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책

엘가 ‘사랑의 인사’(Elgar, Salut d'Amour, Op.12)

라라와복래 2018. 10. 6. 17:20

 

Elgar, Salut d'Amour, Op.12
엘가 ‘사랑의 인사’

Edward Elgar

1857-1934

Sarah Chang(장영주), violin

Andrew von Oeyen, piano

KBS 1TV Classic Odyssey

2012.04.25


Sarah Chang/Andrew von Oeyen - Elgar, Salut d'Amour, Op.12


1888년, 30세의 엘가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9년 연상인 약혼자 캐롤라인 앨리스는 자신의 제자였는데 서로 사랑에 빠졌던 것입니다. 엘가는 가난한 평민이고 앨리스는 귀족의 딸이라 앨리스 집안의 반대가 맹렬했지만 두 연인은 이를 이겨냈습니다. 그해 여름, 앨리스는 ‘Love’s Grace(사랑의 기품)’라는 시를 써서 엘가에게 보냈습니다. 엘가는 앨리스의 시에 곡을 붙여 소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엘가가 악보에 붙인 곡의 제목은 독일어 ‘Liebesgruss(사랑의 인사)’였습니다. 표지에는 약혼녀인 앨리스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쓰여 있었습니다. 앨리스를 향한 엘가의 사랑과 감사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죠.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1889년 5월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오늘날 젊은 연인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사랑받는 <사랑의 인사(Salut d'amour)>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습니다. 원래 피아노곡으로 작곡되었으나 이듬해에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바이올린, 첼로 등을 위해서도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습니다. 3분 정도 길이의 짧은 곡이지만 매우 아름답고 달콤해서 신랑 신부를 축복하는 음악으로 자주 연주되고 있고 음악회의 앙코르곡으로도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독일어 제목 ‘Liebesgruss’가 왜 프랑스어 제목 ‘Salut d'amour’으로 바뀌었을까요.


엘가가 처음 곡의 제목을 독일어로 쓴 것은 앨리스가 독일어에 유창해서였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독일어 제목 그대로 악보를 출판했습니다. 그러나 악보가 잘 팔리지 않자 출판사는 작곡가의 동의를 얻어서 제목을 프랑스어로 바꾸었습니다. 바뀐 제목의 힘이었을까요. 똑같은 ‘사랑의 인사’라는 뜻이지만 독일어 제목일 때는 미미했던 반응이 폭발적으로 바뀌었고, 영국 외에도 많은 나라에서 앞 다투어 출판을 희망했습니다. 당시의 프랑스어 선호 풍조가 가져온 행운이었다는 말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즐겨 듣게 된 이유는 곡의 멜로디가 매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데 있다 할 것입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엘가에게로 왔던 앨리스는 헌신적으로 남편을 내조했습니다. 그녀는 엘가의 음악에 영감을 주는 뮤즈였을 뿐 아니라 작곡에 대한 비평가이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귀족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던 평민 출신의 작곡가 엘가, 그래서 심하게 내향적이거나 때로는 대인기피증까지 보였던 남편을 돌봐주고 격려한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엘가는 생계를 위한 바이올린 연주자에서 벗어나 조금씩 작곡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늦었지만 42세 때인 1899년에 런던에서 <수수께끼 변주곡>을 초연하고 이어 1901년 런던 프롬나드 콘서트에서 <위풍당당 행진곡>을 초연했습니다. <위풍당당 행진곡>은 엘가에게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큰 명성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랫동안 무명 음악가로 생활하다 마흔 살이 넘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지요. 그 이후로 엘가는 승승장구하여 기사 작위를 받고 영광의 시간을 누리게 됩니다. 이 모두 아내 앨리스의 내조 덕분이었으며 엘가 또한 아내 앨리스를 무척 사랑하고 깊이 존경했습니다.


 

엘가와 앨리스 부부, 1892


앨리스가 아니었다면 헨리 퍼셀 이후 200년 만에 영국 음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엘가가 존재했을까요? 아마 어려웠을 것입니다. 엘가는 1919년에 훗날 재클린 뒤프레의 연주로 유명해진 <첼로 협주곡 e단조>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곡은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별을 예감한 음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첼로 협주곡 e단조>가 초연되고 다섯 달 뒤인 1920년 봄에 아내 캐롤린 앨리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엘가의 나이 63세 때입니다. 엘가는 그 후 14년을 더 살다가 1934년에 77세를 일기로 타계합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엘가는 런던 근교 햄스테드에 있던 대저택을 팔고 고향으로 내려가 거의 은둔하다시피 합니다. 몇 곡의 소품을 제외하곤 작곡 제의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의 음악의 원천이자 영감인 존재가 사라진 탓이었을 겁니다.


Elgar, Salut d'Amour, Op.12

Ion Marin,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Berliner Waldbühne

2010


정리 : 라라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