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No.1 Nuages(구름) - 07:54No.2 Fêtes(축제) - 14:13No.3 Sirènes(세이렌). ‘3개의 야상곡’은 ‘드뷔시의 인상주의는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작품입니다. 몬트리올 교향악단의 여성합창단이 부르는 제3곡 ‘세이렌’을 듣노라니 마치 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율리시즈)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_라라와복래
보통 ‘야상곡’(녹턴, Nocturne)이라고 하면 쇼팽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와 연관된 다른 작곡가들의 피아노곡들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드뷔시는 자신의 야상곡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이런 면을 다분히 의식한 듯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여기서 ‘야상곡’이라는 제목은 포괄적인, 보다 특정하자면 장식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이 제목은 야상곡의 통상적인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암시하는 모든 다양한 인상들과 빛의 특수한 효과를 의미한다.”
드뷔시가 ‘관현악을 위한 3개의 야상곡’을 작곡한 것은 그의 나이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1897년에서 1899년 사이였다. 하지만 그 기원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는데, 드뷔시가 야상곡 풍의 음악을 처음 시도한 것은 1892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때 썼다는 <황혼녘의 세 풍경>이라는 작품의 악보는 분실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후에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3장으로 구성된 야상곡’을 쓰고 있다고 밝히면서, 그것을 ‘회화에서의 회색처럼 하나의 색채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조합에 대한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드뷔시의 야상곡>으로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그 실험적 작품을 변형,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인상주의 관현악의 표본, 섬세함의 극치
이 야상곡은 시기적으로 유명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1894)과 <바다>(1905)의 중간에 위치한다. 이른바 ‘인상주의 음악’으로 일컬어지는 드뷔시의 독자적인 작풍이 차츰 심화되어 가던 무렵의 작품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드뷔시 음악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작품을 이루는 세 곡에 대별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즉, 첫 곡인 ‘구름’에서는 몽롱한 느낌과 잡히거나 만져지지 않는 성질, 정체와 흐름이 교묘히 뒤섞인 유동성과 끊임없이 변해가는 비고정성이 두드러지고, 중간 곡인 ‘축제’에서는 현란한 색채의 향연과 복잡하게 뒤얽히며 약진하는 리듬의 전개가 부각되며, 마지막 곡인 ‘세이렌’에서는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독특한 탐미와 동경의 세계가 펼쳐진다. 다시 말해서, 마치 ‘드뷔시의 인상주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듯한, 거의 표본과도 같은 작품인 것이다.
아울러 이 작품은 드뷔시 고유의 섬세한 관현악 기법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서 드뷔시는 침묵과 그것에 가까운 소리의 차이까지도 구별해서 활용하여 음의 강약과 색채의 오묘한 조화를 이끌어냈다. 나아가 사람의 목소리까지 하나의 악기로 취급하여 관현악의 표현력을 극적으로 확장했다. 비록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나 <바다>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그 둘 못지않게 중요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제1곡: 구름 Nuages
드뷔시는 이 곡이 나타내는 이미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구름’은 하늘의 변함없는 모습과 구름들의 느릿하고 엄숙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구름들은 흰색이 가미된 회색조로 희미해져 간다.
일견 단조롭고 정체돼 있는 듯하면서도 꾸준하고 차분히 변화해 나가는 이 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첫 부분은 두 가지 요소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 첫째는 곡이 시작되면 바로 들을 수 있는 목관악기들의 앙상블이고, 둘째는 드뷔시가 센 강의 뱃고동 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던 잉글리시 호른의 짤막한 후렴구이다. 첫째 요소는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는 잿빛 구름을 연상시키는 배경음악 같은 것으로 이내 현악부로 대체되고, 둘째 요소는 마치 시공을 초월한 듯한 고독감을 환기시킨다. 중간부로 들어가면 플루트와 하프가 서정적인 독주를 꺼내 놓고, 그것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독주로 이어지며 정감 어린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앞서 나온 음악들이 단편적으로 부각된 다음 조용히 마무리된다.
제2곡: 축제 Fêtes
‘축제’는 우리에게 갑자기 빛이 번쩍이는 대기의 진동과 춤추는 리듬을 선사한다. 거기에는 하나의 눈부시고 환상적인 환영인 행렬의 에피소드 또한 있는데, 그것은 축제의 장을 통과하고 거기에 합류한다. 하지만 배경은 저항하듯 그대로 남아 있다. 축제는 음악의 혼합과 우주의 리듬에 참가한 빛나는 먼지와 함께한다.
앞곡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화려하고 떠들썩하며 활기찬 곡이다. 화사한 색채를 뿜어내며 빠르게 움직이는 현악 사이로 목관이 강하고 집요한 선율을 곡 전체에 걸쳐 연주한다. 금관의 팡파르는 불꽃놀이를 연상시키며, 조잘대는 목관은 축제의 소란스러움을 암시하는 듯하다. 절정으로 치닫던 음악은 팀파니의 리듬이 등장하면 돌연 행진곡 풍으로 바뀐다. 그것이 앞에 나온 음악들과 합류하면서 한층 화려하게 발전해 나가고 마침내 강렬한 폭발에 이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축제의 행렬이 멀어져 가듯 점차 사라져간다.
야상곡 제2번에서는 화려한 축제의 광경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제3곡: 세이렌 Sirènes
세이렌은 바다와 그 무수한 리듬들을 묘사한다. 달빛 어린 은빛 파도들 사이에서 웃으며 지나가는 세이렌들의 신비로운 노래가 들려온다.
이 신비롭고 환상적인 곡은 앞 곡의 말미에 등장한 흘러내리는 듯한 아포지아투라(앞꾸밈음)를 주요 모티브로 하여 진행된다. 이 꾸밈음은 호른에서 흘러나와 8명의 소프라노와 8명의 메조소프라노로 이루어진 여성 합창으로 번져 나간 후 꾸준히 되풀이된다. 여기서 드뷔시는 여성합창이 가사 없이 ‘아-’ 하는 모음으로만 노래하도록 하여(보칼리제)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로 다루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법을 통해서 사뭇 관능적인 이미지를 빚어냈다. 참고로,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으로, 신비로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인도하는 존재들이다. ▶바다의 요정 세이렌들. 그녀들은 마성으로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홀리고는 잡아먹는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들의 마성을 듣고도 살아난 유일한 인간이다. 경보기를 일컫는 영어 사이렌은 그녀들의 이름에서 나왔다.
한편 복잡하고 섬세하게 짜인 관현악은 바다의 이미지를 암시한다. 물결 위에 어른거리는 달빛, 때로는 잔잔히 물결치고 때로는 거칠게 요동치는 파도, 그리고 어딘가로 향해가는 배의 모습 등이 떠오르는 듯하다. 아울러 여기서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수법은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서의 그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 이 작품은 1900년 12월 9일 파리에서 열린 라무뢰 관현악단의 연주회에서 ‘구름’과 ‘축제’가 먼저 초연되었고, 전곡의 초연은 그 이듬해 10월 27일 같은 악단과 여성합창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901년의 초연은 성공을 거두었는데, 당시 폴 뒤카스(유명한 <마법사의 제자>의 작곡가)는 이 곡을 미국의 화가 휘슬러가 그린 ‘야상곡’에 비견하면서 “그윽하고 쓰라린 시적 감수성이 가득하다”라고 평가했다. 또 공연에 참석했던 한 평론가는 드뷔시에 대해서 “이 시대가 낳은 가장 독창적인 작곡가 중 한 명”이며 “세련되면서도 분명한 취향을 지녔으며, 화음과 음색의 배합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라고 평가했다. 그야말로 드뷔시의 재능과 그 음악의 속성을 적절히 짚어낸 비평이었다 하겠다.
Debussy, Trois Nocturnes
Mikko Franck, conductor
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Auditorium de la Maison de Radio France
2017.09.15
추천음반
이 곡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색과 섬세하고 정련된 앙상블을 지닌 오케스트라와 그것을 적절히 제어하면서 충분한 상상력을 발휘할 줄 아는 지휘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음반의 경우에는 가급적 음질이 좋아야 한다. 다음은 이러한 요건들을 두루 충족시키는 음반들이다.
1. 샤를 뒤투아/몬트리올(Decca)
2. 미셸 플라송/툴루즈(EMI)
3.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콘세르트헤보우(Philips)
4. 클라우디오 아바도/베를린(DG)
글 황장원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 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