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1. Doctor Gradus ad Parnassum(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수스 박사) - (2:16) 2. Jimbo's Lullaby(짐보의 자장가) - (6:16) 3. Serenade for the Doll(인형을 위한 세레나데) - (8:51) 4. The Snow is Dancing(눈이 춤춘다) - (11:32) 5. The Little Shepherd(어린 양치기) - (13:42) 6. Golliwog's Cakewalk(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딸에게 음악적 상상력을 불어넣기 위해 작곡
피아노를 보다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드뷔시는 1905년 10월 30일에 태어난 자신의 딸인 슈슈(Chou-Chou)를 위한 피아노곡을 작곡했다. 그리하여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를 1906년에 먼저 작곡한 뒤 그 반응을 지켜보았고, 사랑하는 딸에게 음악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뒤이어 다섯 곡을 작곡하여 모음곡 형식인 <어린이 차지>를 완성했다. 1908년에 뒤랑 출판사에서 출판된 이 곡의 초연은 그 해 12월 18일 파리에서 해롤드 바우어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물론 자신의 딸인 슈슈에게 헌정되었다.
사랑스럽고 회화적이며 동화적인 이 작품은 연주 테크닉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프로페셔널 연주가는 물론이려니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및 일반 애호가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출판 당시 각 장면의 제목을 영어로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작곡가가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질 것임을, 혹은 세계의 모든 어린이를 위한 작품임을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이 곡은 커다란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에 상응하여 1911년에는 드뷔시의 친구인 앙드레 카플레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하여 초연, 출판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19세기로부터 유래한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음악의 전통에 의거한 듯 보이기도 한다. 멘델스존의 <어린이를 위한 소품>이나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나 <어린이를 위한 앨범>, 비제의 피아노 연탄곡인 <어린이의 놀이>, 무소륵스키의 <어린이의 방>, 차이콥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등등 19세기에는 중산층에 피아노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됨에 따라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소품들이 많이 작곡되며 독립적인 카테고리를 세워 나갔다. 이 가운데 드뷔시의 <어린이 차지>는 다른 어린이용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작곡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어린이의 유희적이거나 교육적인 측면보다는 드뷔시 특유의 명상적이고 이미지적이며 현대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상상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어린이 차지>의 여섯 곡은 프로그램에 의해 서로 연결시킬 수도 있다. 아이가 실내와 실외를 오가며 재미있게 노는 동선을 따라 관찰자의 1인칭적 시선이 차례로 옮겨가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또한 제목에 제시된 ‘Corner’란 단어가 의미하듯, 이 <어린이 차지>는 어린이의 행동과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어린이가 속해 있는 영역과 공간에 대한 전체의 인상을 옮긴 만큼 음악의 메시지가 직설적이라기보다는 은유적이다. 그러한 만큼 이 작품에 담긴 작곡가의 독창적인 정서와 고유의 음향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고도의 연주력과 남다른 감수성이 필요하다.
19세기 유럽의 장난감 가게 모습.
1곡: 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수스 박사
첫 곡은 클레멘티의 교본을 희화적으로 모방한 ‘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수스 박사’(Doctor Grandus ad Parnassum)이다. 이 작품은 전부 온음계로 빠른 발걸음을 연상케 하는 음표들의 행진과 환상적인 멜로디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단조롭고 지겨운 클레멘티 연습곡에 대한 어린이다운 반발을 풍자한 것이기도 하다.
2곡: 짐보의 자장가
첫 곡에 이어서 어린이가 방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묘사한 두 개의 작품이 등장한다. 두 번째 곡은 ‘짐보의 자장가’(Jimbo’s Lulaby). 짐보는 슈슈가 가지고 놀던 코끼리 인형으로 둔중하지만 섬세한 음향이 나지막하게 깔린다.
3곡: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
세 번째 곡은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Serenade for the Doll)로 5음계의 주제가 무곡적인 리듬감을 통해 불연속적인 진행으로 펼쳐진다. 인형과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4곡: 눈이 춤춘다
이제 아이의 무대는 실외로 옮겨진다. 네 번째 곡인 ‘눈이 춤춘다’(The Snow is Dancing)는 오스티나토(ostinato)로 구성된 장면으로 페달링을 통한 자욱한 음향이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는 야외의 풍경을 묘사한다. 아이의 장난스러운 모습은 오른손 멜로디와 스타카토 연타를 통해 간간이 등장한다.
5곡: 어린 양치기
다섯 번째 곡은 '어린 양치기(The Little Shepherd)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나 플루트를 위한 <시링크스>를 상기시키는 전원풍의 작품이다. 최소한의 음표로 아이가 속해 있는 자연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음악으로 환원시킨 이 장면에는 드뷔시의 음악적 기법이 고도로 응축되어 있다.
6곡: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마지막 여섯 번째 곡은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Golliwogg's Cakewalk)로, 드뷔시가 처음으로 재즈적인 이디엄(idiom)을 사용한 작품이다. 흑인 어릿광대의 그로테스크한 발걸음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케이크워크란 미국 남부 흑인들로부터 비롯되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래그타임(ragtime)의 일종으로 으쓱거리는 걸음걸이가 특징이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모티브를 의도적으로 희화화하여 인용한 부분이 중간에 등장하기도 한다.
Debussy, Children's Corner
Bruno Canino, piano
La Sapienza – Università di Roma
1996
추천음반
1. 발터 기제킹(EMI)
2. 삼송 프랑수아(EMI)
3.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DG)
4. 넬손 프레이레(DECCA)
5. 파스칼 로제(Onyx)
글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왔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