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We Shall Overcome - 조안 바에즈

라라와복래 2018. 9. 5. 11:54

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하리라

Joan Baez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 승리하리라 그날에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오오, 마음 깊이 나는 믿네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 승리하리라 그날에

We shall be alright, We shall be alright, 우리 무사하리라, 우리 무사하리라,

We shall be alright someday. 우리 무사하리라 그날에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오오, 마음 깊이 나는 믿네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 승리하리라 그날에

We shall live in peace, We shall live in peace, 우리 평화롭게 살리라, 우리 평화롭게 살리라

We shall live in peace someday. 우리 평화롭게 살리라 그날에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오오, 마음 깊이 나는 믿네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 승리하리라 그날에

We are not afraid, We are not afraid, 우리 두려움이 없네, 우리 두려움이 없네

We are not afraid today. 우리 두려움이 없네 오늘은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오오, 마음 깊이 나는 믿네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 승리하리라 그날에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 승리하리라 그날에

Oh, deep in my heart, (I know that) I do believe. 오오, 마음 깊이 나는 믿네

We shall overcome someday. 우리 승리하리라 그날에

*We Shall Overcome의 가사는 부르는 장소, 목적 등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더군요. 또 가수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오리지널 가사의 두 번째 연은 “We'll walk hand in hand, We'll walk hand in hand,/ We'll walk hand in hand someday./ Oh, deep in my heart, I do believe./ We shall overcome someday.”이며, 세 번째 연 “We shall live in peace.~”도 위 공연에서 새롭게 부른 것입니다.


조안 바에즈가 역사적인 ‘워싱턴 대행진’이 진행된 1963년 8월 28일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We Shall Overcome을 부르고 있는 모습. 이날 미국 전역에서 25만 명의 시민들이 대행진에 참가하였다.

We Shall Overcome은 1800년대 후반부터 불리기 시작한 흑인들의 가스펠송을 피트 시거 등이 채록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된 노래이다. 1946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에 위치한 미국 담배회사의 노동자 파업 시위 때, 루실 시몬스라는 조합원이 노래 가사 중 ‘I’를 ‘We’로 바꿔 불렀다. 이를 피트 시거가 채록하고 악보화하여 1948년에 펴낸 민요집에 ‘We shall overcome’이란 제목으로 수록했다. 이후 노동 현장에서 대표적인 노동가요로 불리게 된다. 한편 조안 바에즈 버전의 노래가 빌보드 미국과 영국 차트에 100위 안에 기록하면서 대중가요로도 정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 초반 개신교의 학생운동을 통해 전해졌는데, 공식적으로는 1972년 김민기가 서울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한글 가사를 붙여 처음 불렀다고 한다. 1999년에 미국 NPR(National Public Radio)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미국의 노래 100곡을 선정하며 We Shall Overcome을 제일 앞자리에 올려놓았다. 무엇보다 이 노래는 196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 철폐를 이끌어낸 프리덤 라이드(Freedom Ride) 운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프리돔 라이드 운동은 1960년 봄,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즈버러 버스터미널의 한 식당에서 흑인 학생 네 명이 식당 좌석의 흑백 분리 철폐를 주방하면서 불붙기 시작했다. 이듬해 5월 미연방대법원이 버스 좌석의 흑백 분리를 불법으로 선포하자 이 운동은 무서운 기세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프리덤 라이드 운동은 1963년 8월 노예해방 100주년을 기념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주도의 ‘시민 권리 워싱턴 대행진(Civil Rights March on Washington)’에서 그 절정을 맞는다. 1963년 8월 28일 오전, 워싱턴 미국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는 25만 명의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미국 전역에서 도보로, 버스로, 기차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오전 11시 15분,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을 향한 군중들의 마지막 대행진이 시작되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랠프 번치,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 등도 모습을 나타냈다. 링컨 기념관까지의 대행진이 끝나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기념관 앞에 마련된 연단에 올랐다. 킹 목사는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을 시작했다. 킹 목사의 연설이 끝나자 대행진을 이끌어 온 가수들이 등장해 집회 참석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밥 딜런, 조안 바에즈, 피터 폴 앤 메리, 해리 벨라폰테, 마할리아 잭슨 등 쟁쟁한 가수들이 그들이었다. 밥 딜런이 ‘Only a Pawn in Their Game(초라한 보병)’을, 피터 폴 앤 메리가 ‘Blowing in the Wind(바람만이 아는 대답)’를 부르고, 이윽고 조안 바에즈가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자 25만 명의 군중들이 한목소리로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25만 명의 합창, 바로 We Shall Overcome이었다. 당시 이 광경을 취재한 「뉴욕타임즈」는 We Shall Overcome을, 프랑스 대혁명을 거쳐 프랑스의 국가가 된 라마르세예즈에 비유해, “미국의 라마르세예즈”라고 보도하기까지 했다.


1963년 8월 28일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시민들의 환호에 답례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이날 킹 목사의 명연설 ‘I have a dream’은 역사에 기록되었다.

워싱턴 대행진과 이듬해인 1964년 소위 ‘자유의 이름’으로 불리는 흑인들의 투표권 등록으로 프리덤 라이드 운동은 그 결실을 보게 된다. 케네디의 뒤를 이은 존슨 대통령이 흑인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민권법에 서명한 것이다. 그렇게도 목놓아 부르던 We Shall Overcome은 현실이 되었다. 피트 시거는 이 노래에 대해 “미국 전역의 인종차별을 청소하듯 지나간 노래”라고 말했다. 워싱턴 대행진의 주제가이자 피날레였던 We Shall Overcome은 그 후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저항가요의 대명사가 되어 오늘날에도 널리 불리고 있다.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