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자크 현악 세레나데 E장조(Dvořák, Serenade for Strings in E major, Op.22)
라라와복래2018. 6. 18. 01:04
Dvořák, Serenade for Strings in E major, Op.22
드보르자크 현악 세레나데 E장조
Antonín Dvořák
1841-1904
Gordan Nikolić, violin & concertmaster
Netherlands Chamber Orchestra
Concertgebouw, Amsterdam
2016.11.27
Gordan Nikolić/NCO - Dvořák, Serenade for Strings in E major, Op.22
“매년 악보를 제출하는 장학생 후보자들을 보면 젊음, 가난, 재능의 세 가지 자격 조건 가운데 앞의 둘은 가지고 있으나, 세 번째 것을 포기한 작곡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신청자 가운데 프라하 사람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강렬하고, 비록 충분히 익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작곡 재능을 드러낸 악보를 보았을 때, 우리에게 그것은 아주 유쾌한 놀라움이었다.” ―에두아르트 한슬리크
1875년 초, 드보르자크는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예술가들에게 주는 장학금의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그것은 그에게 일생일대의 전환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즉 호텔과 레스토랑의 악사, 가설극장의 비올라 주자, 성당의 오르간 주자, 개인교사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 가던 시절을 청산하고 한결 여유로운 생활 기반 위에서 작곡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더구나 장학금의 심사위원이었던 요하네스 브람스는 그의 재능을 각별히 주목하여 자신이 거래하던 악보 출판사에 그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바야흐로 30대 중반의 드보르자크에게 영광스러운 미래의 서광이 비쳐 왔던 것이다.
5년 동안 매년 400굴덴이라는 막대한 장학금에 탄력을 받은 드보르자크는 곧바로 폭발적인 창작력을 발휘했다. 일단 1875년 한 해 동안에만 교향곡 5번 F장조, 현악 세레나데 E장조, 현악 5중주곡 G장조, 피아노 3중주곡 B플랫장조, 피아노 4중주곡 D장조, 대형 오페라 <반다> 등이 완성되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현악 세레나데 E장조이다.
1875년 5월 3일부터 14일까지,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작곡된 이 세레나데는 드보르자크의 가장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운 작품들 중 하나이다. ‘세레나데’라고 하면 먼저 ‘연인의 창가에서 부르는 사랑노래’를 떠올리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18세기 후반에 모차르트 등이 썼던 ‘다악장의 기악 앙상블 음악’을 가리키기도 한다. 드보르자크의 곡은 후자의 선례를 따른 것인데, 평소 모차르트를 경애해 마지않았던 그였기에 이런 곡을 썼던 것이리라. 참고로 드보르자크의 세레나데는 이 곡 말고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관악 세레나데 d단조(1878)이다.
보헤미아의 정취와 풍부한 인간미
모두 다섯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고전적인 세레나데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즉 진지하고 극적이기보다는 느긋하고 유희적이며, 쾌적하고 여유로운 저녁 또는 밤에 어울리는 은은한 분위기와 유려한 운치를 지니고 있다. 기본적으로 순수한 음들의 향연이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사랑하는 이와 달빛 아래 정원 또는 오솔길을 거니는 듯한 기분을 자아내며, 다소 느슨한 구성과 형식 속에서 사뭇 다채롭고 풍요로운 맛과 멋이 떠오른다. 아울러 이 곡에는 드보르자크가 사랑했던 그의 고향, 보헤미아의 풍경과 정취가 담겨 있으며, 무엇보다 그 특유의 소박하고 진솔한 인간미가 배어 있다.
드보르자크 고향인 보헤미아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 볼타바 강 전경. (제공: 황장원 필자)
1악장: 모데라토
E장조, 4/4박자. 고전적인 세레나데의 첫 악장에는 보통 소나타 형식이 적용되지만, 드보르자크는 단순한 3부 형식으로 구성했다. 그 시작 부분은 무척 은근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는데, 그 이유는 제1바이올린의 화려함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즉 먼저 비올라의 반주 위에서 제2바이올린이 차분한 선율을 꺼내 놓고, 조금 뒤에야 제1바이올린이 화사한 음들을 얹어 놓는다.
대체로 은은하고 유려한 선율의 흐름을 이어 가는 제1부에 비해 제2부에서는 점점 리듬의 활력이 더해져 수면 아래에 숨어 있던 춤곡 풍의 분위기가 표면화된다. 제3부에서는 비올라 파트와 첼로 파트가 분할되고 대위 선율이 더해지는 등 한층 두터워진 텍스추어(음악의 조직)에서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2악장: 템포 디 발스
c샤프단조, 3/4박자. 여러 개의 왈츠 주제가 어우러진 춤곡 악장이다. 주제들의 일부는 쇼팽의 ‘c샤프단조 왈츠’(Op.64-2)의 그것을 연상시키며, 트리오에서는 카논 풍의 반복이 흥미로운 효과를 만들어낸다. 악보에 따라서는 이 악장이 ‘미뉴에트 알레그로 콘 모토’로 지정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3악장: 스케르초 비바체
F장조, 2/4박자. 자유로운 구성의 스케르초 악장이다. 카논으로 출발하는 스케르초는 경쾌한 반면, A장조의 트리오는 차분하여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특히 두 차례 등장하는 트리오는 특별한 변화를 수반하여 드보르자크 특유의 창의성을 잘 보여준다.
4악장: 라르게토
A장조, 2/4박자. 야상곡 풍의 느린 악장으로 풍부한 서정성과 시적 정취를 지니고 있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현악기들의 특성과 아름다운 음향을 십분 활용한 기법이 돋보이며, 특히 바이올린이 고음부에서 반짝이는 여린 음들을 이어가는 대목에서는 마치 밤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환영을 보는 듯하다.
5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비바체
f샤프단조 – E장조, 2/4박자. 론도 소나타 형식을 취하여 사뭇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피날레 악장이다. 썩 매끄럽지 못하며 비쭉거리고 흥청거리는 론도 주제는 다시금 카논으로 시작되는데, 드보르자크는 여기서 원격조에서 출발해서 중간에 으뜸조를 찾아가는 (당시 그가 즐겨 썼던) 수법을 사용했다. 또 발전부에서는 라르게토 악장의 주제가 첼로에서 확대되어 나타나고, 재현부 다음에는 첫 악장의 주제가 그리운 듯이 회상되는 등, 이 악장은 흥미진진하고도 아름다운 장면들로 가득하다.
이 매혹적인 세레나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동향의 후배 작곡가 보후슬라프 마르티누가 드보르자크에 대해서 했던 말을 떠올리게 된다. “드보르자크의 개성은 사랑스러움, 인간적임, 건강함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누군가 삶에 대해 건강하고 기쁜 태도를 표현했다면, 그것은 바로 그였다. 비록 그것이 비극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음악은 항상 기쁜 것이어야 한다. 드보르자크는 바로 그와 같은 유산을 뒤에 남긴 행복한 사람이다.”
Dvořák, Serenade for Strings in E major, Op.22
Pedro Andrade, conductor
Europäische Kammerphilharmonie Dresden
Martin Luther Kirche, Dresden
201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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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라하 체임버 오케스트라, Denon
2. 야쿠프 흐루샤(지휘)/프라하 필하모니아, Suprap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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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