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Légende No.1 "St François d'Assise: la prédication aux oiseaux"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08:46]Légende No.2 "St François de Paule: marchant sur les flots"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란체스코)
프란츠 리스트의 경력 가운데 바이마르 시기(1848~61)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회장으로부터 거의 은퇴해 있을 무렵으로, 다른 사람들의 위대한 걸작을 발굴하여 널리 알리는 의식 있는 음악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당시 리스트는 피아노 비르투오소(virtuoso, 기교와 더불어 예술성이 뛰어난 연주가)로서의 경력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마르에서 피아노를 위한 많은 작품들을 작곡하여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 가끔씩 연주회를 갖곤 했다.
이 시기에 리스트는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피아노 작곡가들이 세운 전통에 빚을 졌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벨칸토적인 노래와 현혹적인 단순함, 비르투오소로서의 현란한 테크닉을 하나로 용해시키는 동시에 자연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며 인간 내면의 감정과 고양된 정신을 탐험하고자 한 일종의 실험적인 시기였다. 그러나 이후 그에게는 위기가 찾아왔다. 1858년 코르넬리우스의 <바그다드의 이발사 초연>에 대한 항의 시위로 인해 바이마르에서의 직위를 내려놓게 되었고 바그너와의 우정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리 다구(Marie d'Agoult) 백작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다니엘이 1859년 21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고, 1862년에는 첫째 딸 블란디네가 26세로 잇달아 세상을 뜨자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마리 다구 백작 부인
설상가상으로 1860년에는 새로운 독일 악파(바그너-리스트)에 대한 항의 기사가 브람스, 요하임, 그림, 숄츠 등의 서명 아래 신문에 게재되며 그의 위상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편 1861년 50세 생일을 맞이하여 리스트는 로마의 교황으로부터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후작부인과의 정식 결혼을 승인받고자 했지만 이 또한 수포로 돌아갔다. 자식과 명예를 잃고 결혼과 행복을 포기한 채, 이에 대한 반대급부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신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종교적 열망에 빠지게 되었다.
종교의 세계에 경도된 그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 개의 장송 송가(Trois Odes Funébres)>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이후 지속적으로 종교음악을 작곡하기에 이르렀다. <헝가리 대관식 미사>, <성 엘리사베트의 전설>, <크리스투스>와 같은 종교적 오라토리오들을 완성했고, 피아노곡으로는 바흐의 장중한 칸타타를 모티브로 삼은 <울음, 고통, 괴로움, 두려움 변주곡>을 비롯하여 <아베 마리아>, <로마의 종>, <알렐루야와 아베 마리아>, <시스티나 성당>에서와 같은 소규모 피아노 작품들을 작곡했다.
이후 만년으로 갈수록 종교적인 색채를 띤 작품의 수는 점점 늘어난다. 물론 1862년에 완성한 두 개의 연주회용 연습곡인 <숲 속의 속삭임>과 <난쟁이의 춤>은 종교적인 주제는 아니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디테일과 내용 전개로 리스트의 피아노 어법이 정점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1863년 리스트는 몬테카를로에 위치한 마돈나 델 로사리오 수도회에 입회하여 그곳을 방문한 교황 비오 9세를 만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수도자로서의 삶을 갈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성심을 가장 잘 반영하는 작품으로 두 명의 성인을 주제로 한 피아노곡인 <두 개의 전설>(S.175)을 꼽을 수 있다.
리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1181-1226)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파올라의 성 프란체스코(1416-1507)를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프란체스코 수사들의 집회에 정기적으로 방문했고 1857년에는 프란체스코 제3회(속세에 있으며 수도회에 준하는 규칙에 따라 사는 사람들)에 가입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종교에 대한 그의 열망은 어린 시절부터 지속된 삶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그의 종교적 신념의 결실은 1865년에 하급 성품의 신부가 되는 것으로 맺어졌다. 신부로서 리스트의 종교적 신념은 곧잘 구설수에 올랐지만, 신앙심 깊은 작곡가가 자신의 일생을 통해 사명감을 갖고 어렵게 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사제복을 입은 모습의 리스트
두 명의 위대한 가톨릭 성인의 전설을 음악으로 표현한 피아노곡 <두 개의 전설>이 정확하게 언제 작곡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첫 곡인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çois d'Assise: La prédication aux oiseaux)’를 1863년 7월 11일 로마 근교에서 교황 비오 9세를 위해 연주했다는 것과 1860년 파리에서 출판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이라는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작곡했다고 하는 것 정도가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1863년경에 완성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이 두 개의 신비스러운 피아노 작품은 1866년에 출판되었고, 리스트의 자식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하여 훗날 바그너의 부인이 되는 둘째 딸 코지마에게 헌정되었다.
어느 정도 고지식하고 한편으로는 싫증을 낼 만한 종교적인 전설을 생동감과 역동적인 색채감이 넘치는 스코어로 탈바꿈시킨 리스트.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라는 이 위대한 자연주의적 음악 작품에 담긴 황홀한 새들의 노래를 능가할 만한 작품은 20세기에 올리비에 메시앙의 작품이 탄생하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리스트는 이 작품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새들에게 설교를 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나의 독창성의 부족으로 인해, 그리고 아마도 작품의 규모가 작은 데에서 기인하는 표현력의 제한과 피아노라는 악기의 분위기 및 음색 창출의 다양성의 결여로 인해, 나는 나 자신을 자제하는 동시에 텍스트에 담긴 훌륭한 풍요로움을 크게 감소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이 영광스러운 하인(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을 이처럼 형편없게 만든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지나칠 정도로 겸손한 서문이지만, 실제로 그의 음악은 단순함과 톤 컬러, 핑거링이 결합하여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위대한 성인의 위엄을 상징하는 종교적 엑스터시를 강렬하게 내뿜고 있다. 무엇보다도 새의 울음소리와 나뭇잎의 흔들림을 묘사하는 피아노의 표현력은 이후에 작곡한 <에스테 별장의 분수>에 등장하는 물의 움직임을 예견하는 듯하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한했을 때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광화문 미사에 앞서 이 작품을 연주했다.
은유와 상징이 강한 첫 번째 곡에 비해 두 번째 곡인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çois de Paule marchant sur les flots)’는 훨씬 화려하고 드라마적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파올라의 성 프란체스코가 메시나 해협을 건너는 나룻배에 승선이 거부되었을 때 뱃사공이 “당신이 정말로 성인이라면 물 위로 걸어가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파올라의 성 프란체스코는 자신의 겉옷을 물 위에 펼친 뒤 그 일부를 돛으로 올려 세웠고 지팡이로 이를 고정시켜 반대편 물가로 안전하게 건너갔다는 내용이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물 위를 걸어가는 파올라의 성 프란체스코
도도한 강물을 상징하는 화음과 진행으로 시작하여 점차 파올라의 성 프란체스코의 기적을 드라마틱하고 강렬하게 증폭시켜 나가다가 성스러운 고양감으로 결말을 짓는 이 곡은 <노다메 칸타빌레> 파리 편에 등장하는 한 리사이틀에서 서주부가 잠깐 등장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이 작품들이 원래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고안되었다는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발견되어 편집자의 오케스트레이션을 거친 뒤 1982년 베를린에서 오케스트라 버전이 초연되기도 했다.
Gerd Albrecht/Berlin Radio SO - Liszt, Deux Légendes, S.175 (오케스트라 버전)
Gerd Albrecht, conductor
Berlin Radio Symphony Orchestra
Jesus-Christus-Kirche, Bern-Dahlem
1982.10.19
추천음반
1. 빌헬름 켐프, DG
2. 니콜라이 데미덴코, Hyperion
3. 알프레드 브렌델, Philips
4. 프랑수아-르네 뒤샤블, EMI
5. 게르하르트 오피츠, RCA
글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 강좌 등 클래식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