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픽션
박형서 소설집
문학동네
2011-12-05
2010년 대산문학상 수상작가 박형서의 세 번째 소설집. 2006년 겨울부터 2010년 겨울까지 쓴 8편의 소설을 담았다. 작가가 이야기 하나하나 모두 '내 손으로 썼다', 즉 '작가의 고유한 소설'이란 뜻에서 제목을 ‘핸드메이드 픽션’이라 한 이 소설집은 특히 '변신'을 모티프로 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래, 한때 나는 고양이였다. 불우한 거리의 고양이였다. 그리고 그는 나를 거둬들여 성범수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이고, 오랫동안 보살펴주었다. 내게서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인가? 맞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 나는 당신의 외로움이었다고, 그리고 이제 많이 진화했다고. 내 말 알겠는가? 시간은 저 혼자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늘 우리의 선택과 함께 흐른다. _‘갈라파고스’ 중
성범수 :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우리들 죽방멸치는 다른 멸치들과 요리법에서 차이가 난다. 인간들은 다른 멸치의 경우 볶거나 튀기거나 졸여서 한 점도 남김없이 먹는 데 반해, 우리들 죽방멸치는 오로지 국물만 우려낸 뒤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 이게 모욕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모욕이겠는가. 그뿐 아니다. 국물을 내기 전에 저들은 우리의 머리와 내장을 떼어낸다. 머리와 내장이 무엇인가? 지성과 영혼이 담긴 그릇이다. 그 신성한 부위가 살점과 척추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고 있다. _‘자정의 픽션’ 중
작가의 말
죽어 신(神) 앞에 섰을 때
작가는 그간 탈고한 모든 글을 소명해야 한다.
그 노역에 이 책이 더해졌다.
2006년 겨울부터 2010년 겨울까지의 단편들을 묶었다.
오래 버틸 질문도 있을 거고, 훨훨 증발할 농담도 있을 거다.
업둥이 같은 공상도 있을 테고, 너덜거리는 훈수도 있을 거다.
돌아볼 마음 따위는 없다. 부끄럽지 않다.
여기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가 전부 나다.
내 손으로 썼다.
박형서 소설집 '핸드메이드 픽션'
이야기의 무한 진화
은빛 비늘로 덮인 커다란 바위틈에 사람의 목이 끼여서 죽은 의문의 사건, ‘금도끼 은도끼’ 전설의 실체를 밝히려는 문헌고증학과 교수의 무모함, 쥐를 숭배하는 인도 사원지기가 독일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됐다가 한국의 해장국집 주인으로 변신한 사연….
박형서(37·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사진)의 소설은 한바탕 웃고 나면 여운이 남는, 진지한 농담처럼 읽힌다. 과거의 전설이나 민담, 동화 같은 다양한 이야기를 조각보처럼 이어 붙이는가 하면, 미래에 전해질 현대의 이야기를 굽이굽이 지어낸다. 걸쭉하고 의뭉스러운 그의 입담에 끌려가다 보면 허를 찌르는 삶의 이면, 인간이란 존재의 모양새가 드러난다. 그의 세 번째 소설집 <핸드메이드 픽션>(문학동네)은 소설이라는 참말과 거짓말의 경계지대로 독자를 데려간다.
“신화시대의 이야기는 배경이 가장 중요했지요. 모든 게 신이 만들어놓은 덫이고, 사건이나 인물은 사소하게 다룹니다. 그 시기를 넘어서면 배경보다 사건이 중요해지기 시작하지요. 그러다가 인간이 스스로에게 관심을 갖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고자 하면서 인물이 중심이 돼요. 오늘날에는 인물 자체보다 인물의 관점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표현 방식이 너무 정밀하고 현란해지다보니까 과거의 이야기가 품고 있던 흡인력을 놓치고 있어요. 저는 현대소설의 기법들이 녹아 있는 채로 비는 왜 내리는지, 벼락은 왜 치는지 이야기하던, 풍만하고 즐거운 신화시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바위틈에 사람 목이 낀 엽기적인 사건(‘너와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의 진실은 의외의 지점에서 밝혀진다. 2인칭 시점인 이 소설에서 조용한 시골 생활의 권태로움에 몸을 비틀던 젊은 ‘너’는 한밤중 숲에서 땅벌집을 건드리고 벌떼에 쫓겨 호수인 줄 알고 뛰어든 은빛 바위틈에 머리를 처박은 뒤 사건의 진실을 알았다는 희열에 젖어들지만, 곧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시신을 처리하려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목숨이 끊어지고 만다. 비밀의 문이 열리는 순간, 목숨을 잃는다는 설정은 신화의 아우라를 풍긴다.
초월적 진실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란 점은 ‘금도끼 은도끼’ 설화를 증명하려는 T교수의 실험(‘열한 시 방향으로 뻗은 구 미터 가량의 파란 점선’)도 마찬가지다. 그는 학생들을 거느리고 나무꾼과 산신령의 사연을 재연하고자 한다. 설화의 배경과 비슷한 연못을 찾아가 여러 대의 카메라와 측정 장치를 설치한 뒤 나무 밑둥을 찍는 척하다가 쇠도끼를 물에 던진다. 그러자 산신령이 나타나 금도끼와 은도끼, 쇠도끼를 차례로 보인 뒤 정직한 나무꾼(학생)에게 모두 준다. 실험의 성공에 흥분한 교수는 좀더 확실한 결과를 얻으려는 욕심에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화난 산신령에 의해 종말을 맞는다. 설화 속에서 가짜로 도끼를 던졌던 욕심쟁이 나무꾼의 대역인 셈이다. 엄밀한 과학용어를 진지하게 사용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는 이 작품은 설화를 비틀어 인간의 탐욕을 질타한다.
이처럼 박형서의 소설에는 이야기성이 두드러진다.
이야기가 탄생하는 과정, 이야기의 기능에 대한 관심은 메타픽션(소설에 대한 소설)을 낳는다. 쥐와 더불어 고대에서 현대까지 살아온 한 남자의 삶(‘나는 <부티의 천년>을 이렇게 쓸 것이다’)이 그렇다. 이 작품은 독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어떻게 쥐들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는지, 그 사건 이전과 이후에 사나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더불어 이 단편은 본명이 ‘부티’이며 죽지 않는 사나이의 모험담을 자세히 그릴 장편 <부티의 천년>에 대한 시놉시스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서 이야기는 동심원을 그리면서 계속 확장돼 나간다.
“개념이나 메시지의 작가가 아니라 세계를 저만의 방식으로 보는 관점의 작가로 기록되고 싶습니다.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지가 중요한 것이지요.”
‘핸드메이드 픽션’이란 소설집 제목은 ‘내 손으로 쓴’ 나아가 ‘나의 고유한’ 소설이란 뜻으로 붙였다.
그의 개성은 창작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두 번째 소설집의 제목이었던 ‘자정의 픽션’은 이번 소설집에서 동명의 단편으로 태어났다.
이 작품에서 마른멸치를 찾지 못해 수제비 끓이기를 포기하고 잠자리에 든 가난한 연인은 바다를 향해 탈출하는 멸치들의 모험담을 상상한다. 이 멸치들의 지도자가 성범수인데, 성범수는 사람으로 변신해 주인이 좋아했던 여인을 차지하는 고양이(‘갈라파고스’)의 이름이자 <자정의 픽션>에 실렸던 ‘날개’의 주인공으로 머리에서 원유 200만 배럴분의 기름이 나와 한·미간 자원전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렇듯 태연하게 뼈있는 농담을 이어가는 작가는 “소설가는 계몽적 지식인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이야기꾼”이라며 “이야기를 통해 안온한 일상에 균열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글 한윤정 사진 김문석 기자 l 경향신문 201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