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trich Fischer-Dieskau/Gerald Moore - Schubert, Schwanengesang, D.957
이탈리아어 ‘세레나데’(serenade)는 ‘저녁'(sera, serus)의 음악’이라는 뜻입니다. 해가 진 뒤에 연주되는 다양한 음악을 가리키는 명칭이죠. ‘연인의 창가에서 부르는 사랑의 노래’가 세레나데의 일반적인 예지만, 반드시 가사가 있는 음악을 뜻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기악 앙상블 세레나데도 있으니까요. ‘맑게 갠’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세레노’(sereno)를 어원으로 보기도 한다는군요.
세레나데 중 우리 귀에 가장 익숙한 곡은 역시 “명랑한 저 달빛 아래 들리는 소리...”로 시작되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입니다. ‘명랑한 달빛? 달빛도 쾌활할 수 있나?’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말은 ‘밝고 맑은 달빛’이라는 뜻이랍니다. 사실 이 첫 구절은 가사의 음절을 곡에 맞추기 위한 번안일 뿐이고, 원래 이 곡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이 밤의 어둠을 뚫고 날아가는 내 노래는/ 나직하게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고요한 수풀 아래로/ 연인이여, 내게 오세요!/ 잔 수풀 가지들은 달빛 속에서/ 속삭이며 살랑거리네요/ 심술궂게 엿듣는 이들일랑/ 두려워 말아요, 사랑하는 그대여!/ 밤꾀꼬리들의 날갯짓이 들리나요?/ 아, 새들도 그대에게/ 달콤한 한숨이 섞인 노래로/ 나 대신 간청하고 있네요/ 저 새들은 가슴 속의 갈망을 알고 있죠/ 사랑의 괴로움을 아는 거예요/ 그 영롱하고 반짝이는 노래로/ 여린 마음들을 흔들어 놓잖아요/ 그대도 가슴을 열어 주세요/ 연인이여, 내 말을 들어요/ 그리움에 떨며 그대를 기다리고 있잖아요/ 어서 와서 나를 기쁘게 해 주세요!”
슈베르트 삶의 마지막 해에 작곡한 가곡들
남자가 연인의 창문 아래 ‘서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으로 ‘슈텐트혠’(Ständchen)이라고 불리는 이 세레나데는 19세기 독일 시인 루트비히 렐슈타프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것입니다. 전 세계 연인들에게 사랑받는 이 노래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백조의 노래> 중 네 번째 곡이죠. 백조는 평생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운다는 속설 때문에 ‘백조의 노래’라는 말은 보통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을 칭합니다. 서른한 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가 생애의 마지막 여름에 작곡한 열네 곡의 예술가곡(리트)들이 이 <백조의 노래>에 담겨 있습니다.
이 마지막 해 1828년 8월에 슈베르트는 다시 리트를 작곡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혔습니다. 이해에는 주로 기악곡과 대규모 성악곡에 전념했고, 가곡은 거의 작곡하지 않았던 참이었지요. <백조의 노래>(D.957) 1-7곡은 루트비히 렐슈타브, 8-13곡은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 그리고 마지막 14곡은 슈베르트가 그해 10월 요한 가브리엘 자이들의 시에 붙인 곡입니다. 이 가운데 렐슈타브의 시 몇 편은 베토벤이 작곡하려다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군요. 베토벤을 한없이 존경했던 슈베르트는 아마도 베토벤의 뜻을 이어 이 작품들을 작곡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두었을 것 같습니다.◀‘백조의 노래’ 1곡에서 7곡까지는 독일의 시인 루트비히 렐슈타브(Ludwig Rellstab, 1799-1860)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백조의 노래>는 슈베르트의 대표적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나 <겨울 나그네>(Die Winterreise)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작품입니다. 영어로 ‘송 사이클’(song cycle), 독일어로 '리더취클루스'(Liederzyklus)라고 부르는 ‘연가곡’이란, 내용이나 특성 면에서 서로 관련 있는 몇 곡의 가곡이 각각 독립된 완결성을 지니면서 하나로 묶인 음악작품을 가리키지요. 그런데 연가곡 <백조의 노래>에 수록된 가곡들은 내용 면에서 서로 연관성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처럼 주인공의 사랑과 실연을 보여주지도 않고, <겨울 나그네>처럼 절망 속에 눈보라를 뚫고 가는 여정을 보여주지도 않지요. 그런데 왜 연가곡일까요?
빈의 악보출판사 슈타이너 소유주였던 토비아스 하슬링어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반 년 뒤에 위의 열네 곡을 묶어 ‘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여 출판했습니다.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된 데는 물론 악보 판매 부수를 높이기 위한 상술이 작용했겠지요. 슈베르트 자신은 이 곡들이 하나로 묶여 ‘백조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불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전에 슈베르트는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리트들만 따로 출판할 계획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위의 시들 중 여러 편, 특히 하이네의 시편들은 당시 슈베르트의 정서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슈베르트가 이 시들을 선택했던 것이겠지요. 렐슈타프의 시들이 주로 자연과 사랑에 관한 노래라면, 하이네의 시편들은 당대 독일문학 특유의 ‘아이러니’로 인간 내면을 비추고 있습니다.
8곡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의 형제이자 거인족의 하나인 아틀라스를 주인공으로 한 곡인데요,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해 온 지구를 어깨에 떠받치는 벌을 받은 아틀라스는 바로 삶의 무게를 영원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죠.
13곡 ‘그림자’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치게 된다는 비현실적 설정을 통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슈베르트의 내적 혼란과 마음의 상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내용상으로는 연가곡이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노래들이지만, 작곡 스타일 면에서는 하나로 묶일 만한 공통점도 지닌 곡들입니다.
한편으로는 3곡 ‘봄의 동경’이나 14곡 ‘비둘기 우편’은 단순하고 경쾌하면서도 세련된 슈베르트 가곡 말년의 특징을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9곡 ‘그녀의 초상’이나 13곡 ‘그림자’처럼 낭만주의를 선취하는 가곡 형식을 볼 수 있습니다. 시어의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정서를 음악이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곡들이죠.
봄을 맞이하는 설렘과 가슴 속에 가득한 열정을 슈베르트의 ‘봄의 동경’만큼 가볍고 사랑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극적이고 폭발적으로 표현한 리트는 두 번 다시없을 것입니다. <백조의 노래>에 수록된 리트들은 상반되는 정서와 감정을 담고 있으며, 때로는 한 곡 안에서도 격정과 체념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내면을 표현합니다. 고전주의 리트의 조화와 통일성, 그리고 낭만주의 리트의 파격이 공존하는 독특하고 탁월한 연가곡입니다.
Christoph Prégardien/Andreas Staier - Schubert, Schwanengesang, D.957
Christoph Prégardien, tenor
Andreas Staier, fortepiano
Galaxy Studios, Mol, Belgie
2008.06.27-30
추천음반
1.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바리톤), 제랄드 무어(피아노), 1972년, DG
2. 크리스토프 프레가르디엥(테너), 안드레아스 슈타이어(피아노), 2008년, Challenge Class
3. 마티아스 괴르네(바리톤), 알프레드 브렌델(피아노), 2005년, Decca
4. 토마스 크바스토프(바리톤), 유스투스 체옌(피아노), 2001년, DG
글 이용숙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