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베토벤 교향곡 7번에 대한 단상 - 이채훈

라라와복래 2016. 3. 22. 11:05

베토벤 교향곡 7번에 대한 단상

글 이채훈

Beethoven,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Daniel Barenboim, conductor

West-Eastern Divan Orchestra

BBC Proms 2012 Prom 13

Royal Albert Hall, London

2012.07.24

베토벤(1770-1827)은 어릴 적 친구였던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나는 예술을 오직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만을 위해 창조할 생각이오.”

상처 입은 치유자베토벤은 외로웠다. 1802,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서 그는 삶을 긍정했다. 그를 죽음의 나락에서 건져낸 것은 예술이었다. “불행한 사람들이여! 한낱 그대와 같이 불행한 사람이, 온갖 타고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이름에 값 닿는 사람이 되고자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으라.” 비통한 마음을 딛고 이렇게 외쳤을 때 그는 혼자였다.

그 후 10년 동안 베토벤은 교향곡 에로이카’, ‘운명’, ‘전원등 불멸의 예술을 인류에게 선사했지만 점점 더 외로워졌다. 1812, ‘불멸의 연인안토니 브렌타노와의 사랑이 좌절됐다. 안토니 브렌타노는 베토벤을 진정 사랑했지만 착한 남편 프란츠를 괴롭힐 수 없었기 때문에 베토벤을 두고 떠나게 된다. 그녀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예술가로서의 베토벤보다 인간 베토벤은 한층 더 위대했다.” 베토벤은 안토니 브렌타노와 멀어진 뒤 일기에 썼다. “너 불쌍한 베토벤이여, 너에게 행복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너는 오로지 혼자 모든 것을 창조해야 한다. 너의 예술 안에서만 살아라. 그것만이 너의 유일한 실존이다.” 안토니 브렌타노. 미국의 베토벤 연구가 메이너드 솔로몬은 1972년에 안토니 브렌타노가 불멸의 연인이라고 처음 주장했지만 근거는 박약하다.(라라와복래)

1813년 초연된 교향곡 7번은 거침없는 리듬의 향연이다. 숭고한 도취를 통한 삶의 카타르시스다. 혼자임을 인정한 천재는 이제 거리낄 게 없었다. “나는 인류를 위하여 향기로운 포도주를 빚는 바쿠스(디오니소스)이다. 사람들에게 거룩한 도취감을 주는 것은 바로 나다.” 사자는 단추를 풀어헤쳤다. 빈의 대다수 청중들은 이 교향곡을 듣고 놀라서 술에 취한 사람이 작곡한 음악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는 베토벤이 이제 정말 정신병원에 갈 때가 됐군이라고 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개의치 않았다.

음악은 사람들의 정신에서 불꽃이 솟아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술 취한 사람이 작곡한 음악

1악장의 서주는 디오니소스의 성스런 축제를 예고한다. 알레그로 비바체의 1악장은 시종일관 ~따다, ~따다’ 6/8박자 리듬의 향연이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유쾌한 첫 주제를 연주하면 모든 연주자들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화답한다. 1주제가 발전할 때 약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광기와 도취의 이면에 깃든 슬픔과 우울이다.

이 교향곡에 가장 열광한 사람은 바그너였다. 그는 이 곡의 피날레를 디오니소스의 축제라 부르고, 리스트가 편곡한 피아노 선율에 맞춰서 춤을 추기도 했다. ‘춤의 신격화란 별명을 얻은 이 교향곡은 발레로 다시 탄생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우베 숄츠(Uwe Scholtz)가 안무한 발레 7번 교향곡은 작년 한국에서 공연된 바 있다.

베토벤이 사랑의 희망을 포기한 1812년은 공교롭게도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패배하여 몰락의 길로 접어든 바로 그해였다. 베토벤은 50만 프랑스 대군이 퇴각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젊은 시절 내내 그의 피를 끓게 했던 혁명의 불꽃은 꺼져 가고 있었다.

2악장 알레그레토는 전장에서 죽어간 프랑스 병사들의 운구 행렬을 떠올리며 작곡했다는 말이 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몰락을 슬퍼하진 않았을 것이다. 오래전 황제로 등극하여 세속적 야심을 드러낸 나폴레옹에게 크게 실망하여 에로이카교향곡 표지의 헌사를 찢어버린 그가 아닌가. 이 곡과 함께 초연된 전쟁 교향곡 <웰링턴의 승리>는 나폴레옹군의 패배를 축하하는 음악이 아니던가. 하지만 베토벤은 덧없이 스러져간 젊은 목숨들을 애통해했을 것이다. 힘없이 꺼져 가는 혁명의 불길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2악장 알레그레토는 젊은 시절의 혁명과 사랑을 떠나보내는 베토벤 자신의 장송행진곡이었다.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낮은 목소리가 첫 주제를 연주한다. 장송행진곡의 규모는 점점 커진다. 팀파니가 땅을 치며 통곡하고, 모든 관악기가 비통하게 노래한다. 광기와 통곡의 2악장은 차라리 고독한 베토벤의 절규라 할 만하다. 초연 때 앙코르 연주된 2악장은 오늘날도 가장 귀에 익숙한 대목이다.

3악장 스케르초와 4악장 프레스토는 더욱 강렬한 도취와 광란이다. 베토벤은 통념도, 인습도, 사람들의 쑥덕거림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자기의 기질대로 행동했다. 자신의 천재성과 힘의 자각에서 오는 기쁨, 그 힘을 거침없이 분출하려는 욕망이 있을 뿐이었다. 사랑도 가고 혁명도 갔다. 부르주아 계급이 혁명성을 갖고 있던 유일한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유럽의 권력자들은 보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준비했고, 시민계급은 급속히 보수화되고 있었다. 혁명과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급속히 확산됐다.

대중들은 베토벤의 음악이 너무 어렵고 심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가볍고 유쾌한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요제프 라너의 왈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빈의 음악팬들은 베토벤의 위대성을 인정했지만 로시니의 경쾌하고 재기발랄한 음악을 선호했다. 음악사에서 이른바 비더마이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독일어로 성실하다, 점잖다는 뜻의 형용사 비더(bieder)에 가장 평범한 남자 이름인 마이어(Meier)를 이어붙인 비더마이어는 보수적인 소시민들이 부담없이 즐기는 소박한 예술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 속물의 전성시대에 베토벤은 더욱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7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베토벤은 내면으로 침잠하기 시작했다. 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와 현악 4중주곡들은 깊은 내면의 독백이다. 이 작품들은 당시 음악팬들에게 어렵게 느껴졌는데, 요즘도 대중적인 레퍼토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서 30년 넘게 무르익어 온 실러의 환희의 송가는 교향곡 9번의 피날레에서 드디어 폭발했다. 인류의 형제애를 예찬한 이 교향곡은 베토벤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 준 영원한 평화의 선물이다. 하지만 우리 평범한 인간들은 오늘도 탐욕과 갈등의 진흙탕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 베토벤 교향곡 71악장

슈투트가르트 발레 베토벤 교향곡 72악장

슈투트가르트 발레 베토벤 교향곡 73, 4악장


글쓴이 :  이채훈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 MBC PD

출처 : 미디어 오늘 이채훈의 힐링 클래식’ 2015.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