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슈베르트 교향곡 5번 B플랫장조(Schubert, Symphony No.5 in B flat major, D.485)

라라와복래 2018. 9. 2. 21:30

Schubert, Symphony No.5 in B flat major, D.485

슈베르트 교향곡 5번 B플랫장조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Dima Slobodeniouk, conductor

Orquesta Sinfónica de Galicia

Palacio de la Ópera de A Coruña

2017.12.16


Dima Slobodeniouk/Galicia SO - Schubert, Symphony No.5 in F flat major, D.485


베토벤의 유령이 유럽 곳곳에 떠돌았다. 1827년에 베토벤이 사망한 이후 유럽의 거의 모든 교향곡 작곡가들은 베토벤의 환영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빈에 음악동우회가 설립되고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늘어나긴 했지만 빈의 음악회는 여전히 베토벤 교향곡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이따끔씩 하이든의 오라토리오나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연주되고 멘델스존과 베버 등의 서곡이 프로그램에 끼어들기는 했으나 아주 가끔 있는 일이었다. 관현악 분야에서 베토벤의 ‘불멸의 아홉 교향곡’은 교향곡의 모범이자 절대 진리였다. 19세기 음악가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만 갔다. 어떤 교향곡을 내놓든 그것은 필연적으로 베토벤 교향곡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대 청중들과 비평가들을 사로잡고 있는 베토벤을 무슨 수로 능가할 수 있단 말인가! 베토벤의 교향곡은 이후 100여 년간 19세기 교향곡 작곡가들을 환영처럼 뒤쫓았다.

1824년 3월, 슈베르트는 친구 레오폴트 쿠펠비저에게 보낸 편지에 “대교향곡의 길을 개척할 목적이 아니라면 기악곡을 작곡하지 않겠다”라고 쓰며 자신의 야망을 밝혔다. 사실 그는 훨씬 전부터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20세가 될 때까지만 해도 아주 손쉽게 여섯 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던 슈베르트는 1818년 무렵부터 갑자기 관현악 작곡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욕심은 하늘을 찌르지만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슈베르트는 몇 차례 교향곡 작곡을 시도했으나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1822년 가을에 b단조로 된 위대한 교향곡을 썼으나 미완성인 채로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바로 슈베르트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한 ‘미완성 교향곡’이다. ◀화가 레오폴트 쿠펠비저의 동생인 대본작가 요제프 쿠펠비저가 1821년에 그린 드로잉이다.

오늘날 공연장에서는 슈베르트가 ‘대교향곡의 길’을 천명한 이후 작곡한 교향곡 8번 b단조 ‘미완성’(D.*759)과 9번 C장조 ‘그레이트’(D.944)가 자주 연주된다. 그러나 음악적인 완성도로 보았을 때 초기 작품인 교향곡 5번 역시 결코 후기 작품들에 뒤지지 않는다. 소규모 편성이기는 하지만 관현악을 다루는 슈베르트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명곡으로, ‘미완성’ 이전에 작곡된 슈베르트의 교향곡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슈베르트는 이 유쾌한 교향곡을 통해 그가 낭만주의자이기 전에 고전주의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간결하고 명확한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은 하이든의 형식미를 보여주고, 발랗하고 경쾌한 주제 선율은 모차르트의 선율미를 느끼게 한다. 슈베르트가 교향곡 5번을 작곡한 것은 1816년의 일로 그의 나이 19세였다. 10대 시절 작품이니만큼 젊은이다운 열정과 감성이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한편, 클라리넷과 트럼펫이 없는 소편성인 탓인지 실내악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1악장: 알레그로

1악장 제1주제는 가요 ‘서울의 찬가’ 중 “종이 울리네”와 닮아서 더욱 친숙한데, 이 주제 선율은 전형적인 모차르트 스타일의 경쾌한 악상을 보여준다. 이 악장에서 슈베르트는 마치 선배 작곡가들이 남긴 고전적 유산을 철저히 보존하려는 듯 소나타 형식을 매우 엄격하게 지키며 재현부에서 제시부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재현부의 제1주제가 으뜸조인 B플랫장조가 아닌 E플랫장조로 나타나는 파격도 보인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

우아하고 유려한 멜로디로 시작하는 2악장에는 하이든풍의 간결함과 명쾌함이 나타나지만 절묘한 전조 수법은 슈베르트만의 것이다.

3악장: 미뉴에트. 알레그로 몰토

3악장 미뉴에트는 전형적인 고전주의 미뉴에트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의 미뉴에트와 무척 닮았다. 진지한 어조의 단조 선율로 된 미뉴에트에 비해 좀 더 부드럽고 편안한 트리오 부분의 선율은 미뉴에트 도입부에서 제시된 질문에 대한 해답과 같은 인상을 준다.

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4악장 또한 가볍고 명랑한 성격의 고전적 악상을 지니고 있으며, 교향곡이지만 마치 현악 4중주와 같이 날렵하다. 하지만 이 음악이 전해주는 감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D 슈베르트의 작품번호는 D로 표기하고 도이치 번호라고 읽습니다. 슈베르트의 권위자인 음악학자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Erich Deutsch, 1883-1967)의 이름을 딴 것이죠. 도이치는 총 998개의 슈베르트 작품에 연대기순으로 작품번호를 매겼습니다.

*소나타 ‘소나타’라는 용어는 피아노 독주용(피아노 소나타) 작품과,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등 하나의 독주악기와 피아노(바이올린 소나타 등)가 연주하는 작품에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나타’는 악식상의 용어로 쓰인 것이며 특정 구조를 가진 음악적 형식을 뜻합니다.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 형식이죠. 보통 교향곡, 실내악 등의 1악장은 대부분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1악장 형식’ 또는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이라고 불려지듯이 1악장은 원칙적으로 소나타 형식으로 씌어집니다. 그러나 느린 악장이나 마지막 악장에도 곧잘 사용됩니다.

Schubert, Symphony No.5 in B flat major, D.485

Charles Mackerras, conductor

Orchestra of the Age of Enlightenment

Studio 1, Abbey Road, London

1990.11

최은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서양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에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10여 년간 연주자로 활동했으며 기획홍보팀장으로 공연 기획과 해설을 맡았다. 현재 예술의전당 음악아카데미 강사와 연합뉴스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월간 『객석』을 비롯한 음악 전문지와 일간지 등에 음악 칼럼과 공연 리뷰를 기고하고 각종 음악회에서 음악 해설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 『클래식 튠』(공저),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52가지』가 있다.

출처 : 최은규, 『교향곡 - 듣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2017, 도서출판 마티) pp.193~198에서 발췌.

주(*)는 라라와복래가 별도로 붙인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