, 우울한 몽상가인 오이제비우스(Eusebius)와 혈기왕성한 정력가인 플로레스탄(Florestan)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적인 관점에 보면 조울증적, 더 나아가 자아분열증적인 증세라고도 할 정도인데, 어찌 되었든 슈만은 전혀 다른 성격의 필자들을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속물들을 조소함과 동시에 비평이 예술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문학과 음악의 결합이라는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단련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스승인 비크 교수의 반대와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사랑은 물론이려니와 다비드 동맹 또한 무너지기 시작했다.
1836년부터 1837년 사이 그는 처절한 패배감과 과잉된 승부욕으로 점철된 자기 자신의 자화상을 두 곡의 피아노 작품을 통해 그려냈는데 하나는 관념적인 산물인 <환상곡 C장조>, 다른 하나는 비교적 현실적인 산물인 <다비드 동맹 무곡>이 그것이다. <환상곡 C장조>가 슈만의 무의식의 반영으로서 암울하고 혼합적이며 파열된 영혼에 대한 모순적인 감정들의 혼합을 직설적으로 담고 있다면, <다비드 동맹 무곡>은 속물들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뭉친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 어떻게 보면 슈만 자신과 클라라의 결의에 찬 대화와 사랑의 밀어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그런 까닭에 각 곡들은 무곡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지만 무곡 같지 않고 전체의 전개 또한 <교향적 연습곡>처럼 화려한 결말로 돌진하지 않고 끝까지 대화체의 형식을 견지하고 있다. 클라라의 자작곡인 마주르카 Op.6 No.5를 주제로 삼은 이 <다비드 동맹 무곡>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쇼팽과 더불어 낭만주의 피아노 예술의 포문을 연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는다.
각 무곡들에 슈만은 오이제비우스(E)와 플로레스탄(Fl)이라는 이니셜을 붙였고 오이제비우스의 번호에서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성악적인 표현력을, 플로레스탄의 번호에서는 빠르고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와 격정적인 리듬을 사용하여 대비를 주었다. 한편 9번에는 “여기서 플로레스탄은 멈춰 서서 가슴 아프게 자신의 입술을 떤다”라는 해설을, 18번에는 “오이제비우스가 덧붙여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항상 그의 두 눈에서는 거대한 행복감이 빛나고 있었다”라는 해설을 남겼다. 1838년 클라라에게 고백했듯이, 이 작품에 슈만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과 폴터아벤드(Polterabend, 독일의 결혼식 이브 파티로 행운을 빌며 낡은 도자기를 깨뜨린다) 이야기를 담았다. 많은 문학적인 상징과 음악적인 은유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한 이 무곡의 근본적인 출발점은 바로 클라라와의 사랑인 것이다. ◀클라라 비크, 1838년
첫 출판본의 표지에는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손자인 발터 폰 괴테에게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가 헌정한다고 명시했지만, 재판본에서는 이 대목과 서문을 삭제했고 제목에서 무곡이라는 단어를 지웠으며 자신의 해설도 삭제했다. 그리고 음악에서도 반복부를 첨가하고 곡 순서와 빠르기 지시도 조금 바꾸어 자신의 관점이 변했음을 피력했지만, 현재는 재판본보다는 초판본을 더 많이 선호하여 연주, 녹음한다.
옛말에 이르기를 “어떤 나이가 되든지 항상 슬픔과 즐거움은 함께 찾아온다. 기쁜 가운데 경건함을 잃지 않고, 슬픔을 용기로 맞이하도록 하자.” ―초판본 서문
1번 Lebhaft (생기 있게):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
2번 Innig (마음으로부터): 오이제비우스
3번 Etwas hahnbüchen (조금 격렬하게, 1st edition, 유머를 갖고, 2nd edition): 플로레스탄
4번 Ungeduldug (초조하게): 플로레스탄
5번 Einfach (단순하게): 오이제비우스
6번 Sehr rasch und in sich hinein (매우 생기 있고 밝게, 1st edition, 매우 생기 있게, 2nd edition): 플로레스탄
7번 Nicht schnell mit äußerst starker Empfindung (빠르지 않고 깊은 표현력으로, 1st edition, 빠르지 않게, 2nd edition): 오이제비우스
글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