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정재찬의 ‘시, 몽상과 묵상’: 총, 꽃, 시 - 시는 변방의 언어이다

라라와복래 2018. 9. 12. 10:43

정재찬의 ‘시, 몽상과 묵상’

총, 꽃, 시

시는 변방의 언어이다

포화 속에 꽃과 시(詩)가 된 아이들

2015년 9월 2일, 터키 보드룸 해변, 차가운 모래톱에 얼굴을 묻은 채 숨진 세 살배기 소년 아일란 쿠르디. 내전에 휩싸인 고향 시리아의 코바니를 떠나 그리스의 코스 섬으로 향하던 중 그만 난민선이 전복되면서 엄마, 그리고 두 살 터울의 형과 함께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아이. 이 아이를 받아줄 곳이 이 세상에 한 군데도 없어서 정녕 천국뿐이었단 말인가. 쿠르디를 찍은 사진기자 닐류페르 데미르는 말한다. 사진을 찍는 것이 “쿠르디의 침묵하는 몸이 지르는 비명”을 표현할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이 비극을 알리는 것이 최선이었다.”라고.

2015년 9월 2일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 시리아를 떠나 그리스 코스 섬으로 향하던 중 난민선이 전복되면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출처 : 닐류페르 데미르, 연합뉴스

그리하여 이 사진은 시(詩)가 되었다. 순진무구한 꼬마, 그를 둘러싼 평화와 고요가 흐르는 기표 너머로 끔찍하고 잔인한 세계, 그 속의 전쟁과 폭력과 무관심의 기의가 부각되는 시. 이토록 강력한 아이러니와 대조를 경험한 적이 있던가. 그렇게 쿠르디는 시가 되어 우리를 울리고 우레가 되어 세상을 고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한 장의 사진, 그 침묵의 비명, 터키 해안가에서 밀려온 동정과 긍휼의 물결이 그토록 강고하게 닫혀 있던 유럽의 국경을, 아니 온 인류의 굳어버린 마음속 빗장을 열게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이는 잠시뿐. 두 달이 갓 지난 11월 13일의 금요일, 파리는 피에 젖었다. 테러이고 학살이었다. 130명이 희생됐다. 악의 검은 그림자가 다시 세계를 뒤덮었다. 며칠 후, 프랑스 매체 <르프티주르날(Le Petit Journal)>이 올린 동영상이 페이스북에 떴다. 비통과 절망에 빠진 파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꽃다발과 촛불이 가득 놓인 광장에서 베트남 출신 이민자인 아빠 앙겔 르와 아들 브랑동의 대화를 찍은 영상이었다. 순진하게만 보이는 어린 녀석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테러를 피해 이사 갈 걱정까지 한다. 그러자 아버지가 따스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한다.

“아니야, 걱정할 필요 없어. 집은 옮기지 않아도 된단다. 프랑스가 우리 집이야.”

“그렇지만 나쁜 사람들이 있잖아요? 아빠.”

“나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단다.”

“나쁜 사람들은 총이 있고 우리를 쏠 수도 있어요. 나쁘고 총이 있으니까요, 아빠.”

“봐봐. 그들은 총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겐 꽃이 있잖니?”

“하지만 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그들은 우리들을, 우리들을...”

“사람들이 놓아둔 저 꽃들이 보이지? 총에 맞서 싸우기 위한 거란다.”

“꽃이 우리를 보호해준다고요?”

“그렇고말고!”

“촛불도요?”

“그래, 그건 우리를 떠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한 거야.”

꽃이 우리를 지켜주고 촛불이 떠나간 이들을 잊지 않게 해준다는 말에 꼬마 브랑동은 비로소 안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런 브랑동의 모습에 자꾸만 쿠르디가 겹쳐 드는 걸 막을 길이 없다. 쿠르디가 서정이라면 브랑동은 서사다. 서사의 플롯처럼 브랑동은 인과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과관계에는 엄청난 비약이 존재한다. 꽃이 총을 이기고, 그래서 사람들이 꽃을 바치고, 꽃을 바치는 사람이 저렇게 많으니, 우리는 안전하게 보호될 거라는 비약. 어린아이라서 순진한 탓일까, 어린아이라서 현자인 탓일까, 브랑동은 이 비약을 가뿐히 넘어선다.

그래서 묻노니, 이 야만의 시대에 꽃이 과연 총을 이길 것인가, 그리하여 브랑동의 믿음대로 쿠르디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을 이제 다시 시에게 묻는다.

전쟁 속에서 가까스로 지켜낸 ‘꽃씨’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壕)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셔요.

숫제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젠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두

할머니는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받으시리라.

— 박남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

평양 출신의 시인 박남수. 이 작품은 1951년 월남한 그가 피난민의 생활을 갈매기의 생태에 비겨 그려낸 <갈매기 소묘>(1958)라는 시집에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이 시인도 난민이었던 셈. 마침 이 시의 화자도 어린이다. 헌데, 이 어린 손주가 보건대 전쟁터의 할머니는 노여우시기만 하다. 진작 죽지 못해 못 볼 꼴 다 보고 산다고. 저간에 숨겨진 사연이야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웃들이 학살당하는 걸 봤을지도, 당신의 아들이 먼저 저 세상에 갔을지도, 전쟁 통에 세상이 바뀌며 위아래도 없고 경우도 사라져 억울한 해코지를 당했는지도 모른다.

이렇든 저렇든 할머니는 분에 겨워 말씀조차 줄어드셨고, 이제 당신의 목숨은 상관조차 않으신다. 방공호에 아예 들어오시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분이 하찮은 채송화, 그것도 ‘어쩌다’ 핀 채송화, 자잘하기 이를 데 없어 거두기 힘들고 짜증만 잔뜩 나는 그 채송화 꽃씨를 손수 받으시는 것이다. 채송화라? 혹시 동요 ‘꽃밭에서’를 기억하는가.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 어효선 작사·권길상 작곡, ‘꽃밭에서’

밝고 맑게 즐겨 불렀던 노래지만 사실 이 노래는 ‘스승의 은혜’로 유명한 권길상 선생이 1953년 피난 시절에 작곡한 것이다. 아, 그 난리 통에 아빠는 왜 꽃밭을 만들었을꼬. 놀랄 만하지 않은가. 그 전쟁 통에 저 할머니는 채송화 씨를 거두고 이 아빠는 그걸 심었단 말이다. 게다가 그걸 박남수는 시로 남기고 권길상은 노래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아빠와 할머니가 키웠던 채송화가 ‘나’ 아니었을까, 채송화 꽃씨는 내 자식이 아닐까. 그 덕에 지금 우리가 꽃밭에서 시와 노래를 즐기며 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는 0157584다

“나는 유효사거리권 내에 있다. 나는 0157584다.” - 전봉건, ‘0157584’에서. 출처 : 셔터스톡

전쟁의 뒷전에서 시인과 가객들이 벌이는 한가하고 낭만적인 자기위안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면, 시인 전봉건을 만나보라. 그는 해방 이듬해 청천강에서 배를 타고 황해에 숨어 내려 인천항으로 월남했고, 전쟁 중 군에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중공군 총공격 때 부상을 입기까지 했다. 종군시인이 아니라 참전시인인 셈. 그는 전쟁의 현장을 생중계하듯 시를 썼다.

100야드 나는 포복하였다.

90야드.

나는 사정(射程)을

80야드로

압축시켰다.

65야드.

나는 60야드로

압축시켰다.

나는 저격병의 정조준 위에 놓였다.

나는 마지막 수류탄을 던졌다.

(중략)

비둘기의 똥냄새 나는 중동부전선.

나는 유효사거리권 내에 있다.

나는 0157584다.

— 전봉건, ‘0157584’에서

중동부전선. 내가 살려면 적을 죽여야 하고, 적 또한 사정은 매일반이다. 내가 살려면 적의 유효사거리권을 벗어나야 하고, 적을 죽이려면 유효사거리권 내로 들어가야 한다. 목숨을 건 긴장감 속에서 벌이는 한판의 게임, 그것이 바로 전투다. 이 게임에서 그는 군번 ‘0157584’ 같은 한갓 기호나 도구로 존재할 뿐이다.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캐릭터 ‘0157584’가 죽으면 다른 캐릭터 ‘0157585’로 대체하면 그뿐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분의 다른 캐릭터도 없고, 게임에서처럼 우리 목숨이 다시 살아나지도 않는다. 진짜 살아 있는 이 소중한 목숨들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싸움이기에 이토록 쉽게 소멸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이 전장 터의 시인은 센티멘털리즘보다 오히려 지적인 긴장과 유희, 위트와 아이러니로 허무를 드러낼 뿐이다.

5時나는壕속에있다水筒手榴彈鐵帽縫帶壓迫縫帶그리고M1나는壕속에서틀림없이滿足하고있다는것을다시생각해보려고한다BISCUITS를씹는다5時30分또피리다9時方向12時方向나는BISCUITS를다먹어버린다6時밝아가는敵稜線으로Z機가쉽게急降한다나자지는않은것과BISCUITS를남겨두지않은것을後悔한다6時20分大隊OP에서聯絡兵이왔다포켓속에뜯지않은BISCUITS봉지가들어있다6時23分스콥으로壕가장자리에흙을더쌓아올린다가득히담겨지며뜯지않은BISCUITS봉지같다

— 전봉건, ‘BISCUITS’

참호 속의 휴식 시간, 하지만 의식에는 쉼이 없다. 그걸 나타내려는 듯 시인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수통, 수류탄, 철모, 압박붕대, 그리고 M1 소총으로 무장을 한 채, 참호 속의 안전과 휴식에 그는 만족하고 있다. 아니,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멎을 만하면 또 중공군의 피리 소리가 들려오고 제트기가 날아다닌다. 그러는 사이, 비스킷을 다 먹어버리고, 다 먹은 걸 후회하고, 그러다 또 새 비스킷이 오고, 인생은 종잇장처럼 가볍다. 그래도 죽지 않으려고 참호를 더 높이 보수해 보지만, 참호 모습이 마치 뜯지 않은 비스킷 봉지 같다는 건 언젠간 뜯겨 다 먹힐 운명이라는 암시다. 생존과 죽음의 경계에서 전봉건은 이처럼 허무와 마주한 채 서로를 직시하고 있었다.

무수한 군화 자국에도 녹색은 녹색을 키우고

 그런데 오히려 전쟁의 허무를 이기지 못한 것은 그의 형 전봉래였다. 전봉래는 봉건이 제대하기 전에 1·4후퇴 때 이미 부산으로 내려가 지내고 있었다. 그는 일본 도쿄의 아테네프랑세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건너와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으로, 동생 봉건을 시의 길로 이끈 감수성 예민한 위인이다. 그런 그가 전쟁 통의 피난지 부산에서 문득 생을 마친다. 음독자살이었다.


나는 페노바르비탈을 먹었다. 30초가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다. 2분 3분이 지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 10분이 지났다. 눈시울이 무거워진다. 찬란한 이 세기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소. 그러나 다만 정확하고 청백히 살기 위하여 미소로써 죽음을 맞으리라. 바흐의 음악이 흐르고 있소. 그리운 사람들에게 2월 16일.

피난민으로 들끓던 부산, 예술인들은 하릴없이 다방에 모여 앉아 할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문인들이 가장 자주 드나들던 남포동 구둣방 골목길의 ‘스타다방’. 그 한구석에 눌러앉아 전봉래는 치사량의 신경안정제를 삼킨 채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서 죽음의 순간과 과정을 저렇게 유서처럼 남기고 갔다. 자살의 이유는 간명했다. 찬란한 20세기를, “다만 정확하고 청백하게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 비틀거리며 그는 다방을 나섰다. 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그 다음 날 광복동 국제시장의 뒤안길.

형 봉래의 소식을 동생 봉건은 알지 못했다. 살아서 만나지 못한 형의 그림자를 뒤늦게 봉건이 좇는다.

그 뒤 나는 군에 입대, 부상을 하고 통영서 제대를 하자 곧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행방을 알 수 없는 가족들을 수소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내가 부산에서 들은 첫 소식은 불란서문학을 전공하던 형님(전봉래)의 자살이었다. 장소는 남포동의 지하 다방 스타였다. 형님이 치사량의 페노바르비탈을 먹고 ‘바하’를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는 바로 그 자리에 잠시 앉았다가 돌아나가는데 카운터에 쌓인 몇 권의 레코드북이 눈에 띄었다. 맨 윗것을 들춰보니 ‘바하’의 BRANDENBURG였다. 카운터의 아가씨는 레코드의 주인이 단골손님이라고 일러주었다. 알고 보니 그 단골은 김종삼이었다. 형님은 벗이 아끼는 판(바하)을 틀어놓고서 저승으로 간 것이었다. — 전봉건, ‘피난살이 시름 잊게 한 김종삼’ (‘동아일보’, 1984.03.21.)에서

바흐 덕에 절망 속에서도 살고, 바흐 덕에 이 세상을 저버리고 눈을 감을 수도 있다니, 대관절 이 형제에게 음악이란 무엇이었던가. 전쟁 이전, 서울에는 명동의 ‘오아시스’, ‘돌체’, 서대문의 ‘자연장’이 이미 유명한 클래식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봉래·전봉건 형제가 ‘자연장’의 단골손님이라면, ‘돌체’는 김종삼 시인의 단골집이었다. 전쟁이라고 달라질 일이 없었다. 김종삼은 ‘스타다방’의 단골이었고, 형 봉래는 김종삼의 레코드를 통해 바흐를 따라갔고, 그 후 봉건은 대구의 음악다방 ‘르네상스’에서 기식을 하게 된다. 전봉건은 담배 한 갑과 세 끼 식사를 일급으로 삼아 디제이를 하면서 밤에는 홀의 의자를 붙여놓고 그 위에서 잠을 청했다.

그 정도였으니, 1957년 펴낸 전봉길, 김종삼, 김광림 3인이 펴낸 시집이 바로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였다. 전쟁터에서도 음악은 흐르고, 음악이 있는 한 희망이 있고, 그리하여 시를 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시에서 감상은 허용되지 않는다. 슬픔의 과장만이 아니라 희망을 과장하는 것 역시 피해야 할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거짓이다. 가장된 희망보다 정직한 절망을 그는 추구했다. 그러기에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는 이렇게 썼다.

전쟁의 마당에도 꽃은 핀다. 그런데 어떤 시인은 말하기를, 그 꽃 색깔은 불에 탄 살 색깔이나 땅을 적신 핏빛이라고 한다. 나는 그러한 입장과 많이 다르다. 전쟁의 마당에 피는 꽃의 색깔도 내게는 그것들이 생래로 지닌 분홍빛이거나 노란빛이거나 흰빛이거나 그러하다. 내 경우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직함이요, 그것이 진정한 시인 것이다. — 전봉건, ‘서문’, <새들에게>(1983) 에서

그는 꽃을 노래했다. 핏빛 꽃이 아니라 분홍빛, 노란빛, 흰빛 꽃을 노래했다. 그 꽃은 머릿속 관념이 아니라 그의 눈으로 직접 본 사실이었다. 그는 이념으로 현실을 채색하지 않았다. 정직했다. 그가 겪었던 전쟁의 마당에도 꽃은 피었다. 그것도 분홍색, 노란색, 흰색 꽃이 피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시 ‘장미의 의미’에서는 이렇게 썼다. “무수한 자국 / 무수한 군화 자국을 헤치며 흙은 / 녹색을 새 수목과 꽃과 새들의 녹색을 키우고 / 그 가장자리엔 흰 구름이 비꼈다”라고. 무수한 군화 자국에도 녹색은 녹색을 키우고 있었다고, 참전시인 전봉건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날아다녀야 포탄을 영원히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이리하여 우리는 다시 전쟁 속 시와 음악을 거쳐 꽃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그래, 전쟁 통에도 꽃은 피었고, 그래도 사람들은 꽃을 키웠다. 채송화 꽃밭은 환상이나 낭만이 아닌 실재하는 세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든 상상이든 그게 무슨 대수이랴. 중요한 것은 군화 자국 옆에 꽃들을 피우고, 총자루에 꽃을 매며, 총구에 꽃을 꽂는 일 아니겠는가.

지현곤, <Ji Hyun Gon>(2008). 왼손 하나만으로 한 점 한 점 찍어낸 이 그림에서는 전장의 폐허 속 심장보다 더 붉게 빛나는 꽃 한 송이가 인상적이다.

총은 총을 이기지 못한다. 총이 이기면 사람이 죽는다. 더 큰 총은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그래서 거친 남성, 어른의 폭력, 주류의 횡포에 맞서는 것은 늘 여성, 아이, 장애다. 아픈 자만이 아픔을 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고치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꽃이 총을 이긴다. 그리고 그런 꽃을 시는 닮고자 한다. 시란 지배 언어의 자기도취를 일깨우는 변방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쿠르디와 브랑동에게 꽃이 우리를 지켜 주리라 차마 확언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쿠르디와 브랑동 너희들이 우리의 꽃이요, 우리의 시와 노래라고는 확실히 말할 수 있겠다. 야만의 시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꽃과 시와 노래 없이 우리가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곤 했던 음유시인 밥 딜런(Bob Dylan), 그의 노래를 들으며 다시 또 견뎌볼밖에. 이 어두운 시대를.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가야

Before you call him a man 사람이 사람답다는 말을 들을까요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다녀야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흰 비둘기는 백사장에서 잠들 수 있을까요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balls fly 얼마나 많이 날아다녀야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포탄을 영원히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The answer, my friend 친구여, 그 대답은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 속에 있어요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고 있답니다

How many years can a mountain exist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Before it is washed to the sea 산들이 씻겨 내려 바다로 흘러갈까요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내야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사람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언제까지 애써 고개를 돌려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n’t see 사람들은 못 본 척할 수가 있을까요

The answer, my friend 친구여, 그 대답은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 속에 있어요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고 있답니다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얼마나 많이 올려다봐야

Before he can see the sky 사람들은 하늘을 볼 수가 있을까요

How many years must one man have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야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다른 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너무 많은 이가 죽었음을 알게 될까요

The answer, my friend 친구여, 그 대답은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 속에 있어요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 속에 흩날리고 있답니다

Blowing in the Wind - Bob Dylan

정재찬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메마른 가슴에 시심을 되돌려준 시 에세이스트. 다양한 장르의 문화 콘텐츠를 넘나드는 특별한 시 읽기로 일상에서 시를 ‘시답게 향유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한국문학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 《현대시의 이념과 논리》, 《문학교육의 사회학을 위하여》, 《문학교육의 현상과 인식》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기획물 전체>인문과 과학의 만남>시, 몽상과 묵상 2016.03.25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917&contents_id=11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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