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이성복, '이별 1'

라라와복래 2018. 7. 22. 14:31

이별 1

이성복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새가 울고 꽃이 피었겠습니까

당신의 슬픔은 이별의 거울입니다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면 당신은 나를 들여다봅니다

내가 당신인지 당신이 나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별의 거울 속에 우리는 서로를 바꾸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그리고 내게는 당신이 남습니다

당신이 슬퍼하시기에 이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던들 우리가 하나 되었겠습니까

시를 말하다

이성복은 시인들이 사랑하는 시인이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의 충격은 억압적 시대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언어는 한국 시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파괴적이고 고통스럽고 아름다웠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선언만큼 한 시대의 병든 내부를 날카롭게 드러내주는 명제는 없었다. 이 시집이 한국의 젊은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시집에 속한다는 것은 당연할 터이다. 하지만 이성복은 여기서 또 한 번의 진화를 이룬다. 그는 치욕의 세계를 감싸 안는 모성적인 비전과 연애시의 현대적인 감각과 드라마를 만들어내었다.

‘이별 1’은 그의 세 번째 시집 <그 여름의 끝>(1990)에 수록된 시다. 이 시집은 한국 현대시에서 사랑을 노래한 가장 매혹적인 시집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이 시집 속에서 이성복은 만해와 소월의 화법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과는 다른 사랑과 이별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이별’은 사랑을 둘러싼 필연적인 사건이다. 모든 사랑의 시는 그 이별을 설명하려는 어쩌면 불가능한 노력을 담고 있다. 이 시에서 ‘나’의 이별과 ‘당신’의 이별은 서로를 마주 보는 거울과 같다. ‘당신’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이별을 알게 된다. 내가 당신을 통해 이별을 깨닫는 것은 새가 울고 꽃이 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시간에 속한다. 서로를 들여다보는 당신과 나 사이에서 더 이상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문학과지성사, 1990)

그러니까, 그래서, 새로운 이별의 논리가 탄생한다. “당신이 나를 떠나면 떠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입니다.” 당신의 떠남은 바로 나의 떠남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거울 속에서 결국 남는 것은 나의 절대적 2인칭, 당신이다. 이별은 역설적으로 당신의 현존을 실감하게 한다. 당신이 내게 이별을 말한다면, 그건 당신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이다. 이별은 놀랍게도 당신과 내가 하나였다는 것, 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가장 극적인 사건이다. 당신의 이별 속에 내 이별이 들어 있다면, 당신의 부재는 나의 부재라고 해도 될까?

글: 이광호(문학평론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출처 : 네이버캐스트> 문학광장> 한국의 시> 한국의 시 일반 2009.05.25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7305&cid=58824&categoryId=58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