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thread among the gold / Georgia O'Keeffe
남산 11월 황인숙
단풍 든 나무의 겨드랑이에 햇빛이 있다. 왼편, 오른편,
햇빛은 단풍 든 나무의 앞에 있고 뒤에도 있다
우듬지에 있고 가슴께에 있고 뿌리께에 있다
단풍 든 나무의 안과 밖, 이파리들, 속이파리,
사이사이, 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가 있다
단풍 든 나무가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있다
단풍 든 나무가 한없이 붉고 노랗고 한없이 환하다
그지없이 맑고 그지없이 순하고 그지없이 따스하다
단풍 든 나무가 햇빛을 담쑥 안고 있다
행복에 겨워 찰랑거리며
싸늘한 바람이 뒤바람이
햇빛을 켠 단풍나무 주위를 쉴 새 없이 서성인다
이 벤치 저 벤치에서 남자들이
가랑잎처럼 꼬부리고 잠을 자고 있다
용한 의원도, 팔도에 소문난 점쟁이도 제 동네에선 안 알아준다.
한가운데 턱 버티고 선 남산 또한 서울에선 그런 팔자.
그러다 벚꽃 흐드러지거나 요즘처럼 단풍 햇살 환할 땐
오! 이런.... 말할 수 없는 감탄으로 발견된다.
나뭇잎 사이사이 단풍 든 햇살 쏟아지고
오솔길 사이사이 단풍 햇빛 켜고 있는 11월 남산 자체가 홍보석.
그런데 가랑잎처럼 꼬부리고 자는 남자들 시린 삭신 어쩌나.
- 이경철 / 문학평론가
시인 황인숙은,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 로 태어나리라' 당선 등단
1999년 제12회 동서문학상 수상. 2004년 제2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리스본행 야간열차> 등...
그 외 산문집 <나는 고독하다> 등 다수의 저서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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