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도 감탄한 프라도 미술관의 그림
프라도라는 이름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도도함이 있다. 이베리아 반도의 이국적인 느낌과 피레네 산맥 너머의 신비로운 분위기도 풍긴다. 화려했던 스페인 왕궁의 폐쇄성과 권위가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왕실의 미술 컬렉션을 공개하기 위해서 문을 연 때가 1819년. 이제 200년 가까운 세월을 미술관으로서 오롯이 존재해 왔다.
프라도 미술관 전경
프라도 미술관에 갈 때마다 인상파의 선구자 에두아르 마네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보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을 본 것에 불과했다고 고백했다. 마네는 프라도에서 비로소 벨라스케스가 구축한 빛의 세계를 발견한다. 그것은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놀라움 속에서 친구인 보들레르에게 편지를 써 나갔다. “스페인 여행의 피로도 벨라스케스를 보기 위해서라면 견딜 만하다”라고. 그는 벨라스케스와 고야 같은 거장의 그림을 통해 새로운 빛을 찾았다. 프라도에서 마네가 느꼈던 것과 같은 시각적 충격과 감정의 파장을 느끼고 싶다.
어느 가이드북을 뒤져보아도 마드리드에서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곳은 프라도 미술관이다. 최고의 미술관으로서 그만큼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관광지이기도 한 것이다. 유럽 여행의 핵심이 미술관을 얼마나 잘 둘러보느냐에 달려 있음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터. 마드리드 여행의 최전선에 프라도가 있다. 단체 관광객들은 두 시간 정도 코스로 프라도를 둘러보지만, 그 걸로는 감질만 날 뿐이다. 시간을 내면 낼수록 만족도가 더 커지는 공간이 프라도 미술관이다. 마드리드의 관문인 아토차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 프라도 거리(Paseo del Prado)에 늘어선 울창한 가로수가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마저 가려준다. 강렬한 햇살과 나무이파리가 만들어내는 녹음 짙은 그늘을 걸어서 프라도로 향한다.
프라도 미술관 북쪽 광장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파리의 루브르, 런던의 국립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 빈의 미술사박물관 등과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 최대의 미술관 프라도.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의 낯설음만큼이나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공간이기도 하다. 다른 미술관에 비하면 지나치게 자국 미술 중심의 컬렉션을 구축하고 있으며, 정보가 적은 탓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턱을 넘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유럽 미술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곳이 프라도이기도 하다. 게다가 프라도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다. 폐관 2시간 전부터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한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프라도와 친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무더운 여름철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지친 여행자들이 한가로이 저녁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마드리드 여행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 도시 여행의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
작년 마드리드에 일주일 가량 머무르면서 무료 개방 시간을 통해 프라도에 네 번을 다녀왔다. 그렇게 매일같이 드나들다보니 눈을 감아도 전시실이 선하게 떠오르고, 서쪽 출입구를 지키는 벨라스케스의 동상과 북쪽 출입구 너머에 우뚝 선 고야의 동상, 화려한 계단과 웅장한 열주들이 지금도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첫 날은 편하게 둘러보고, 두 번째 날에는 벨라스케스와 고야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세 번째 날에는 엘 그레코와 보쉬, 뒤러, 티치아노, 카라바조 등의 그림을 찬찬히 지켜보았다. 네 번째 날은 전체적으로 다시 둘러보면서 그간의 여행을, 산책을 정리하는 느낌으로 넓은 미술관 안을 거닐었다. 그렇게 거장들이 그림을 통해 우리와 같이 호흡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프라도 미술관 북쪽 입구에서 내려다본 고야의 동상
프라도가 자랑으로 내세우는 것은 역시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엘 그레코이다. 궁정화가이기도 했던 세 화가는 스페인 미술사를 관통하는 불멸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프라도 미술관이 왕실 컬렉션을 근간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최고의 화가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벨라스케스는 50점이 넘는 작품을 여러 개의 전시실에 나누어 걸었고, 고야 역시 100여 점의 작품으로 미술관의 남쪽 일부를 완전히 장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라도를 보지 않고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그림을 봤다고 말하는 것은 ‘마드리드에 방문하지 못한’ 마네와도 같다.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공간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걸려 있는 12번 방과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와 <1808년 5월 3일>이 걸려 있는 전시실이다. 그 뒤를 잇는 최대의 컬렉션은 엘 그레코. 두 개의 전시실에 걸쳐서 그의 그림이 펼쳐져 있다. 한때 유럽 최대의 권력자였던 카를 5세와 벨라스케스가 아니면 왕실 초상화를 그리지도 못하게 했던 펠리페 4세 등 예술 애호가 황제들에 의해 수집된 컬렉션은 스페인을 벗어나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게 했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였던 티치아노, 20세기의 디자인 개념을 무안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화가 보쉬의 컬렉션은 세계 최고 수준에 속한다.
8,000점 넘게 소장하고 있는 회화와 조각 중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작품은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며칠 동안 드나들면서 풍요로운 느낌을 가지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 프라도를 대표하는 작품 10점을 꼽으라면 어떨까. 고민하면서 맘에 드는 작품을 골라본다.
●
1.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벨라스케스, <시녀들>(Las Meninas), 1656, 318x276cm
프라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벨라스케스의 진수. 벨라스케스의 다른 모든 작품들이 <시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술관 중앙의 구중심처 같은 공간에 ‘모셔져’ 있다.
피카소는 수십 점에 걸쳐서 <시녀들>을 모사하고 변형시키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천재 피카소마저도 이처럼 몰두하게 만들었던 그림은 일찍이 없었다. 신비로운 빛과 어둠의 세계, 상징적으로 겹치는 삼차원적 공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 속의 세계로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2. 벨라스케스의 ‘바쿠스의 대관’
벨라스케스, <바쿠스의 대관>(The Feast of Bacchus), 1629, 227x165cm
<시녀들>이 벨라스케스의 절정이라면 <바쿠스의 대관>은 그를 향해 가는 초기 대표작이다. ‘주정뱅이들’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바쿠스는 올림포스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와인을 나누어주고 있다. 신화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내리면서 당대 스페인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냈다. 야외 술집과도 같은 풍경.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잊고 즐거움에 젖어 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와인 한 잔을 편하게 마시고 싶어진다. 아마도 벨라스케스의 솔직함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3. 고야의 ‘1808년 5월 3일’
고야, <1808년 5월 3일>(The Third of May 1808), 1814, 266x345cm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비극이 벌어지는 참상의 현장 바로 옆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몸이 부르르 떨려온다. 고야의 그림에는 전율이 있다. 마치 연극무대의 한 장면처럼 스포트라이트가 하얀 옷을 입은 남자를 비춘다. 그를 향해 겨누어진 총검들. 이미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에게는 선혈이 낭자하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럽다. 과연 저런 상황에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을까.
4. 고야의 ‘벌거벗은 마하’
고야, <벌거벗은 마하>(The Nude Maja), 1800, 97x190cm
고야의 그림은 극과 극이다. 그는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가면서 자기 세계를 갈구했다. 폐쇄적인 종교적 환경 때문에 스페인에서 누드화란 상상하지도 못하던 시절 고야는 대담한 누드를 그렸다. 고야의 애인이라는 설부터 누드화를 그리다가 누가 오면 얼른 감추느라고 <옷을 입은 마하>까지 짝으로 그렸다는 설까지 갖은 전설이 어려 있는 작품이다. 하나의 벽에 같은 여인이 옷을 입고, 옷을 벗고 누워 있다. 두 작품을 동시에 보고 있으면 갑자기 고야가 웃으면서 등을 세게 때릴 것 같다. 놀랐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5.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엘 그레코,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The Knight with His Hand on His Breast), 1580년경, 81x66cm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는 노천명의 ‘사슴’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목이 길고 몸도 길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그림은 온화하면서 따스하지만 또한 슬퍼질 때도 있다. 그러나 거기엔 무언가 열정이 감추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이름 모를 기사도 풍부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가슴에 얹은 손을 볼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왜 엘 그레코의 인물들은 중지와 약지를 붙이고 있는 경우가 많을까? 항상 궁금하다.
6.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의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리심’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리심>(The Descent from the Cross), 1443, 262x220cm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의 소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을 읽는 것 같다. 그의 그림에는 정확성과 신비로움이 교차한다. 보면 볼수록 깊은 숲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플랑드르의 거장들로부터 받곤 한다. 화려한 칼라와 선명한 표정, 그러나 인물들의 표정을 보면 슬픔을 금할 길이 없다. 십자가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 목판의 형태도 가운데만 불쑥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그림이 꼭 네모나거나 둥그런 배경에 그려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우쳐준 작품.
7.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
히에로니무스 보쉬,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1504, 220x389cm
프라도에 가지 않고 보쉬를 말할 수는 없다. 신비로운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 컬렉션은 가히 세계 최고다. 보쉬의 그림들이 주축을 이루는 56번 전시실은 수수께끼 같은 공간이다. 그림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이 꼼꼼히 들여다보게 된다. 세상은 요지경이요, 만화경이다. 어쩌면 이렇게 잡다한 상상력의 세상으로 그림을 채워 넣을 생각을 다 했을까.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게 무색해질 정도다. 그의 뛰어난 디자인 개념과 상상력을 보면.
8. 티치아노의 ‘묄베르크의 카를로스 5세의 기마화’
티치아노, <묄베르크의 카를로스 5세의 기마화>
(Emperor Charles V on Horseback)
1548, 283x335cm
티치아노는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정말 뛰어난 사업 수완을 발휘했던 화가다. 교황과 황제가 어떻게든 자기 초상화를 그리게 하기 위해서 안달이 날 정도였으니까. 그는 이른바 ‘포토숍의 달인’이다. 붓이 지나가면 똑같은 인물도 더 멋지게 보이는 마법을 발휘했다. 특히 그를 총애했던 카를 5세는 권력이 아니라 티치아노의 그림을 통해 영원히 남게 되었다.
티치아노 이후 우리는 수많은 권력자들의 기마화를 보게 된다. 티치아노의 이 작품은 모든 기마화들의 ‘원조’랄 수 있는 그림이다.
9.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목을 자르는 다비드’
카라바조, <골리앗의 목을 자르는 다비드>
(David Victorious over Goliath)
1599~1600, 110.4x91.3cm
카라바조는 폭력적이었다. 자기 학대도 심했다. 뒤러와는 정반대로 자신을 추하게 그리는 능력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다. 이 그림에서 골리앗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인간 본연의 추악한 심리를 꿰뚫어 보았다. 아름다움보다는 추함을, 밝음보다는 어두움을 발견한 그에게 공감하게 된다.
프라도에서 대표작 10점을 꼽으라면 아무도 이 그림까지 끼워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카라바조에 흠뻑 빠져 있는 만큼, 이 그림을 고른 것은 ‘누군가의’ 취향이다.
10.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Self-Portrait),
1498, 52x41cm
티치아노가 타인의 초상화를 실제보다 더 멋있게 보이도록 잘 그렸다면, 뒤러는 자화상을 가장 멋지게 그렸던 화가일 것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분명’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프라도의 <자화상>도 뒤러의 그런 자기애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얼마나 부드럽고 섬세하게,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아름답게 스스로를 묘사했는가.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소스를 만나는 듯한 환상을 뒤러를 통해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