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팔원(八院) - 백석

라라와복래 2012. 10. 19. 03:07
 

팔원(八院)

_백석(白石)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 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1938

 

백석(白石) 191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 오산학교를 거쳐 일본 청산학원에서 영문학 전공. 1930년 조선일보에 '그 모(母)와 아들'이란 소설로 등단. 1934년 조선일보사에 입사. 이후 영생고보 영어 교사, '여성', '조광' 등 편집. 1936년 시집 <사슴> 간행. 1939년 이래로 만주에서 활동. 1945년 귀향하여 북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한 재북(在北) 작가. 대표작으로 ‘여우난곬족’ ‘고야’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이 있다.

 

우리는 시가 더 필요하다

_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 교수

누워서 보다가 일어나 앉았다. 할머니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소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면 나도 따라 들어가겠다.” 할머니는 축사에서 머리를 쑥 내미는 소를 바라보았다. 방송사 카메라는 주로 농촌 지역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기거하는 할머니는 가축을 보살피러 하루 한 차례씩 집을 찾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불산가스를 마신 소가 구제역 파동 때처럼 ‘살처분’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지난 주말,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피해지역을 취재한 시사프로그램을 지켜보다가 새삼 깨달았다. 할머니의 저 ‘각오’가 정부 당국에 대한 분노 혹은 좌절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저 한마디에는 평생 땅과 더불어 살아온 삶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연민이 자리잡고 있다. 소가 처한 상황을 자신의 처지로 받아들이는 온전한 감수성 말이다. 가격 폭락을 이유로 멀쩡한 양파를 갈아엎거나 소를 굶겨 죽이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 저 할머니 같은 마음씨, 즉 자신이 키운 농축산물을 살붙이로 여기는 농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소 앞에서 울먹이는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시가 백석의 ‘팔원’이었다. 시 창작 강의실에서 반드시 소개하는 시다. 1930년대 중반 겨울 어느 날, 평안북도의 한 시골. 한 계집아이가 승합차에 오른다. 일본인 주재소장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다가 묘향산에 사는 삼촌 집으로 떠나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어느 한 사람”의 눈가가 젖는다. 백석 자신이었을 한 사람은 눈물을 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계집아이의 삶을 상상한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이 시에서 한국 현대시는 모더니즘의 품격을 갖춘다. 하지만 나는 이 시에서 감수성, 감정이입, 상상력을 우선한다.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한 계집아이의 삶을 자기화하는 “어느 한 사람”에 주목해보자고 권유한다. 그의 감수성, 감정이입은 상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독자의 상상으로 이어진다. 계집아이는 그 후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저 아이도 해방과 전쟁, 분단을 겪었을 것이다. 저 아이가 우리의 할머니, 우리의 현대사인 것이다.

감수성, 감정이입, 상상력. 나는 여기에서 미래를 찾는다. 얼마 전 친구가 시집을 내면서 뒤표지에 넣을 추천사를 부탁했다. 수백만 독자를 확보한 시인이어서 굳이 추천 글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나는 역발상을 하기로 했다. 첫 문장을 굳이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는 시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반복하고 강조했다. 우리는 시가 더 많아야 한다. 우리는 시와 더 가까워져야 한다. 우리 삶이 이렇게 왜소해지고, 우리 사회가 이토록 척박해지는 이유는 감수성이 급격하게 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부족해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규정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이코패스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니까 감수성의 회복은 문명사적 전환과 맞물려 있는 근본적인 과제다.

프로그램 후반, 소와 함께 죽겠다는 할머니가 한마디를 더 남겼다. 나는 다시 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할머니는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보상을 하지 말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심정’으로 도우라는 것이었다. 보상과 도움은 큰 차이가 있다. 보상은 행정 논리, 아니 전적으로 돈의 논리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데는 논리나 절차가 필요 없다. 무조건 살려내야 한다. 할머니의 저 의연한 태도는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분명, 생명에 대한 감수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백석 못지않은 시인이라고 믿는다. 시는 감수성이다. 우리가 감수성을 회복하지 않는 한, 이 무지막지한 돈의 논리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시가 필요하다. 내 안에, 우리 사이에 시가 많아져야 한다. [경향신문 2012.10.17 녹색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