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명시/ 세르게이 예세닌
나는 첫눈 속을 거닌다
나는 첫눈 속을 거닌다,
마음은 생기 넘치는 은방울꽃들로 가득 차 있다.
저녁이 나의 길 위에서
푸른 촛불처럼 별에 불을 붙였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빛인지 어둠인지?
무성한 숲 속에서 노래하는 것이 바람인지 수탉인지?
어쩌면 들판 위에 겨울 대신
백조들이 풀밭에 내려앉는 것이리라.
아름답다 너, 오 흰 설원이여!
가벼운 추위가 내 피를 덥힌다!
내 몸으로 꼭 끌어안고 싶다.
자작나무의 벌거벗은 가슴을.
오, 숲의 울창한 아련함이여!
오, 눈 덮인 밭의 활기참이여!
못 견디게 두 손을 모으고 싶다.
버드나무의 허벅지 위에서.
출전 : <예세닌 시선>, 김성일 옮김, 지만지, 2008
시를 말하다
정끝별 l 시인

1921년 가을, 모스크바의 한 파티장. 지친 모습으로 늦게 도착한 던컨이 안락의자에 앉아 한 청년에게 손짓했다. 한 손으로 청년의 곱슬머리를 만지며 서투른 러시아어로 말했다. “머리가 황금색이야!” 청년의 입술에 키스를 한 후 “천사로군!” 다시 키스를 한 후 “악마 같으니!” 아기 천사를 닮은 그러나 후일 악마를 닮게 되는, 그 청년이 바로 ‘제2의 푸시킨’이라 불리며 랭보와 비교되었던 천재 시인 예세닌이었다. 자신의 종교가 무용이라고 말하던 44세의 미국 여자 무용수와 자신의 종교가 시라고 믿었던 27세의 러시아 청년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사랑은 던컨과 예세닌이라는 ‘두 시대, 두 인생관, 두 세계의 충돌’이었다. 1923년까지 그들은 사랑했고 결혼했고 여행했고 싸웠고 불행했고 드디어 헤어졌다.▶예세닌과 던컨, 1922
1925년 12월 21일, 모스크바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예세닌은 그길로 국영 출판사에 찾아가 선인세를 받아 술독에 빠졌다. 24일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 3년 전에 던컨과 함께 투숙했던 앙글르테르 호텔에 투숙했다. 27일 잉크가 없어 칼로 자신의 팔목을 그어 그 피로 시를 쓴 후 시인 에를리히가 찾아오자 접어서 건네주었다. 28일 창문에 목을 매 숨진 상태로 아침에 발견되었다. 30일 시신이 담긴 관이 화물칸에 실려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31일 바간코보 묘지에 안장되었고, 고인의 시가 낭송되고 조문객들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세르게이 예세닌의 나이 30세였다.
1927년 12월 14일 니스의 저녁 8시. 시범 운행을 위해 이탈리아의 청년 팔체토가 무개(無蓋)형 부가티(1907~1939년 사이에 생산되던 스포츠카)를 몰고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바람이 센 날이었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 듯, 팔체토가 자동차 문을 닫자 던컨은 “안녕, 영광을 찾아 떠나요!”를 외치며 기다랗고 빨간 스카프를 목에 단단히 둘렀다. 지붕 없는 부가티가 출발하자 던컨의 목을 감겨 있던 스카프가 바람에 휘날리며 부가티 뒷바퀴 회전축에 걸렸고 던컨은 목이 부러져 사망했다. 맨발의 이사도라 던컨의 마지막 ‘무대’였다.

예세닌은 스스로를 러시아 ‘최후의 농민 시인’이라 불렀다. 혁명과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러시아의 풍요로운 자연과 진솔한 농민 정서를 예세닌만큼 잘 표현한 시인은 없었다. 자작나무 숲과 황금빛 노을, 푸른 밤과 백색의 설원(雪原), 기도하는 어머니와 버려진 황무지…. 고리키는 그에 대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애당초 시를 위해 창조된 유기체’라고 평하면서 “끝없는 들판의 비애를 표현하고, 지구상에 살아 있는 만물에 대한 사랑과,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베풀어야 할 연민의 정을 표현하는 시인”이라며 경탄한 바 있다. ◀왼쪽부터 던컨이 입양한 딸, 이사도라 던컨, 예세닌
모든 눈은 첫눈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누군들 첫눈을 기다리지 않을까. 누군가는 첫눈 오는 날에 모든 걸 걸며 어떤 이름을 기다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첫눈이 쌓인 백지의 마당 위에 새벽 발자국을 내며 나아가기도 한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모든 눈은 첫눈이다. 그리고 첫눈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온다. ‘나는 첫눈 속을 거닌다’는 예세닌이 시인으로서 황금기였던 1917년에 쓴 시이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선율 속에서 달리고 달리던 마차를 따라 끝없이 펼쳐지던 눈 덮인 은빛 자작나무 숲들! 이 시를 읽노라면 영화 <차이콥스키>의 은빛 설원이 떠오른다. 하얀 자작나무 숲에 흰 눈까지 내려 쌓이면 세상은 온통 은가루를 뒤집어 쓴 마법의 세계가 된다. “그리고 꿈결 같은 정적 속에/ 자작나무는 서 있다/ 그리고 황금빛 불 속에서/ 작은 눈송이들이 빛난다.// 새벽노을이 느릿느릿/ 주위를 배회하며/ 새롭게 은을/ 어린 가지에 흩뿌린다.”(‘자작나무’)!
‘첫눈’ 속을 걷노라면 ‘은방울꽃들’이 가득 찬 마음일 것이다. 어두워지는 하늘에 ‘푸른 촛불’처럼 ‘별’들이 하나둘씩 돋아난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첫눈, 저녁, 길, 은방울꽃, 촛불, 별 들이 직조해 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서정시의 교본과도 같다. 어둠과 빛, 바람과 수탉 등 모든 것들의 경계가 지워진 눈 쌓인 들판을, 시인은 ‘겨울 대신 백조들이 풀밭에 내려앉’는다고 표현한다. 그리고는 이 환상적인 풍경에 뜨거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첫눈을 몰고 온 아름다운 추위가 시인의 피를 덥히고, 피가 뜨거워진 시인은 이제 자작나무의 벌거벗은 가슴을 안아주고 싶다고. 은빛의 첫눈과, 피가 뜨거운 시인의 가슴과, 은빛의 자작나무가 서로 교감하고 상응하는 이 구절은 백미다.
감사의 마음이든 축복의 마음이든 기도의 마음이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우리는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버들가지 솜털을 보았다면 봄은 벌써 난로 밑에 온 것이다.”라는 러시아 속담도 있듯, 첫봄에 가장 먼저 물오르는 ‘버드나무의 허벅지’는 봄과 생명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19세기 초에 셸리 또한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듯,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첫눈 속에서 ‘버드나무의 허벅지’를 감지하는 자들이 바로 시인이다.
던컨과 헤어져 러시아에 귀향한 이후에도 예세닌의 중독과 착란과 광기는 되풀이되었다. 던컨과 헤어지게 했던 바로 그 이유였건만. 그즈음에 썼던 ‘모스크바의 선술집’의 마지막 구절은 이랬다. “내 늙은 개는 죽은 지 오래./ 구불구불한 모스크바의 길거리에서/ 죽는 것이 아마 신이 내린 내 운명인가 보다.”! 선술집 바닥에 널브러져서 혹은 호텔 방에서 마지막 창문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꺾어야만 했던, 예세닌의 너무 젊고 너무 컸던 날개를 생각한다. 죽기 직전 자신의 피로 썼다는 예세닌의 마지막 시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산다는 것 역시 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일이지”라는 구절과 함께.

예세닌의 장례식
세르게이 예세닌(Sergei Yesenin, 1895.10.3-1925.12.28) 1895년 러시아 랴잔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모스크바에서 상점과 인쇄소의 직공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를 썼다. 러시아 농촌의 자연과 생활을 노래한 섬세한 서정시와 러시아 민중의 역사를 취재한 반역적 서사시 등으로 유명하다. 그의 시에는 단순한 목가나 노스탤지어를 넘어선 조국애가 깃들어 있고, 사회주의화가 진행됨에 따라 변하는 조국의 모습 속에서 옛 농촌을 사랑하는 시인의 고뇌가 담겨 있다. 음주벽과 신경증이 겹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여관에서 자살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모스크바의 선술집>, <26인의 발라드>, <소비에트 루시>, <안나 스네기나> 등이 있다.
글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으로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ㆍ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다.