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Richard Strauss, Vier Letzte Lieder)

라라와복래 2018. 8. 27. 11:51

Richard Strauss, Vier Letzte Lieder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Richard Strauss

1864-1949

Renée Fleming, soprano

Claudio Abbado, conductor

Lucerne Festival Orchestra

Lucerne Festival 2004 Gala Concert

Lucerne Culture and Congress Center

2004.08.13


Renée Fleming - Richard Strauss, Vier Letzte Lieder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본질적인 기질은 극장과 오케스트라로부터 기인한 대담한 음색 표현과 연극적인 제스처를 이끌어내는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차르트에 비견할 수 있는 신동 출신인 그는 여섯 살 무렵부터 이후 78년 동안 독일 낭만주의 전통에 의거한 리트를 200여 곡이나 작곡했다. 그러나 예술가곡 장르에 헌신했던 그의 진정한 위대한 업적은 베를리오즈, 말러의 경우처럼 오케스트라를 수반한 성악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오케스트라 반주의 가곡을 15개밖에 작곡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두는 피아노 반주 리트와 마찬가지로 풍부하고 복합적이며 오페라적인 성격을 똑같이 머금고 있다.

아이헨도르프와 헤세의 시에 감명 받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슈트라우스는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모든 재산은 빼앗겼고 명예는 더렵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향은 잿더미가 되었고 사랑하는 조국은 커다란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84세의 슈트라우스는 지금까지 승리에 넘친 삶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회생할 수 있는 희망은 고사하고 질병과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오페라 <카프리치오>에서는 언어와 음악의 관계에 대해 패러독스한 결말을 내렸고, <메타모르포젠>에서는 감성과 이성의 무기력함에 대한 우울한 결말을 내렸다. 더 이상 그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은 듯이 보였다. 당시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슈트라우스는 영국에서 지휘자 토머스 비첨이 선의를 갖고 다방면으로 구원 활동을 펼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듯 과거를 곱씹으며 현재만을 향유할 수 있었다.

1946년 슈트라우스는 19세기 독일의 위대한 시인 아이헨도르프가 쓴 시 ‘저녁놀에’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슈만과 볼프가 즐겨 차용했던 아이헨도르프의 시로부터 그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마지막 의미 있는 작품을 작곡하도록 아들 프란츠 슈트라우스에게 설득 당한 작곡가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악기인 인간의 목소리를 위한 작품을 써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다. 그는 1946년부터 조금씩 스케치를 해나가기 시작했고, 여기에 그가 젊은 날에 작곡했던 교향시 <죽음과 변용>이라는 제목을 악보 옆에 메모해두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여성 목소리를 위한 이 ‘저녁놀에’는 1948년 5월 6일 완성되었다.

그다음으로 슈트라우스는 20세기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세 개의 시에 곡을 붙이고자 했다. 이들 작품 또한 아름다운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음향을 위한 리트로서, 작곡가는 ‘저녁놀에’처럼 고요한 마음의 평정과 부드러움, 과거에 대한 회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죽음을 향한 묵묵한 준비를 혼합해 놓은 분위기를 의도했다. ‘저녁놀에’를 완성한 뒤 몇 주 뒤 슈트라우스는 밝은 수채화와 같은 ‘봄’을 작곡하기 시작하여 그해 7월 18일 완성했다. 탄력을 받은 슈트라우스는 8월 4일에는 ‘잠들기 전에’를 완성했고 곧이어 9월 20일에는 ‘9월’도 완성했다.

안타깝게도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이 네 개의 오케스트라-리트가 연주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소프라노 키르스텐 플라그슈타트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이 작품의 초연을 1950년 5월 22일 런던 앨버트 홀에서 가졌는데, 이미 8개월 전 85세의 슈트라우스는 가르미슈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했던 아내 파울리네가 타계한 지 9일 뒤에 이루어진 초연이었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라는 제목은 슈트라우스의 출판업자가 작곡가 사후 붙인 이름이다. 제목에 의해 일종의 형식적 순환과 내용적 연관을 갖는 연가곡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언제 어떻게 자신의 연극에 막을 내려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슈트라우스는 이 작품을 통해 부유한 삶과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헌신, 영광스러운 명예, 더 나아가 휴고 볼프와 말러, 피츠너로 이어졌던 위대한 독일 낭만주의 리트 전통에 마지막 고별인사를 던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준비, 아름다움에 대한 고별

매끄러운 멜로디와 광채가 나는 하모니, 회화적인 화려함, 세련된 오케스트레이션 등등이 대범한 필치와 세밀한 세부 묘사, 간결하면서도 고양감 높은 시적 감흥을 통해 피어오르는 네 개의 노래는 아름다움으로 장식된 죽음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애도의 성격을 가진 것들은 무의미한 것일 뿐이다.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 자신이 선언한 죽음에 대한 준비이자 아름다움에 대한 고별이다. 양식적으로 그는 젊은 날에 보여주었던 그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충격적인 효과를 모두 배제하고 가장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요소들만을 선택했다. 그 결과 오케스트라 음색에 대한 전지전능함과 멜로디 라인의 간결함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전례 없는 음악적 흡인력을 띠게 되었다.

각 구절마다 조금씩 변화하며 점진적인 약동감과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미세한 변화는 ‘봄’과 ‘저녁놀에’에서 언어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죽음의 그림자 사이에서 동요하는 화자의 심상을 표현한다. ‘잠들기 전에’에서 비상하는 솔로 바이올린과 점점 상승하는 소프라노 및 오케스트라의 상승 스케일이 환기시키는 코발트 빛 상상력의 세계는 이미 화자가 현실 세계를 떠나고 있음을 예견하는 훌륭한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름이 그 큰 눈을 감는 ‘9월’에서 호른을 비롯한 목관악기들을 통해 표현되는 그 아쉬운 미소는 죽음을 앞둔 슈트라우스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제스처로서 그 덧없는 쓸쓸함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다.

추천음반

1. 이 작품의 초연 실황인 키르스텐 플라그슈타트와 푸르트벵글러의 1950년 실황 녹음(Testament)은 음질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작곡가의 죽음을 향한 아름다움과 독일 낭만주의의 아련한 분위기에 대한 이해로 인해 다른 연주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2. 녹음과 연주의 완성도에서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와 조지 셸의 연주(EMI)에 대적할 만한 음반은 거의 없다. 그녀의 정확한 딕션과 정교한 표현력 덕분에 헤세와 아이헨도르프의 시어는 작곡가의 머릿속에서 방금 나온 듯 선명하기 때문이다.

3. 한편 리자 델라 카제와 카를 뵘의 연주(DECCA)는 두 명의 슈트라우스 전문가가 만나 아름답고 영롱한 시적 황홀경을 선사하는 명반으로 유명하고, 군들라 야노비츠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연주(DG) 또한 탐미적인 음향과 고조된 고양감이 색다른 빛을 발하는 명연으로 명성이 높다.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왔으며, 공연, 방송, 저널 활동, 음반 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음악의 선율>클래식 명곡 명연주 2011.09.26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2582&cid=59000&categoryId=59000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보충 해설과 가사]

다음 각곡에 대한 해설과 번역은 <레코드 포럼> 1997년 2월호에서 전재한 것이며, 독일어 가사를 구글링하여 보충해 넣었습니다. 아버지가 마오리족인 뉴질랜드의 세계적 성악가이며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데임(Dame) 작위를 받은 키리 테 카나와(1944~ )가 부른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각곡에 붙였습니다._라라와복래

Dame Kiri Te Kanawa, soprano

Sir Georg Solti, conductor

BBC Philharmonic Orchestra

Free Trade Hall, Manchester

1990.06.17

제1곡: 봄 Frühling

헤르만 헤세의 시 ‘봄’(Früehling)은 헤세가 낭만주의 전통에 충실했던 초기의 작품으로 서정성이 짙은 시이다. 슈트라우스의 곡도 서정이 듬뿍 흐르고 있으며 봄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산한 가을 분위기가 풍기기도 한다.

In dämmrigen Grüften 희미한 무덤 속에서

Träumte ich lang. 나는 오랫동안 꿈을 꾸었다.

Von deinen Bäumen und blauen Lüften, 너의 나무와 푸른 대기와

Von deinem Duft und Vogelsang. 너의 향기와 새의 노래에 대해서.

Nun liegst du erschlossen 이제 너는 빛과

In Gleiß und Zier, 장식 속에서

Von Licht übergossen 내 앞에 기적처럼

wie ein Wunder vor mir. 빛을 받고 누워 있다.

Du kennst mich wieder, 너는 다시 나를 보고

Du lockst mich zart, 부드럽게 나를 유혹한다.

Es zittert durch all meine Glieder 너의 행복한 모습에

Deine selige Gegenwart! 나의 몸이 떨고 있다!

제2곡: 9월 September

헤르만 헤세의 시 ‘구월’(September). 체코슬로바키아의 소프라노 마리아 예리츠 부부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봄’이 알레그레토인 데 비해 ‘9월’은 안단테로 좋은 대조를 보인다. 관현악법도 ‘봄’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데, 특히 하프와 관악기의 활용이 인상적이다.

Der Garten trauert, 정원이 슬퍼한다.

Kühl sinkt in die Blumen der Regen. 차가운 빗방울이 꽃잎 속으로 스며든다.

Der Sommer schauert 다가올 그 마지막을 향해

Still seinem Ende entgegen. 여름은 조용히 몸부림친다.

Golden tropft Blatt um Blatt 황금빛 물방울이 잎사귀를 향해

Nieder vom hohen Akazienbaum. 높은 아카시아 나무 위에서 떨어진다.

Sommer lächelt erstaunt und matt 여름은 놀라고 피곤한 표정으로

In den sterbenden Gartentraum. 정원의 죽어가는 꿈을 향해 미소 짓는다.

Lange noch bei den Rosen 오랜 동안 장미꽃 옆에서 떠나지 못한 채

Bleibt er stehn, sehnt sich nach Ruh. 여름은 휴식을 그리워한다.

Langsam tut er die großen 여름은 천천히 내리감는다

Die müdgeword'nen Augen zu. 그 지친 두 눈을.

제3곡: 잠들기 전에 Beim Schlafengehen

헤세는 이 시 ‘잠들기 전에’(Beim Schlafgehen)를 1차 세계대전 때 썼다. 이 무렵 헤세는 아내의 정신착란 증세에 크게 충격을 받아 암담한 기분에 싸이게 되고, 결국 자신도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다. 따라서 이 시는 피폐해진 헤세의 정신세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 헤세는 여기서 낮의 현실로부터 신비한 밤의 세계로 도피하려 한다. 죽음을 예감한 슈트라우스에게 이 시가 주는 감동은 남달랐을 것이다.

Nun der Tag mich müd' gemacht, 지금 한낮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

Soll mein sehnliches Verlangen 내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은

Freundlich die gestirnte Nacht 별이 빛나는 밤을 환영하는 것이다.

Wie ein müdes Kind empfangen. 피곤해진 아이처럼.

Hände, laßt von allem Tun, 손은, 모든 너의 행동을 멈추고,

Stirn, vergiß du alles Denken. 이마는 모든 사고를 중지한다.

Alle meine Sinne nun 왜냐하면 내 모든 감각이

Wollen sich in Schlummer senken. 이제 막 잠들었으니까.

Und die Seele, unbewacht 그리고 내 영혼은 마음껏

Will in freien Flügen schweben, 자유롭게 떠돌리라

Um im Zauberkreis der Nacht 밤의 마법의 성역에서 살기 위하여

Tief und tausendfach zu leben. 깊고 천배나 오래도록.

제4곡: 저녁놀에 Im Abendrot

이 곡은 앞 세 곡과 달리 아이헨도르프의 시 ‘저녁놀에’(Im Abendrot)를 사용한 것이다. 슈트라우스의 말년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분위기의 곡이어서 듣는 사람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네 곡 가운데 연주시간도 가장 길다.

Wir sind durch Not und Freude 고달플 때나 기쁠 때나

Gegangen Hand in Hand;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지나왔다;

Vom Wandern ruhen wir 이제 우리는 우리의 여행을 그만두고

Nun überm stillen Land. 조용한 곳에서 쉴 수 있다.

Rings sich die Täler neigen, 계곡 주위는 온통 경사지고

Es dunkelt schon die Luft.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Zwei Lerchen nur noch steigen 두 마리 종달새만이 날아올라

Nachträumend in den Duft. 향기로운 밤공기 속에서 꿈을 꾼다.

Tritt her, und laß sie schwirren, 좀 더 가까이 오라, 그리고 그들이 날갯짓하도록 놓아두라

Bald ist es Schlafenszeit. 곧 잠잘 시간이 될 테니까.

Daß wir uns nicht verirren 우리는 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In dieser Einsamkeit. 이 외로운 시간에도.

O weiter, stiller Friede! 오, 한없이 고요한 안식이

So tief im Abendrot. 석양에 그토록 깊이 숨어 있을 줄이야!

Wie sind wir wandermüde -- 우리는 여행 중에 얼마나 피곤해졌을까

Ist dies etwa der Tod? -- 이것이 어쩌면 죽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