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마음의 집' - 김희경 글ㅣ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라라와복래 2011. 3. 2. 14:30
 

 

 

마음의 집

김희경 글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ㅣ창비 2010-01-30 펴냄

 

마음의 집에는 문이 있어.

어떤 사람은 문울 아주 조금만 열고

어떤 사람은 활짝 열어 두지.

문을 아예 닫고 사는 사람도 있단다.


마음의 집에는 방도 있어.

어떤 방은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어떤 방은 좁아서 겨우 자기가 들어갈 수 있지.


마음의 집에는 창문이 두 개 있어.

한쪽에는 매일 비가 내리고

다른 쪽에는 매일 해가 쨍쨍해.


마음의 집에는 계단도 있어.

친구와 다투면 10계단

엄마한테 혼나면 100계단

더 힘든 일을 만나면 1000계단

아무리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안 보이는 계단도 있지.

 

'아동 출판계의 노벨상'인 라가치상 대상작으로 선정돼

그림책 <마음의 집>이 이탈리아 볼로냐 2011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주는 라가치상(Ragazzi Award) 논픽션 부문에서 대상작으로 뽑혔다. 1966년 제정된 라가치상은 아동 출판물에 주는 상 가운데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상으로서 '아동 출판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책 내용뿐 아니라 디자인, 편집, 장정의 수준까지 심사 대상으로 삼아 작가는 물론이고 출판사의 역량까지 평가한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책과 작가는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때문에 어린이 책을 만드는 전 세계 출판인이 탐내는 상이다.


라가치상 심사위원단은 심사평에서 "이 책은 한 편의 우아한 시다. 암시적인 구조물들은 이미지와 함께 철학적 대화를 이끌어낸다"라고 평가했다. 또 심사위원단은 "표현, 꿈, 기억, 인용 등 모든 면에서 상당히 독창적인 이 책은 '세상에 대한 시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시각은 그림에 묘사된 내부처럼 강렬하고 심오하며 그만큼 오래 생각하고 몰입할 시간을 갖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세계 아동문학계의 시선을 사로잡다

<마음의 집>은 출판사 창비가 한국의 글 작가 김희경, 폴란드 그림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와 공동으로 작업해 출간한 책이다. 철학적 메시지를 이야기하듯 쉽게 풀어 쓴 글 <마음의 집>은 작가 김희경의 미학적 시각과 어린이들과 소통했던 경험을 토대로 완성되었다. 폴란드 화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이 글을 읽고 영감을 얻어 텍스트의 철학적 메시지를 충분히 담아낸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려냈다. 이렇듯 <마음의 집>은 한국의 출판사와 작가의 기획력이 타국 작가의 마음을 움직여 소통하며 탄생한 작품이다. 글 작가가 보이지 않는 '마음'을 현실의 '집'으로 표현했다면, 그림 작가는 '마음의 '’이라는 무형의 글을 만지고 움직일 수 있는 '책 속 그림'으로 재탄생시켰다.

 

심사평

이 책은 한 편의 우아한 시다. 이탈리아 형이상회화파 화가들(조르조 데 키리코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화가들)에 의해 사랑받았던 고요함이 가득 울려 퍼진다. 탁월한 완성도로 추상적인 기하학적 형태들이 완성되었으며, 암시적인 구조물들은 이미지와 함께 철학적 대화를 이끌어낸다. 16세기 트롱프뢰유(Trompe-l'œil, 실제로 착각할 만큼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그림)는 마음 깊은 곳, 닫힌 방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표현, 꿈, 기억, 인용 등 모든 면에서 상당히 특별하고 독창적인 이 책은 '세상에 대한 시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시각은 그림에 묘사된 내부처럼 강렬하고 심오하며 또한 그만큼 오래 생각하며 몰입할 시간을 갖게 한다. 이러한 책이야말로 어린이문학의 자랑이자 명예이다. 바슐라르(Gaton Bachelard, 프랑스 철학자)가 얘기한 '꿈 꿀 권리'가 부단한 노력과 빼어난 명쾌함, 철저한 탐구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마음의 집> 내용 소개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직은 낯선 어린이들에게 '집'이라는 친숙한 공간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림책.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마음은 어떤 것일까?' '마음의 주인은 누구일까?'라는 세 가지 질문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선물한다. 집 모양이 가지각색이듯, 마음의 집도 그 주인에 따라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다. 어떤 마음의 집은 문이 꼭 닫혀 있어 아무도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마음의 집 계단은 어떤 날은 10계단이었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100계단, 1000계단이 되기도 한다. 또 마음의 집 창밖으로 하루종일 비만 내리는 날도 있다. 괴롭고 힘들어 내 마음의 집이 보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고 격려한다. "이 세상에는 다른 마음들이 아주 많고, 그 마음들이 너를 도와줄" 거라고.


다양한 질감의 종이와 천을 이용한 콜라주로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이 철학적이고 서정적인 텍스트와 조화를 이루어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이 책은 그림책에 숨은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독자의 시선을 통해 확장되는 그림의 의미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담고자 했다. 책장을 펼치고 넘길 때 일어나는 효과를 이용해 그림이 살아 움직이도록 그린 것이다. 책장을 천천히 넘기면서 그림을 보면, 할머니가 아기에게 입을 맞추고, 비둘기가 날갯짓을 하고, 따뜻한 손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야기가 끝나고 뒷장을 펼치면, 자신의 얼굴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은색 종이 위에 비치며 'MAUM'이라는 글자가 완성된다. 마치 자신의 마음 속, 마음의 집을 들여다보라는 것처럼. 이렇게 이 작품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독자의 손길과 눈길에 따라 변화하고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김희경

1977년 태어났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프리랜서 미술관 교육프로그램 기획자로 일하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관 프로젝트인 '모모뮤지엄'을 운영하고 있다. 쓴 책으로 <지도는 언제나 말을 해>, 옮긴 책으로 <렘브란트>가 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 

1960년 폴란드 토루인에서 태어나 코페르니쿠스 대학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생각> <발가락> 출간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하여 우리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한글 자모의 간결한 논리성에 매혹되어 글자그림책 작업을 하였다.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은 질감과 문양이 다른 종이와 천을 이용한 콜라주와 다양한 채색 기법을 사용하여 기발한 아이디어가 넘치며, 철학적인 사색의 깊이를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