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김곰치 <지하철을 탄 개미> 중에서

라라와복래 2013. 5. 31. 07:40

 

곰치 : 뱀장어목 곰치과의 바닷물고기로 대담하고 성질이 사납다. 산호초의 바다에서 문어와 서로 빈 구멍을 차지하기 위해서 곧잘 싸운다. 이빨이 날카로워서 잠수부들이 물리는 수도 있다. ―출처: 두산백과사전

김곰치 <지하철을 탄 개미> 중에서

나는 장사를 잘 모른다. 장사에 대한 나쁜 선입견 같은 것은 별로 없다. 아니 내가 아는 장사는 예쁘고 귀엽기만 하다. 작년에 영인본 <씨의 소리>를 시간 날 때마다 읽었다. 몇 년 전 헌 책방에서 구입하고 방치해두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손이 갔다. 어느 호에서 장준하의 수기를 읽었다. 잡지 <사상계>를 창간할 때의 이야기. (글을 다시 확인하지는 않겠다. 기억에 의지하기에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사상계>를 창간할 때, 그때는 한국전쟁 중이었다. 장준하는 부산에서 <사상계>를 시작했다. 창간호를 3천 부 찍었다. 1,500부를 부산 시내의 서점에, 나머지를 그 외의 지역에 배포했다. 2주 후, 장준하는 고물 트럭을 타고 시내를 돌기 시작했다. 판매 현황을 살피려는 것이다. 그런데 매진, 거의 매진, 매진, 거의 매진이었다. 그 기쁨과 감격을 장준하는 얼마나 솔직하게 표현하는지! 순수한 그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이 일흔의 고령에 <씨알의 소리>를 창간한 함석헌은 어떤가. 몇 호가 나가자마자 정기구독자를 모집한다는 알림을 잡지에 싣는다. <씨알의 소리>는 잡지이기도 하고 출판사이기도 하다. 자사의 단행본도 광고로 싣는다. 그 문구가 촌스럽기 이를 데 없다. 함 선생도 장사를 하기 위해 꽤나 애쓰셨구나, 나는 애정을 느꼈다. 작은 잡지의 작은 몸부림이었기 때문이다.

출전: <지하철을 탄 개미>(산지니)

 

김곰치는 소설가이자 르포 작가입니다. <녹색평론>을 보면 그가 현장에서 두 발로 뛰며 써내려간 글들을 종종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사상계>와 <씨알의 소리>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잡지죠. 천박과 야만이 판을 치던 시대에 등불 같고 깃발 같은 역할을 했던 책이었으니까요. 정준하 선생과 함석헌 선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들도 맨 처음 잡지를 만드셨을 때 이렇게 하셨건 겁니다. 전 몰랐습니다. 김곰치 책을 안 봤다면 그분들이 이렇게 고물 트럭 타고 책 배포를 하고 잡지에 촌스러운 정기구독자 모집 광고도 싣고 했던 고군분투의 모습을 모르고 넘어갔을 겁니다. 누구나 시작은 이렇게 맨손, 맨발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 모습을 그려보면 마음이 좀 거시기해집니다. 우리가 살면서 무심코 누리는 이 자유와 권리는 앞서간 누군가의 지극한 도전과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김곰치 소설가. 1970년 경남 김해 출생. 199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 시작. 장편소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빛>, 르포 · 산문집 <발바닥, 내 발바닥> <지하철을 탄 개미> 등이 있다.

낭독 조주현 배우. 연극 <감포 사는 분이> <사랑, 지고지순하다> 등에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