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세계의 명시/ 존 키츠 '가을에게'

라라와복래 2018. 9. 5. 10:12

세계의 명시/ 존 키츠

가을에게

1

안개와 열매가 무르익는 계절 Season of mists and mellow fruitfulness,

성숙시키는 태양과 내밀한 친구여, Close bosom-friend of the maturing sun;

태양과 공모하여 초가의 처마를 휘감은 Conspiring with him how to load and bless

포도 덩굴에 열매를 매달아 축복하고, With fruit the vines that round the thatch-eves run;

이끼 낀 오두막 나무들을 사과로 휘게 해 To bend with apples the moss'd cottage-trees,

열매마다 속속들이 익게 하고, And fill all fruit with ripeness to the core;

조롱박을 부풀리고 개암 껍질 속 To swell the gourd, and plump the hazel shells

달콤한 속살을 여물게 하고, 꿀벌들을 위해 With a sweet kernel; to set budding more,

늦은 꽃들의 망울을 다시 피워 내서는 And still more, later flowers for the bees,

더운 날들이 끝나지 않을 거라 믿는 꿀벌들로 Until they think warm days will never cease,

여름이 끈적한 벌집을 흘러넘치게 했기에. For Summer has o’er-brimm'd their clammy cells.

2

누군들 수확물 사이에서 그대를 보지 못했으랴? Who hath not seen thee oft amid thy store?

이따금 찾아 나서면 누구든 발견할 수 있으리 Sometimes whoever seeks abroad may find

그대는 곡물 창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Thee sitting careless on a granary floor,

키질하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나부끼고 있거나, Thy hair soft-lifted by the winnowing wind;

낫질을 하다 말고 양귀비 향기에 취해 졸린 듯 Or on a half-reap'd furrow sound asleep,

다음 이랑의 곡식이며 뒤엉킨 꽃들을 남겨 둔 채 Drowsed with the fume of poppies, while thy hook

반쯤 베어 낸 밭두렁에 깊이 잠들어 있고, Spares the next swath and all its twined flowers:

그리고 이따금 그대는 이삭 줍는 사람처럼 And sometimes like a gleaner thou dost keep

짐을 인 머리를 가누며 도랑 건너편을 향해 가거나, Steady thy laden head across a brook;

사과 압축기 곁에서 참을성 있게 Or by a cyder-press, with patient look,

마지막 방울까지 몇 시간을 지켜보고 있으니. Thou watchest the last oozings hours by hours.

3

봄의 노래는 어디에 있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Where are the songs of Spring? Ay, where are they?

봄노래는 생각지 말라, 그대 또한 그대의 노래가 있으니 Think not of them, thou hast thy music too,-

물결구름이 부드럽게 사라지는 낮을 꽃피워 While barred clouds bloom the soft-dying day,

그루터기만 남은 들판을 장밋빛으로 물들일 때, And touch the stubble-plains with rosy hue;

불었다 잦아지는 하늬바람에 위로 들렸다 Then in a wailful choir the small gnats mourn

낮게 처지는, 강가의 버드나무 사이에서 Among the river sallows, borne aloft

작은 각다귀들 서글픈 합창으로 읊조리고, Or sinking as the light wind lives or dies;

다 자란 양 떼들 언덕배기에서 요란스레 울어대고 And full-grown lambs loud bleat from hilly bourn;

귀뚜라미들 울타리에서 노래하고, 지금 부드러운 고음으로 Hedge-crickets sing; and now with treble soft

울새가 채마밭에서 휘파람을 불고, The red-breast whistles from a garden croft;

모여든 제비들은 하늘에서 지저귀고 있느니. And gathering swallows twitter in the skies.

시를 말하다

정끝별 (시인)

가을은 어떻게 오는가? 무슨 짓을 하는가? 무르익게 한다! 여름을 무르익게 하고 세상을 무르익게 하고 우리를 무르익게 한다. 세상은 포도와 사과와 조롱박과 개암과 벌꿀이 가득한 만찬 준비로 분주하다. 여름과 연장된 초가을 오전의 주렁주렁한, 꽉 찬, 향긋한, 부푼, 여문, 달콤한, 끈적끈적한 미각과 후각들이 한입 그득하다. 무르익어 가는 식물적 상상력은 ‘젖가슴을 가진 여성’처럼 풍요롭다. 만지고 베어 물고 빨고 싶게 한다. 가을을, 태양의 ‘bosom-friend’ 그러니까 ‘가슴 친구’ 혹은 ‘가슴이 통하는 친구’라 표현한 까닭일 것이다. 키츠는 심장을 가리켜 “정신이나 지식이 아이덴티티를 빨아먹는 젖꼭지”라 했는데, 그에게 시인이란 심장이 발달된 그러니까 가슴을 가진 샤먼과도 같았다. 무르익은 가을은 이렇듯, 우리들 심장 안쪽에 있는 여성적 가슴의 존재를 환기시켜 주곤 한다.

가을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모습인가? 바람이나 향기에, 공기나 허공에! 그 어디든 스며들고 그 어디든 현존한다. 가을을 거둬들이는 사람들을 보라. 힘껏 다 써 버린 육체에도 깃들어, 취하게 하고 졸리게 하고 나른하게 한다. 수확물들 틈에 앉아 바람을 맞는 머리카락, 양귀비 향기에 취한 듯 잠시 감긴 밭두렁의 눈꺼풀, 이삭 더미를 이고 도랑 건너편을 향하는 힘겨운 고개, 세월아 네월아 사과즙 짜는 기계를 바라보고 있는 나른한 시선 등은 상상하고 매혹되고 비워진 상태이다. 가을 한가운데, 오후 한가운데, 그리고 노동의 한가운데서 잠시 무장해제된 가을의 모습들이다. <낮잠(Noonday Rest)>이나 <이삭 줍는 사람들(The Gleaners)>과 같은 밀레의 그림들이 떠오르는.


장-프랑수아 밀레 <낮잠> 1866                                                           장-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사람들> 1857

그리고 가을은 무엇을 노래하는가? 어떻게 가는가? 강가나 언덕이나 하늘, 울타리나 채마밭에서 각다귀, 양, 귀뚜라미, 울새, 제비들이 한껏 제 노래에 취해 있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덩달아 우리들 귓바퀴도 쫑긋쫑긋 나풀나풀 자란다. 귀뚜라미나 양들에게 가을은 짝짓기의 계절이다. 각다귀들도 알을 남기고 여름을 떠나야 하고, 제비나 울새도 더 추워지기 전에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노래는, 죽음을 예감하는 쇠락의 절정에서 강렬한 사랑 혹은 삶에 대한 애착을 구가하는 소리들이다. 장밋빛 황혼이 드리운 늦가을의 저물녘이라면 더더욱! 그들이 부르는 가을 노래에는 다음 봄을 잉태하고 생명을 남기려는 의지를 담고 있기에 “들리는 가락은 감미롭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가락은/ 더욱 감미로운”(‘그리스의 유골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것이다. 키츠가 꿈꾸던 영원한 현재, 영원한 아름다움은 이렇게 탄생한다!

이 세상은 영혼을 훈련시키는 계곡이다. 키츠가 편지에 쓴 문장이다. 키츠의 ‘가을에게’를 읽노라면 가을이 우리들 영혼을 훈련시키는 또 다른 계곡임을 믿게 된다. 생생한 관능과 도취, 그 안에 깃든 휴식과 사멸의 이미지들이 감각의 홍수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행과 연의 짜임새, 유려한 압운과 리듬은 물론, 특히 성숙한 명사와 형용사가 흘러넘치는 비유와 묘사의 매력에도 주목해야 한다. 19세기 초 가을을(이 시는 1819년에 완성되었다!), 지상의 자연이 펼치는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 시는 매혹적인 가을의 홀로그램만 같다. 이 시가 키츠의 송시(Ode)들 중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시, 영어로 된 짧은 시 중 완벽에 가까운 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말한 시로 평가되는 요인들일 것이다.

키츠의 탁월한 업적 중 하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부단한 천착이었다.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감각이라고 믿었던 키츠는, 모든 생멸하는 것들 안에 역동적으로 내재하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시로 구현하고자 했다. “‘아름다움은 진리이고,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그대가 아는 모든 것이며, 또 알아야 할 모든 것이다”(‘그리스의 유골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라는 시구절이 이를 대변한다. 아름다움은 무상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고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진리라는 것, 이것이 키츠가 꿈꾸었던 아름다움의 역설 혹은 불가능성이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수작을 쓰기 시작해, 1821년 결핵으로 25년 4개월의 짧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겨우 4년 동안 쓴 시들로 키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이 되었고 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를 완성했다.

키츠는 한 편지에서 “나무에서 나뭇잎들이 돋아나듯이 그렇게 자연적으로 우러나오지 않는 시라면 아예 나오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시인은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도 했다. 좋은 시는 여성의 가슴을 닮은 심장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고, 좋은 시인이란 ‘어떤 개성이나 고정된 성격’으로부터 해방되어 세상에 자연스럽게 흘러드는 여성적 그릇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머물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로마에 있는 키츠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 있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자가 누워 있노라(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 자연적으로 우러나고, 자연스럽게 흘러들 듯 살다 간 키츠와 키츠의 시들을 떠올려 보는 가을이다. 그의 시 제목처럼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흘러간 시간을 빛나게 했던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존 키츠의 묘비

존 키츠(John Keats, 1795.10.31-1821.2.23) 1795년 런던에서 마차 대여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었다. 클라크 학교 재학 중 학교 도서를 모조리 탐독했고, 특히 영국 시와 그리스-로마 신화에 심취했다. 졸업 후에는 생계를 위해 남의 집 서생(書生)이 되기도 하고, 병원에도 근무하면서 독서와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의학을 배워 의사 시험에 합격해 의사 면허증을 받기도 했다. 1817년 첫 시집 『시집(詩集)』을 출판했고, 이듬해 ‘엔디미온’을 발표했다. 1819년 패니 브라운과 사랑에 빠져 약혼했으며, 그와 더불어 시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중세 취미가 넘친 ‘성 아그네스의 전야’, ‘성 마르코 전야’, 민요풍의 ‘무정한 미인’ 등의 역작을 비롯하여 주옥같은 송시(頌詩)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리스 유골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나이팅게일에게’, ‘가을에게’ 등 모두 영국의 사화집(詞華集)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이다. 이후 결핵이 심해져 이탈리아로 요양을 떠났고, 1821년 25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쳤다.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문학 광장>세계의 명시 20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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