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

라라와복래 2009. 11. 18. 11:43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

 

김용택ㆍ도법 지음ㅣ정용선 정리ㅣ메디치미디어


붓다는 내려놓음으로써 꿈 실현

사사로운 희망 없애니 평화로워


“책과 자연 속에서 혼자 묻고 혼자 답하고 깨달아 가는 날들, 나날이 매순간 홀로 죽었다 다시 살고, 다시 죽었다 살아나면서 내 정신은 늘 팽팽하고 충만했다.”

 


나고 자란 고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생 시를 길어온 김용택 시인과 길 위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해 온 도법 스님이 만났다. 인간과 자연, 뭇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정진해온 이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생태적 삶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사진=이창수 사진작가


길 위의 탁발승 도법(60) 스님과 섬진강에 둥지 튼 김용택(61) 시인이 인생의 한 갑자(甲子)를 넘어서 만났다. 살아온 궤적도, 친분도 없던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것은 평생 뭇 생명들과 함께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한곳을 바라보며 정진해 온 소박하고 치열한 삶의 모습 때문. 국문학과 동양철학을 전공한 정용선 씨가 두 사람을 함께 만나 인터뷰하고 이들의 육성을 녹취하듯 기록한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메디치미디어)는 두 인물의 문학적, 사상적 자서전이자 우리 시대 인간 공동체와 환경의 미래를 묻는 문답서로 손색없다.


두 사람의 삶은 산줄기와 강줄기처럼 굴곡지게, 대조적으로 흘러간다. 시인이 자연과 가족 품에서 해맑은 성장기를 보낼 때, 스님은 18세에 출가해 죽음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10년간 선방에서 고독하게 씨름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시인이 아이들과 책 속에서 행복을 배울 때 스님은 부처와 간디를 따르며 연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시인이 교사를 퇴직하고 지구환경에 관심을 돌릴 때 스님은 생명평화 운동을 펼치며 순례행각을 하고 있었다.


삶이 자연인 농부들을 통해 생명의 존귀함을 터득하는 시인과, 불법(佛法)을 통해 진리를 실천하는 스님은 같은 곳을 바라본다. 스님이 부처의 말씀을 따를 때 시인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시로 옮긴다. 뜨거운 물을 마당에 버릴 때면 시인의 어머니는 땅에 대고 “눈 감아라, 눈 감아라”를 외쳤다. “땅에 함부로 뜨거운 물을 버리면 땅속 벌레들의 눈에 닿아 눈이 먼다. 그 생명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눈감으라고 했다”는 것. 크든 작든, 잘났든 못났든,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어느 것 하나도 소외되지 않고 평등하다는 화엄의 세계는 시인의 마을에서 이미 피어나 있었다.


어머니의 위독함을 계기로 얼음장 같은 허무에 빠졌다가 화엄경을 읽고 연기(緣起)의 진리를 통해 깨어났다는 스님은 “오가며 스치는 사람들에게서조차도 생명의 큰 배에 동승한 것 같은 공동체적 일체감이 들었다”고 했다.


“하고많은 불상 중에 내겐 해골같이 앙상한 얼굴에, 피골이 상접한 몸, 서까래처럼 드러난 갈비뼈, 쭈글쭈글한 뱃가죽을 한 고행상이 떠올라요. 무엇이 붓다로 하여금 저토록 자신의 목숨을 걸게 한 것일까, 목숨을 걸어야 할 일생일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더없이 부러운 마음이 일어나기도 해요.”(도법 스님)


행간에서 드러나는 두 사람의 각성과 신념이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죽비소리는 서늘하다. 실상사 주지 자리도, 조계종단의 고위직도 모두 던져버리고 빈 몸으로 5년간 2만8000리를 걸으며 생명평화의 가르침을 보여준 스님의 행적은 우리네 울타리를 공고히 하는 삶을 비판하며 울타리를 해체하려는 실험이었다. “붓다는 내려놓음으로써 꿈을 실현하고자 했는데 우리는 소유함으로써 꿈을 실현하려고 한다”는 스님의 말에 시인은 이렇게 화답한다. “나는 지금 내 개인적인 희망이 없어요. 사사로운 희망이 없는 삶은 평화롭고 세상을 위해 할 일이 참 많아져요.”


존재의 실상을 찾기 위한 이들의 긴 여정은 ‘귀향’으로 합일된다. “공부란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것, 바로 여기의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시인의 말에 스님은 “출가란 결국 나와 내 가족, 이웃들의 삶과 죽음의 문제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지난해 퇴직 후 <섬진강 문학관>을 만들어주겠다는 관의 제안에 반대한 시인은 농사교실, 글쓰기교실, 생태교실 등 ‘자연교실’을 구상하며 자신의 교실을 넓히고 있다. 도법 스님은 실상사를 중심으로 귀농과 친환경 농산물 생산, 대안교육 등을 실험하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활동에 열심이다. 책 말미에는 시인과 스님이 ‘대안을 향하여’라는 테마로 나눈 대담도 수록됐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철학, 종교, 사상, 가치, 논리로는 안 된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공통된 인식인 것 같아요. 그러니 이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때예요. 그 새로운 인식의 근본은 바로 세상의 이치, 즉 존재의 실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요.”(도법 스님) “그렇죠.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마을 정신이 중요해요. 그 촌정신이야말로 우리 인류를 한 덩어리로 묶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어 갈 수 있어요.”(김용택 시인)


책의 사진도 볼거리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나는 하동군 악양골에서 농사꾼으로 살며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사진작가 이창수씨가 동행해 찍은 사진이 시인의 천진난만한 웃음, 스님의 소년처럼 말간 표정을 펼쳐놓는다. [세계일보 김은진 기자] 2009-10-06

 

시와 화두로 묻는 시대의 길


김용택 시인과 도법 스님. 두 사람의 삶은 대조적이다. 시인이 자연과 공동체 속에서 살 대, 스님은 선방에서 ‘죽음’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살았다. 시인이 아이들과 함께 해말게 웃을 때, 스님은 ‘선재동자’처럼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삶의 길‘을 물었다. 시인이 사람들 속에서 시작해 사람들 속에 있었다면, 스님은 고독한 수행을 통해 사람들 속으로 돌아왔다.


시인이 자란 마을은 고된 농사도 공동 놀이로, 돼지를 잡는 도살판도 ‘축제’로 바꾸어놓는 ‘놀라운 지혜’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어머니는 시의 원천이다. 나무를 벤 뒤 옆에 살아 있는 나무와 베어낸 나무의 밑둥을 새끼줄로 이어주는 ‘목순 건네기’를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생명의 부활, 살아 잇는 것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다.


스님에게 어머니는 화두의 시작이다. 출가한 지 2년 되던 해,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도 출가승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사는 것이라 여겨 돌아보지 않앗다. ‘아무리 중이지만 그럴 수가 잇느냐’는 주위의 쑥덕거림이 드렸다. 순간, 죽음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쩔쩔매는 것인가. 스님은 10년 동안 죽음이라는 화두에 매달렸다.


지난해 30년 동안 함께한 아이들에게 ‘얘들아 나를 용서해라’라는 말을 남기고 교단을 떠났던 시인은 이제 녹색혁명을 말한다. ‘옛것’들에서 되살려야 하는 가치다. 스님 눈에는 사람이 곧 똥이고, 똥이 곧 사람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연기법의 진리’에서 보면, 이 세계는 본래부터 공동체 사회이고 존재 자체도 공동체적 존재다.


시인과 스님은 서로 다른 삶을 걸어왔지만, 이제 같은 길을 걷는다. 시인은 ‘오래된 미래’로, 스님은 공동체와의 연대로 제대로 된 삶과 시대의 길을 묻는다. [글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009년 11월호) 이충신 기획위원]

저자 소개

도법 

제주에서 태어나 18세에 금산사로 출가했다. 봉암사와 송광사 등 제방선원에서 10년 넘게 수행했으며, 불교 결사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불교운동을 이끌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실상사 주지로서 <귀농학교>와 <작은학교>를 열었고,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운동>을 펼쳤다. 94년부터 종단개혁을 시작으로 불교계의 개혁과 정화에 나섰으며, 2004년에는 ‘생명평화 탁발순례길’에 올라 지금도 길 위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화엄경과 생명의 질서><길 그리고 길><화엄의 길 생명의 길><내가 본 부처><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그물코 사랑 그물코 인생> 등이 있다.


김용택 

전북 임실 진메마을에서 태어났다. 순창농고를 졸업한 이듬해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2008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고향을 지키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썼다. 섬진강 연작으로 주목을 받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며, 모더니즘이나 민중문학 등의 문학적 흐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언어와 뛰어난 형상미로 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집으로<섬진강><맑은 날><누이야 날이 저문다><그리운 꽃편지><강 같은 세월><그 여자네 집>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섬진강 이야기>가 있다. 이밖에도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동시집<콩, 너는 죽었다><내 똥 내 밥>등 많은 작품이 있다. 1986년 김수영문학상, 1997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