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4번(Schubert, Piano Sonata No.4 in A minor, D.537)
라라와복래2018. 6. 14. 23:31
Schubert, Piano Sonata No.4 in A minor, D.537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4번
Franz Schubert
1797-1828
Julius Kim(김정원) 피아노 리사이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시리즈 3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2015.9.12
Julius Kim - Schubert, Piano Sonata No.4 in A minor, D.537
“슈베르트를 좋아하세요?”
누군가 이야기했습니다. 취미 난에 ‘음악 감상’은 적는 게 아니라고. 이 세상에 음악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데 그걸 특별히 취미로 적을 게 있냐는 겁니다. 게다가 클래식 듣는 사람이라면 모차르트도 적으면 안 된답니다. 모차르트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냐는 거죠. 그러고 보니 “슈베르트 좋아하세요?”라는 질문도 부질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누가 슈베르트를 싫어하거나 멀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안온한 멜랑콜리를 전하는 그의 음악과 달리 사실 슈베르트의 삶은 내내 적막했습니다. 천재적인 감수성과 놀라운 음악성을 지닌 대작곡가였지만, 당대에는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지요. 심지어 멀쩡히 곡을 써 놓고도 변변한 발표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피아노를 두드리며 간이 음악회를 여는 게 고작이었지요.
풀리지 않는 인생, 크고 작은 상처투성이의 삶, 절망처럼 엄습하는 현재와 불안하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미래에의 전망까지…. 그러나 이런 현실의 비루함에도 슈베르트, 그의 영혼만은 결코 영롱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결백할 정도로 심오한 정신과 아름다움에 대한 고원한 갈구는 한 인생의 비참함과 한 시대의 무정함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놀랍고도 위대한 음악예술로 승화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늘 슈베르트를 듣게 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피아노 앞에 앉은 슈베르트>, 캔버스에 오일, 150X200cm, 1989. 그림 왼쪽의 여인은 마리아 치머만이라는 클림트의 모델로 그에게서 아들 둘을 낳았으나 둘째 아이 출산 이듬해에 죽었다. 이 그림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소실되었다.
‘독립된 예술가’는 클림트 예술의 주요한 모티브였습니다. ‘영혼의 독립성’, ‘정신적 자유’,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예술을 위한 예술’은 세기말 빈을 살아가던 구스타프 클림트에게는 가장 중요한 예술적 테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클림트는 베토벤을 존경했고, 슈베르트를 영혼의 동지로 생각했습니다.
저 그림, <피아노에 앉은 슈베르트>는 클림트가 1899년, 20세기를 딱 1년 남기고 완성한 작품입니다. 촛불을 광원으로 사용하여 일렁거리는 부드러운 빛 속에서, 묘령의 여인들에 둘러싸여 슈베르트가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안온하고 우아하며, 벽난로의 온기마저 느껴지는 그 행복함 속에도 쓸쓸한 멜랑콜리는 여전합니다.
그림을 보며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4번을 들어봅니다. 그렇게 유명한 음악은 아닙니다. 그러나 놀랍도록 아름답습니다. 특히나 2악장은 황홀합니다.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와 이별을 하는 듯한 모습이랄까요.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지금 이 시기에, 어느 카페에 앉아 조용한 오전을 보내며 하릴없이 들어보고픈 음악이기도 합니다. 잠적과 고립, 침묵과 고요는 언제나 슈베르트 음악의 친구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이멘도르프 성(Schloss Immendorf)에 걸려 있던 클림트의 저 그림은 이제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퇴각하던 독일군이 성을 폭파시키면서 그림 또한 소실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행태에 그림의 물리적 형체는 없어졌지만, 고도로 정화된 예술을 꿈꿨던 클림트의 비원(悲願)과 슈베르트의 위대한 영혼만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Mitsuko Uchida - Schubert, Schubert, Piano Sonata No.4 in A minor, D.537
Mitsuko Uchida, piano
Grosser Saal, Musikverein, Wien
2001.08
글쓴이 황지원은 오페라와 이탈리아, 여행과 미식을 사랑하며 경계 없는 자유주의자의 삶을 꿈꾼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디어메이트> 대표로 있으며, 유럽 14개 오페라 도시의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 살롱>을 썼다. 예술의전당과 성남아트센터 등에서 클래식과 오페라를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